8. 가제본 인쇄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업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만 남겨놓은 시점에서 나는 책을 완성하고 최종 원고를 PDF로 만들었다. S 선생님께서는 책을 인쇄할 수 있는 사이트 2개를 비교해서 완성된 PDF 파일을 이용해 인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표지는 보통 스노우지 250g을 많이 선택하고, 내지는 미색 모조지 100g을 많이 사용해요. 종이를 어떤 재질로 주문하느냐에 따라 책 등 사이즈가 달라져서 책 표지는 사이트에 주문을 넣으면서 새로 파일을 수정해서 올려야 하고요. 이번 주에 샘플 주문을 넣으면, 아마 마지막 수업에서 다 같이 만들어진 책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막상 집에 와서 오늘 수업에 배운 대로 인쇄 주문을 넣어보려 하니, 종이 선택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았다. 종이는 모조지, 아르떼, 몽블랑, 스노 등 선택해야 할 게 정말 많았다. 문제는 내가 이 종이들이 어떤 질감인지 모른다는 것과 내 책과 어떤 종이가 어울릴지는 더더욱 모르며, 실제로 인쇄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날지는 죽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80g, 100g, 120g 등 종이의 무게 선택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어찌해야 하지?'
일단 나는 블로그 검색을 해봤다. 하지만 종이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게시물은 많지 않았다. 샅샅이 찾아본 결과 사진이 많은 책은 백색 모조지를 많이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 있던 일러스트 책도 살펴보니, 대략 백색 종이에 인쇄된 책이 많았다.
'일단은 선생님께서 많이 한다고 했던 종이를 선택해서 표지는 스노우지 250g, 내지는 백색 모조 100g으로 해야겠다.'
드디어 나는 마음의 결정을 했다. 보통 독립출판물은 엽서를 사은품으로 많이 준다던데 가제본을 주문하면서 같은 사이트에서 엽서도 같이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는 택배 도선료가 추가되기 때문에 한 번 주문할 때 필요한 것을 같이 주문하는 게 좋다.
엽서는 4장이 1세트라서 4가지 엽서 디자인을 확정하고 주문을 넣었다. 책의 콘셉트를 반영하여 달팽이 사진과 시 엽서 1장, <수업을 같이 듣는 어떤 분>이 예쁘다고 했던 수채화 그림엽서 1장, 노루 일러스트와 컬러링 선을 딴 엽서 1장, 한라산 그림엽서 1장 총 4장을 스노우지 200g에 인쇄하기로 했다.
주문을 넣고 샘플이 다음 월요일 수업 전까지 잘 도착하길 빌었다.
“집에 프린트 있으신 분”
K가 절친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K는 제주에 오자마자 사귄 나의 동갑내기 친구이다.
“나 가능한데 지금 신제주. 급한 거야?”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던 나는 K의 메시지를 보고 답장했다.
“이따가 오면 줘도 돼. 용희 너 책 언제 나와?”
“이번 주에 가제본 받아보고 괜찮으면 다음 주 인쇄하려고. 이따 집에 가면 잠깐 보자.”
그렇게 나는 프린트물을 들고 K를 만났다.
“용희 이거 비누.”
“네가 만든 거야? 응 이거는 쑥 비누이고 이거는 핑크 솔트.”
"근데 핑크 솔트가 왜 노란색이야."
"그냥 써."
"으응. 그 그래."
향을 킁킁 맡았더니 K가 말했다. 향은 안 넣었어.
“그 그래.”
“너 책 다음 주에 나오는 거야? 책 나오면 출판기념회 이런 것도 하지 않아? 그런 거는 안 하는 거야?”
“아 독립출판으로 할 거고. 비용은 내가 부담하는 거라 아마 그런 건 못할 것 같고. 다음 주에 책 샘플 나오면 선생님 하고 부수 상의해서 인쇄할 것 같아. 아마 50권 정도?”
