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마지막 수업과 새로운 시작
마지막 수업은 모두가 들뜬 왁자지껄한 시간이었다. 지난 10주간 우리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고, 수업 분위기도 좋아 완성된 가제본도 4권이나 되었다.
"우와. 이번 수업은 정말 역대급이네요. 모두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해요."
감동한 S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의 가제본을 살펴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밌기도 했고 유익하기도 했다. 우리 수업에는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수강생분이 있었는데, 마지막 날 나는 이분께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음... 사진이 이런 퀄리티 라면 빼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이런 사진은 괜찮은데... 여기 화질 낮은 사진들은 일단 빼는 게 좋겠어요."
"생각에도 사진은 좀 빼는 게 나을 것 같고, 시도 수요가 없다고 들었는데 빼야 할 것 같고요. 그러면 꼭지글 12장이 남는 데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써봤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어제 다시 완성한 원고를 내밀었다.
"저는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요? 읽기 편하고 일러스트도 심플하고... 그런데 앞의 표지는 좀 너무 정신없기도 하고 좀 별로인 것 같아요. 표지만 바꾸면 꽤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여기저기 다니시던 S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용희 님, 어제 말씀드렸는데 오늘 만들어 오신 거예요?"
"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 좀 빠르게 해 보았어요."
선생님은 천천히 내 원고를 살펴본 후 말씀하셨다.
"용희 님, 저는 이게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이 원고를 한번 완성해 보세요."
그렇게 10주간의 '당신만의 책 만들기' 수업은 끝이 났고 분주하게 돌아가던 나의 월요일도 한가해졌다. 늘 상가던 한라도서관에 가지 않으니, 뭔가 허전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 뭐. 이 시간에 글을 더 쓰면 되지.'
나는 차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고요히 있자니 생각도 차츰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일단 지난번은 책의 목차와 콘셉트가 있었지만, 책을 만들다가 기획 의도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생각과는 좀 다른 결과물이 나왔지. 이번에는 책의 목자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일관된 글을 먼저 쓰고, 디자인은 나중에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비록 가제본이었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본 결과, 하나하나의 글이 톡톡 튀면서 재밌을 수는 있지만 책 전체가 일관된 문체를 가지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을 만들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필력(筆力)'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래. 모든 경험이 부족한데 어떻게 완벽한 책을 만들 수 있겠어?'
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주는 게 필요한 시간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글 파일을 열고, 다시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글쓰기에 동기부여가 될까 싶어 평소 가보고 싶었던 S책방을 들르기로 했다.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그리 멀지 않았고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유명한 책방이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서점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꽤 운치 있었다.
'이곳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고 가면 좋을 텐데.'
이 책방에는 제주와 관련된 공간이 따로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은 어떤 책을 많이 만들까?'
내 눈에 띈 것은 오름 걷는 이야기, 올레길 걷는 이야기, 제주 식물에 관한 이야기 등이었다. 나와 비슷한 콘셉트였는데 저마다 디자인도 멋지고 글솜씨도 뛰어난 작가들이 성의를 다해 쓴 글들이라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차에 나는 용기를 주는 좋은 책을 발견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할지, 남들이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할지가 과연 선택의 문제일까요? 글쓰기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남이 읽고 싶게 만드는 것, 이 두 가지를 조합시키는 부단한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 인간이란 존재는 자기 자신을 매개로 세상을 보고 읽어낼 수밖에 없잖아요. (...) 다만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닌 남들이 보는 글을 쓸 때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지면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의 욕망에서 출발했어도 자아의 전시가 아니라 모두의 이익이 되도록 알찬 글을 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죠. (...) 우리 시대의 지혜자 박막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야.'
자기 호흡과 리듬으로 쓰면 그 장단에 흥이 난 독자가 모일 테니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보면 어떨까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p.97-98. 」
책을 읽고 있자니 책을 먼저 쓴 선배가 나에게 정성 어린 조언을 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결국 그림도 나의 색을 낼 수 있을 때 좋은 그림이란 평가를 받았듯이 글도 내 문체를 찾아보는 거야. 인생 뭐 있나. 누구나 처음은 있었겠지.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자.'
나는『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책을 구매하고 보물은 발견한 것처럼 소중히 들고 책방을 나섰다. 혹시 다음번 S 서점에 올 때는 내 책도 전시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