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책 도전기

9. S 선생님의 조언

by 김용희

이즈음 탐라도서관에서는 '제주출판학교' 수강생을 모집했다. 포스터에는 지역출판인, 독립출판제작자 등 출판 전문 과정에 관심 있는 도민 누구나 환영한다고 되어 있었다. 강연은 15회로 출판기획에서부터 편집 실무, 콘텐츠기획, 출판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출판인으로서 배워야 할 전문 강의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강 신청은 신청 기간 첫날 9시부터 진행되었는데 나는 9시가 되기 전부터 로그인하고 수강 신청을 기다렸다. 이윽고 9시가 되어 클릭에 성공한 나는 9시 18초에 수강 신청을 완료했다. 수강생 50명, 대기인원 10명, 총 60명 모집에 1분도 안 돼 모든 자리가 마감되었다. 제주의 출판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수강 신청에 성공하다니 운이 좋았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보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첫 수업에 갔다. 제주출판학교 수업은 매주 일요일 11시부터 1시까지 탐라도서관에서 진행되었고 나는 강의장에서 S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S 선생님도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고 하셨다.




나는 S 선생님께 어제 도착한 가제본을 보여드렸다. 고맙게도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히 내 책을 보셨고,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잘하셨어요. 수업 기간 내에 이렇게 샘플까지 찍으신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무거운 얼굴에 내게 S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그냥 내가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저는 사실 이 샘플을 보고 크게 실망했어요.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하나 싶기도 하고, 이런 퀄리티라면 앞으로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뭔가 얻은 것 같아요. 책을 살펴보니 지금 상황에서 2가지 방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아예 톤을 다운시켜서 더 점잖게 가거나 아니면 더 정신없게 만들어서 톡톡 튀거나. 방향성은 용희 님이 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걸 원하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점잖은 것보다는 좀 밝고 톡톡 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아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룰 게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넣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여기 사라봉 토끼 페이지 있잖아요. 여기에 토끼를 봤을 때의 용희 님의 심정이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만약 가능하다면 한 장소에 4장 정도의 글 분량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본인이 왜 이런 콘텐츠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 있으면 독자들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이야기가 있어야 독자들도 관심이 가는 법이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분명 뭔가 느낀 것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한 뒤 조언을 이어갔다.


"그리고 처음에 발표하셨던 이 책의 콘셉트가 좀 독특했는데, 그런 게 지금 이 가제본에서는 잘 살아나지 못한 것 같아요. 되도록이면 기존 콘셉트를 유지하는 게 글을 쓰기엔 더 편하실 거예요."


"여기 시도 많은데 시는 어떻게 할까요? 전에 관광 기념품에 시를 납품했던 적이 있는데... 이 시들은 머그잔 같은 기념품에 넣기 좋은 시거든요."


"글쎄요. 저는 기념품은 잘 모르지만, 책방 주인으로서는 시에 대한 수요가 많이 없다는 건 알고 있죠. 아주 유명한 시인의 시도 요즘은 잘 팔리지 않는 추세니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오늘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신 대로 다시 한번 작업해 볼게요.”


나는 바쁜 S 선생님이 나를 위해 이런 시간을 내주셨다는 점이 정말 고마웠고, 지금 잘 표현되지 않은 이 책을 보고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있는 점에 적잖이 감동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느낌으로 오히려 경험이 많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게 말한다는 점을 가슴을 새겼다. 나는 책 제작과 관련한 오늘의 교훈을 노트에 잘 적어두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내일이 마지막 수업이니까, 첫 시작인 삼의악 부분이라도 제대로 작성해서 가져가 보면 어떨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방 안에 누워 울고 있는 김 작가 캐릭터'가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일러스트를 그렸다. 채색하면 인쇄되었을 때 퀄리티를 담보하지 못하므로 드로잉 선만으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이런 콘셉트로 하면 글도 생동감 있고, 어쩌면 독자들도 재밌을지 몰라.'

나는 한라산 그림을 그려 방금 탄생시킨 '김 작가' 캐릭터와 조합해서 표지를 변경한 다음, 책의 첫 시작인 삼의악에서 노루와 마주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수정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실패감은 컸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차근차근 작업하다 보니, 이미 뼈대가 있는 스토리에 감정을 넣어 글을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도 수채화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구나. 밑그림을 그리고 밑 색을 칠하고, 색감을 풍성하게 넣어주고.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되겠지!'


나는 가제본이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뭔가 얻은 점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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