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동안 나는 제주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루나 꿩과 같은 야생동물을 취재했고 소산오름에 가끔 들렸다. 2시경에 나랑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뽀글 머리 어머니>께서 산에 온다는 건 알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2시를 딱 맞추기는 힘들어서, 봄 내내 <뽀글 머리 어머니>를 뵙진 못했다.
<뽀글 머리 어머니>는 <안경 쓴 어머니>와 절친으로 두 분을 만나려면 2시경에 소산오름에 가면 된다. 두 분은 제주 토박이로, 제주 사투리를 쓰시는 데, 어머니들은 내가 외지인이라 제주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을까 봐 처음엔 천천히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나는 제주 MBC 라디오 '즐거운 오후 2시'를 들으면서 열심히 제주어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있어서, 제주어에 대한 큰 어려움은 없다. 이 프로그램은 2003년부터 제주 MBC에서 제작해서 제주 전역으로 송출되는 프로그램으로 남자 MC분은 순덕이 아방*, 여자 MC분은 순덕이 어멍*으로 불린다. 나는 두 분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얼마 전까지 실제 결혼한 부부가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그냥 두 분이 연기를 잘하시는 것 같고 실제 결혼한 부부는 아닌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의 재미난 점은 청취자 전화 연결인데, DJ도 청취자도 모두 리얼한 제주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생동감 있고 재밌다. 이 라디오를 이해하기까지 프로그램 난이도가 꽤 높지만, 영어 라디오를 들으면서 귀가 뚫리듯 제주어를 배우고 싶다면 이 프로그램을 들으면 정말 좋다. 청취자 중에는 가끔 귤밭에서 일하다가 전화 받는 분들도 있고, 조금 농사짓는다고 하는 데 DJ가 계속 물어보면 몇만 평 농사짓는 분도 나오고... 암튼 그래서 생생한 제주를 알고 싶을 때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청취자 선물로 쌀을 보내주는 것도 인간적이면서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를 들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인지, 나는 소산오름 어머니들과 대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어머니들께서 나한테 특별히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신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얼마 전에 시간이 맞아 2시경 소산오름에 찾아갔는데 오랜만에 <뽀글 머리 어머니>를 만났다. 전에 한 번 <안경 쓴 어머니>께서 못 오신 날 우연히 <뽀글 머리 어머니>랑 대화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맘에 드셨는지 차에 있던 감을 잔뜩 주시게 되면서 그런 인연으로 많이 가까워졌다.
"어이, 김 작가. 오랜만에 왔네.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글을 좀 쓰느라 못 왔어요."
"그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일하면서 바쁘게 지내야지."
"어머니, 더 젊어지셨네요? 그동안 여기는 무슨 일 없었나요?"
나는 그간 소산오름에 왜 못 왔는지 말씀드리면서 봄 동안 소산오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얼마 전에 여기 노루가 와서 담장에서 죽었어."
"왜요?"
"아마 길인 줄 알고 들어가다가 담장에 걸려서 못 빠져나간 것 같아."
"저런..."
"썩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사람들이 시청에 민원을 넣어서 노루 치워달라고 했는데, 오다가 시청 차가 길에 빠져서 못 나가 버리니까 여기 길에 야자수 매트 깔아 준대. 차도 빠지고 사람도 미끄러지고 야자수 매트 깔아주면 좋지. 나도 한 번 내려오다 미끄러진 적 있었거든..."
맞다. 이곳은 주차장에 차를 대지 않으면, 100이면 100바퀴가 다 빠져서 레커차에 끌려 나가는 곳이다. 하지만 농기계나 공사용 차량도 지나다니는 곳인데 그분들도 종종 빠진다. 여기에 야자수 매트라도 깔아 놓으면, 농사용 차량이나 가끔 이곳을 보수하러 오는 화물차도 쉽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일이다.
"야자수 매트 갖다 놓으니까, 사람들이 또 오름 안쪽 맨발 걷기 하는 곳에 까는 줄 알고, 여기다 깔면 안 된다고 벌써 시청에 말했대. 빠르기도 하지?"
"진짜 빠르네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여기 매트 말려 있는 것 봤는데, '매트를 이 안쪽까지 깔면 어쩌나?' 생각하긴 했어요. 그렇게 되면 맨발 걷기 효과가 없어지잖아요..."
맨발 걷기는 맨땅과 맨발이 접지(earthing)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겨울에 발이 시려 편백 낙엽 위에 발을 놓고 있었을 때 화물차 아저씨가 나에게 효과가 없다고 했던 이유가 그런 것이다. 뭔가가 지면에 깔리면 맨발 걷기는 효과가 없다. 어쨌든 나는 지금 바깥에 쌓여 있는 야자수 매트가 이 안쪽에 깔리는 건 아니라는 데에 안도하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에 노루도 와요? 저는 노루는 한 번도 못 봤는데요..."
"노루는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먹을 것 찾아서 여기에 많이 오는 데, 그 노루는 어떻게 봄에 왔나 봐."
"어디서 들었는데 노루는 원래 천적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요즘 들개가 많아서 노루를 많이 죽인다고 들었어요. 육지 사람들은 왜 들개를 안 잡느냐고 하던데, 현실적으로 큰 산에서 들개를 다 잡을 수가 없는 거죠?"
나는 얼마 전 거문오름에 갔다가 해설사님께 노루 천적은 원래 없는 데 요즘 들개가 출몰해서 노루가 위험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뒤에 계시던 관광객 아저씨들이 "왜 제주 사람은 들개를 안 잡느냐고, 다 잡으면 될 텐데?" 하는 말을 했었다.
