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끼 네가 왜 사라봉에서 나와?

#4 산지등대 갤러리

by 김용희

“언니 우리 다른 데도 가봐요. 저긴 뭐지? <산지등대 갤러리>라는 데요?”


건물 앞에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이곳이 무엇하는 곳인지 설명해 주었다.


「산지등대 갤러리

음악 도서관

피아노

필사의 방

종이학」


‘뭔데 뭔데 뭐 재밌는 게 있는 거야?’


갤러리에 들어서는 데 클래식 음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소리에 이끌려 그쪽으로 가보니 왼쪽으로 피아노 한 대와 오른쪽 뒤로 오래된 전축과 레코드판 스피커가 보였다. 벽은 칠이 되지 않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고 음악 소리와 피아노, 책장과 종이학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니 피아노 위에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피아노 잘 치면 여기서 피아노 쳐봐도 좋겠다.’


나는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았는데 조율이 잘 된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관리가 잘되고 있는 곳 인가 봐.’


나는 H 언니에게 혹시 피아노를 잘 치는지 물어보기 위해 언니를 찾았다. 하지만 큰 공간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언니 어디 갔지?’


여기저기 돌다 보니 언니는 ‘필사의 방’ 안에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방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노란 전등이 켜 있었으며 책과 노트가 놓여 있었다.


“언니 여기서 뭐 해요?”

“여기 필사하는 곳 인가 봐. 필사하고 있어”


「필사의 방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필사해 보세요.

이름 모를 사람들과 이어가며」


“언니 글씨 예쁜데요?”

“기록에 남으니까 성의껏 썼지.”


나는 언니가 적은 글을 읽어 보았다.


그러나 결국 하룻밤이 무엇이란 말일까?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특히 어둠이 빨리 옅어지고, 그렇게나 일찍 새가 노래하고,

수탉이 울고, 혹은 파도의 희미한 녹색골이,

색깔이 변하는 이파리처럼 생기를 띨 때는 그러하다.

하지만 밤은 밤으로 이어진다.


‘나도 한 번 적어볼까?’


나는 언니가 적은 글 뒤에 책의 다음 내용을 적었다.


겨울은 밤들을 한 묶음 움켜쥐고는,

지칠 줄 모르는 손가락으로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 준다.

밤들이 길어진다. 밤들이 어두워진다.

어떤 밤들은 밝은 행성을, 환히 빛나는 금속판을 높이 치켜든다.


‘이렇게 하니 우리가 서로 이어진 것 같네.’

나는 등대에 와서 필사하는 경험이 은은하게 재미있다고 느꼈다.


‘여기 참 신기한 공간이네. 이제 다 본 건가?’


나는 뭔가 더 신기한 게 있을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벽 한쪽에서 궁금했던 이곳의 유래를 발견했다.


<100여 년 역사 제주산지등대>

누군가 그랬다. 그 유명한 독일 로렐라이 언덕도 제주 사라봉 언덕의 절경에

비할 바 못된다고(...) 1916년 처음 불을 밝히고 이듬해 관리인이 상주하기 시작한 지

100여 년 만인 2019년 10월, 제주 사라봉 산지등대를 지키던 등대지기가 사라졌다.

해양수산부는 전국 유인등대의 무인화 작업을 이어왔고, (...)

관사와 사무실을 비롯한 공간들은 텅 빈 채 남길 운명이었다.(...)


“언니, 여기 등대지기의 관사와 사무실 이었었나 봐요. 여기 한 번 보세요.”

“오 그러네? 신기하다.”

“어쩐지 여기 공간이 사무실처럼 벽으로 막혀 있더라니... 저는 왜 이렇게 책상이 많이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사무실 느낌을 구현한 건 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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