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두봉에서 만난 이
특이하게도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네”라는 대답을 활기차게 하는 분이었다. 어느 책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요청을 할 때 세상을 향해 “네”라고 크고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는 사람은 복을 쉽게 받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분이 그런 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찾으시는 닭은 도두봉 정상에서 도두봉 입구 쪽으로 내려가 도두봉 안내 표지판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능선을 타고 도두봉을 반 바퀴쯤 돌면 나와요. 이쪽으로 가면 돼요.”
“닭이 정말 있는 거예요? 닭 있는 곳을 찾으려면 어떻게 찾으라고 하면 돼요?”
“처음 온 사람들은 여기 무지개 해안가 ‘도두봉 주차장’에 주차하고 도두봉 쪽으로 올라오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돼요. 여기 보면 오른쪽에는 ‘길 없음’ 표지판이 있잖아요. 저기는 길이 진짜로 없으니 들어가면 안 되고 왼쪽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닭이 곧 나와요. 닭은 원래 반경 50m를 넘어가지 않으니 닭이 우리를 찾진 않고 우리가 닭을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조금 걷다 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통통한 수탉이 나왔다.
‘얘는 대체 왜 여기에 살게 되었을까?’
닭 옆으로 밥그릇이 보였다.
“여기 밥그릇도 있네요?”
“사람들이 가져다 준거예요. 원래 암탉도 있었는데 암탉이 없어진 뒤로 얘가 영 병든 닭처럼 힘이 없어요. 암탉이 어디로 간 건지 원... ”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안타까운 마음을 계속 표현했지만 나는 수탉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빠르게 사진을 찍었다.
오늘 키세스 존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사진을 선물했지만 평소 사진 실력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간신히 찾은 닭을 잘 못 찍을 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렇지만 수탉은 원래 운동성이 없는 동물인지 아니면 정말 암탉이 사라져서 우울해진 건지 수탉은 움직이지 않고 증명사진 찍듯 꼼짝 않고 그냥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옆에 있는 동백꽃나무와 수탉의 색이 어우러져 좀 키치 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탉을 촬영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어? 이거 뭐야. 여기 왜 닭이 있어?”
그렇게 나는 무사히 수탉 촬영을 마치고 <도두봉에서 만난 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수탉 말고 볼 건 또 뭐가 있어요?”
“저는 항상 이 쪽 무지개 해안으로 걸어 다니는 데 여기 걷기 좋아요. 여기서부터 걸어서 무지개 해안 끝 유명한 돈가스 집까지 걸어가면 걷기 딱 좋지요.”
나는 그와 함께 무지개 해안 쪽으로 나왔다. 무지개 해안은 카페와 식당이 많아 잠시 쉬었다고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카페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아쉬운 대로 길가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기로 했다.
“내가 사줘야 되는데... 커피 감사해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도움 받았으니 당연히 제가 사야죠.”
무지개 해안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나도 무지개 해안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평화로웠다.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닭을 찾으러 왔어요?”
“아, 제가 여행 책을 쓰고 있는데 수탉이 여기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어요. 재미난 관광콘텐츠를 소개하는 책을 쓰려고요.”
“아 그래요? 그럼 여기 무지개 도로도 더 찍어요. 아 참, 저쪽 해안에 보면 새가 많은 데 쟤들은 ‘가마우지’라고 해요.”
“아 쟤들이 ‘가마우지’ 예요? 저 쟤네들 많이 봤는데 이름은 제대로 몰랐어요. 바닷새를 잘 아시네요”
“저는 낚시를 좋아해서요. 일 년에 한 100번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나 봐요.”
“일 년에 100번이요? 그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요?”
“20만 원 정도 들어요.”
“20만 원 내면 100번 태워준다고요?”
“아니오. 한 번에 20만 원이요.”
“네? 그럼 일 년 비용이 얼마야? 그 비용이 다 감당되시는 거예요?”
“그럼요. 그 정도는 젊었을 때 다 벌어 놨지.”
낚시를 즐긴다는 말과 이분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이분이 ‘도두봉에 사는 신선’ 아닌가 싶었다. 정말 신선을 만났다 생각하고 나는 평소 궁금하던 것들을 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이 있잖아요.”
“있죠.”
“그것은 어떻게 키워요?”
“못 키워요. 그냥 자기 그릇대로 사는 거죠.”
“그럼 내 인생이 양념 종지다 하면 양념 종지로 살다 죽는 거예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다 그릇대로 사는 거지 뭐.”
“그러면 사람들이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잘 되면 막 잘난 줄 알고 못되면 막 비굴해지고.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건 절대 안 돼요. 세상이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결국 나는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함께 무지개 해안 끝 돈가스 집까지 갔다.
“여기 돈가스 집도 사진 찍어요. 책에 다 여기서 맛있는 거 먹고 가라고 하면 좋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 많이 오던데.”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책 샘플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어디 가면 뭐가 맛있다는 것도 넣어달라고 하긴 했어요. 근데 돈가스 집을 실으려면 이 돈가스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닐까요? 일일이 가게에 다 물어보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아직 초자라 아는 게 많이 없어요.”
“뭐 주인이 싫어할 리가 있나요? 홍보해 준다고 하면 모두 다 좋아하겠죠. 그리고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안 걸릴 텐데요.”
이 분과 대화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분은 어떤 질문에서도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내뱉기보다는 아예 침묵했다. 나는 그런 점이 이 분을 일 년에 100번이나 낚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걸 거라 생각했다. 좋아하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사람에게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때 ‘생각’은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한 말입니다.
그 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달라지지요.
- 사이토 히토리 『부자의 행동습관』, 152p.
우리는 무지개 해안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근처에는 커피를 마시는 하르방, 머리 위로 손 하트를 한 하르방이 보였다. 하르방을 사진 찍고 싶다는 내게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말했다.
“하르방 손 모양이 다르잖아요. 그런 것도 책에 소개하면 좋을 텐데. 혹시 알고 있어요?”
“하르방이요? 아뇨 그런 건 몰랐었는데요.”
“봐봐요. 여기 찾아보면 나오는 데 왼손이 더 높이 올라간 하르방은 ‘무관’ 오른손이 더 높이 올라간 하르방은 ‘문관’이에요. 문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의미로 한 쌍의 하르방이 늘 함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였군요. 몰랐었는데 알게 돼서 기쁘네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제주투어버스’가 지나갔다.
「수요일 탑승 무료」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헤어지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책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분을 만나지 못했을 텐데. 책을 쓰다 보니 재미난 경험도 하네. 책을 계기로 이렇게 좋은 사람도 만나고. 오늘 참 고맙고 감사했어."
이 날 나는 헤어지면서 이분의 성함과 연락처는 차마 묻지 못했다.
“제주에 오래 계실 거예요?”
용기를 내어 또 뵐 수 있는지 물었다.
“아마 한 3년은 여기에 있을 거예요. 나중에 도두봉에 오시면 아마도 저 있을 거니까 다시 만나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책이 완성되면 도두봉 입구에서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