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겨울의 소산오름 방문기

by 김용희

지난겨울 눈이 내리기 전까지 난 소산오름을 방문했다. 겨울 산은 무척 춥고, 맨발로 걷기는 어렵다. 하지만 난 이곳을 너무 좋아해서 눈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산을 걸어보기로 했다. 겨울은 산꼭대기부터 내려오기에, 지대가 조금 높은 소산오름의 흙은 차갑고 또 차가웠다.


나는 붙이는 핫 팩이 도움이 될까 싶어 발 등에 붙이고 걸어보았지만, 핫 팩은 주머니 안에 보온이 되는 공간에 있어야 작동하는 건지 차갑고 무겁기만 했다. 가끔 불량이 있어 핫 팩이 터지는 경우에는 산을 오염시킬까 봐 그 뒤론 핫팩을 포기했다. 핫 팩이 효과적이면 산행하시는 분들이 발등에 붙이고 하시겠지... 아무도 하시는 분들이 없으신 걸 보면 역시 핫 팩은 별로 효과가 없나 보다 생각했다. 우리는 신발이라도 신을 수 있지, 새들은 어떻게 이런 추위를 참고 견디는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가끔 발이 너무 시려 편백나무 잎 위에 발을 대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그 위에 올라서서 걸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흙을 밟으면 건강해지는 데, 잘 모르고 이 추위에 편백나무 잎을 걷고 갈까 봐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너어무 발이 시려서요..."


가까스로 대답하는 내게 아저씨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지나가셨다.


겨울 숲의 맨발 걷기는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이곳을 좋아하는 안경 쓴 어머니와 뽀글 머리 어머니는 항상 계셨고 그 밖에도 가끔 오시는 단발머리 어머니와 방금 지나가신 아저씨도 늘 계셨다.


"자기야, 이리 와봐."


길을 걷고 있는데 단발머리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나는 너무 추워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일단 가까이 다가갔다.


"이거 마셔봐."


겨울 숲은 너무 추웠고 온기가 그리워 냉큼 마셨다.


사계절을 숲에 오다 보니, 겨울 숲은 느낌이 정말 달랐다. 여름은 사람이 너무 북적여 서로 데면데면하고 겨울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온기를 나누는 사람끼리는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이게 뭔 데요?"


한 잔 먼저 마신 후 내가 말했다.


"보이차."


"보이차요?"


"내가 매일 마시는 건데, 이걸 마시면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아."


나는 절대 팔랑귀가 아니지만 듣고 보니 나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이곳에 매일 오세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남편이 여길 좋아해서 따라오는 날 있고, 못 오는 날 있지."


단발머리 아주머니는 개인적인 말을 아끼는 분 같지만, 내게 몇 마디 건넸다.


"나도 자기만 한 나이대가 있었는 데... 자기는 여기 매일 오나 봐?"


"네, 글을 쓰고 있는데 좋은 생각을 하러 많이 오죠."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 데, 지금 하고 싶은 걸 많이 해둬요. 나이 들면 내가 누구인지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나는 애들 다 키우고 50에는 좀 살만하더니, 60이 넘으니 멍해지고 내가 뭘 좋아한 지도 다 까먹어 버렸어. 자신을 찾는 건 결국 젊을 때부터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것 같아."


너무 추워하는 나를 보고 단발머리 어머니는 보이차를 다섯 잔이나 주셨다.


"자기야, 다 마셔."


보이차로 따뜻하게 배를 불린 나는 단발머리 어머니께 질문했다.


"저는 저를 특별히 힘들게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힘들다고 느낄까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잠시 멍해졌다.


"누구나 그렇지, 하고 싶은 게 많으면 힘들다고 느끼고 자기가 가진 걸 잘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늘이라도 가진 걸 쓰려 노력해 봐요."


나는 그렇게 겨울 숲에서 또 한 분의 현인을 만난 듯했다. 그 뒤로 단발머리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아직 어머니를 보진 못했다. 가끔 소산오름에 가면 나도 모르게 단발머리 어머니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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