나는 행정적인 사정을 잘 모르지만 추측건대, 들개를 잡으러 갈 인력은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제주도 인구*가 송파구 인구*와 비슷한 67만 명밖에 안 되고 제주시에 49만 명 정도 살고 서귀포시에 18만 명 정도 사는 데, 제주도 땅은 크고, 상대적으로 인구는 적고... 사람들은 주로 도심에 살기 때문에 깊은 산으로 들어가 들개를 잡아 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뽀글 머리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셨다.
"들개는 못 잡아. 들개를 잡으려면 총으로 쏴야 하는 데, 총을 쏘면 오발 위험이 많고... 덫을 놓자니 사람이 밟을 수도 있고, 보호 동물이 죽을 수도 있고 하니까 진짜 잡기가 어렵지."
하긴 제주에는 고사리를 따러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많은 데, 들개인 줄 알고 총을 쐈다가 오발 사고라도 나면 정말 아찔하다.
"그 들개들은 어디서 온 건데요?"
"들개는 사람들이 버린 유기견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들개가 된 거지."
나는 유기견이 들개가 되었단 말에 말 문이 턱 막혔다.
요즘 제주는 들개가 진짜 무섭고 위험하다. 어떤 남자분이 5.16 도로를 혼자 차 타고 가다가 들개 무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일단 너무 무서워서 창문부터 올리고 숨죽이고 개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들개는 이미 야생성을 되찾은 늑대처럼 변해서 눈빛이 장난 아니라고 덧붙여 설명하셨다. 그분 말씀이 들개는 노루 생식기만 딱 물어서 죽이고, 시체는 안 먹는다고 한다. 거문오름 해설사님께 들은 얘기로는 들개는 노루 창자만 먹고 가버린다고 했다.
들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도 출몰한다. 사려니숲길에 가도, 천아계곡에 가도 들개를 조심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현실적으로 야생으로 방사된 개를 잡기는 너무 힘들고 위험하니까 사람들이 개를 산에 유기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보았다. 어쨌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평소 소산오름에 대해 궁금했던 걸 여쭤보았다.
"여기 다른 동물은 또 어떤 애들이 와요? 꿩 소리는 엄청나게 들리는 데..."
"여기, 어디서 왔는지 고양이도 오고. 지난번에는 닭 한 마리가 혼자 뒤뚱뒤뚱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여기서 며칠 살았는데, 요즘은 안 보여."
"닭이요?"
나는 도두봉에서 발견한 수탉을 생각하면서, 이곳에 닭이 있으면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에 되물었다.
"혹시 걔가 또 나오지는 않을까요?"
"아마 근처 농장에서 탈출해서 혼자 여기까지 왔나 본데, 안 보이는 걸 보면... 누가가져 갔거나, 죽었겠지..."
<뽀글 머리 어머니>는 닭이 죽었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는 듯 천천히 말씀을 이어갔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다른 걸 여쭤보았다.
"공중화장실 앞에요... 수도가 있었잖아요? 그것도 없어진 것 같아요."
나는 겨울까지 수도를 사용했었는데, 갑자기 안 보여서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아니, 그게... 여기 맨발 걷는 사람들 발 씻고 가라고 시청해서 해 준 건데... 그게 없어졌어."
"그러니까요. 언젠가부터 수도가 안 보이던데요?"
참고로 말하자면 제주 토양은 현무암으로 되어 있어서 빗물이 땅으로 모두 스며들어 바닷가에서 솟아난다. 그래서 90년 대만 하더라도, 중산간 지방에 사는 여자들은 물허벅*을 메고 바닷가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서 물을 길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서 제주에서 물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어쨌든 힘든 시기를 직접 보았던 사람들이 많은 만큼 사람들은 물을 아껴 쓰는 걸 생활화하고 있다. 어쨌든 제주의 이런 현지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으니 때로는 안타까운 일도 많이 일어난다.
<뽀글 머리 어머니>는 수도가 없어진 것을 보고 이렇게 해석하셨다.
"차박하는 사람들이 여기다 차 대놓고 세차하고, 물 너무 많이 쓰고 그래서 없어졌어. 그리고 이 앞에다 쓰레기 다 버리고, 밤에 뭘 태워놓고 가고 해서 시청에서 쓰레기를 치우다 치우다 안 되겠어서 수도를 없앴대. 그랬더니 이제는 공중화장실 세면기에 수도를 연결해서 쓰거나, 저 세면기에서 몸도 씻고 그래... 물 좀 아껴서 쓰고 쓰레기도 좀 가져가고 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
나는 캠핑카를 타본 적도 없고, 차박을 해본 적도 없어서 사진으로 볼 때는 그저 로망이고 아름답고 예쁜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생각해 보니 현실적으로 물이라든지 씻는 거라든지 많은 어려움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또한 예전 90년대에는 중산간 마을 사람들이 실제로 물허벅을 가지고 해안가 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썼다는 데, 그런 걸 본 어머니 나이대 분들이 물을 팍팍 쓰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지도 이해가 갔다. 나는 소산오름에 오는 많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같이 물을 좀 아껴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3시가 되고, <뽀글 머리 어머니> 따님께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다음번 만났을 땐 이곳에 대한 좋은 소식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소산오름을 내려왔다.
*물허벅: 주로 제주도에서 쓰는 물동이. 불룩한 배에 주둥이가 병처럼 좁은 항아리를 말하는 데, 물이 출렁거려도 흘러넘치지 않게 설계되어 있으며, 바구니로 된 물구덕에 넣고 등에 지고 나른다.
*아방: 아버지의 제주 방언
*어멍: 어머니의 제주 방언
*제주도 전체 인구: 67만 7,057명
*송파구 인구: 65만 7,260명
*제주시 인구: 49만 2,706명
*서귀포시 인구: 18만 4,351명
(인구수는 23년 5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