“아쉽겠다. 그래도 출판기념회도 하고 싶을 건데. 내가 1번으로 예약할 거야. 내가 1번 J 언니가 2번. 아마 한 10권은 팔 수 있지 않나?”
해맑은 K의 모습이 사뭇 귀여웠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책이 나오면 그 친구가 진정 베스트 프렌드인지 아닌 지 알 수 있다고 하시더니, K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맞았던 것 같다.
나는 K가 고마워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M도 살 거고 I도 사라고 해. S 언니도 있다. 벌써 5권 팔았네. 5권도 생각해 보면 누구 있을 거야.”
혼자서 벌써 5권 팔은 K가 너무 귀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 K.”
나는 처음 나에게 책을 써보라 권유했던 J 님에게 최종 원고 파일을 보냈다.
"생각보다 귀엽게 나왔네요. 그렇지만 아마도 인쇄가 나오면 좀 속상할 수도 있어요. 제 친구들도 열의에 차서 인쇄를 넘겼는데 최종 인쇄가 나오고 엄청나게 실망하더라고요. PDF로 보면 쨍한 색감들이 한 톤 어둡게 나오기도 하고 종이 질에 따라 많이 달라 보여요. 혹시 인쇄가 잘 안 나오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나는 걱정스러워하는 J 님께 말했다.
"요즘은 디지털 인쇄라서 웬만하면 잘 나온다고 하는데... 설마 잘 안 나오려고요. 아마 괜찮을 거예요."
가제본은 목요일 출고 되었다. 제주도의 택배 배송은 타지역보다 하루가 더 걸리는 특성상 주말과 휴일에 따라 배송이 달라지고, 택배사나 그날의 날씨에 따라 배송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 보통 태풍에 걸리면 물건이 선적되지 못하고 1~2주 그냥 지연되기도 한다.
책 샘플은 인쇄 일정과 배송일자를 생각해서 넉넉하게 화요일에 주문을 넣었건만, 엽서 디자인에 너무 심혈을 기울였던 탓에 화요일 저녁 간신히 파일을 완성해서일까? 금요일과 토요일 아침까지도 청원 허브에 걸려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애가 타는 마음에 택배사 송장 조회를 통해 위치 확인을 해 보았지만, 금요일 새벽 청원에 있다는 것까지 확인되고 이후 행적은 묘연했다.
택배 기사님이 바쁘다는 건 알지만, 당신만의 책 만들기 프로그램이 다음 월요일을 마지막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제주에 물건이 들어오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든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평소 택배가 오전에 배송되는 것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기사님께 문자를 드렸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송장 번호 6699760 월요일 오전 9시까지는 꼭 필요한데요. 청원에 멈춰있고 조회가 안 되는데 혹시 월요일 오전에 제가 찾으러 가면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제주에 들어왔으면 제가 받으러 가도 되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이윽고 답장이 도착했다.
"조회해 보니 제주는 오늘 올 것 같습니다. 배달은 월요일은 되는 데 9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급하신 건이면 오늘 찾으러 오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1시 반부터 5시까지 하차이니 물건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결국 나는 택배기사님의 문자를 받고 토요일 오후 센터로 찾아가 샘플을 받았다. 택배를 받자마자 센터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는데
"아, 이게 뭐야."
한숨과 함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던 것과는 다른, 식물도감이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다큐멘터리 느낌의 책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 책의 문제는 사진의 해상도가 너무 낮아 사진이 다 깨져 보였고, 사진의 톤이 일관되지 않았으며, 일러스트는 너무 튀고, 장소 소개 페이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 뒤에 갑자기 시가 나와서 콘셉트가 너무 모호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사준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도저히 못 팔 것 같은데.'
나는 K에게 책 표지를 찍어 보냈다.
"K야, 책 샘플 나왔어."
해맑은 K에게서 답문이 왔다.
"귀엽다."
‘아 이젠 정말 어떡하지.’
책 샘플을 받고 마음이 너무 답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