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길로 가면 그늘이 있나요? 제가 분화구 코스로 들어갈 생각을 해서 모자를 안 가져왔거든요."
나는 해설사님께 여쭈었다.
"이 길로 가시면 다 숲이라 대부분 그늘이고요. 마을 길로 들어서는 한 20분가량 만 그늘이 없을 거예요."
"혹시 가다가 힘들면 돌아 나올 수도 있나요?"
"이곳은 한 번 들어가시면 돌아 나오실 수는 없고, 진행 방향으로 끝까지 가셔서 마을에 있는 셔틀을 타고, 돌아오셔야 해요. 셔틀은 평일은 20분 간격, 주말은 1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어요."
나는 해설사님의 말씀을 듣고 <미쓰 탠저린> 언니를 쳐다봤다. 언니도 모자가 없었다. 나는 평소에 땡볕을 잘 돌아다녀서 크게 상관이 없는데, 언니는 어떻게 느낄지 몰랐다. 가끔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저는 오늘 왔으니까 한 번 용암길로 가봐도 좋아요. 오늘만 갈 수 있는 길이라잖아요."
언니가 말했다.
나 역시도 일 년에 한 번 열린다는 용암길이 어떤 길인지 오늘 한번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용암길로 갈까요?"
우리는 그렇게 계획에 없던 용암길로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부터 6km, 3시간 30분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해설사님께 여쭤보니 이곳은 용암이 흘러간 곳을 따라가는 길도 대부분 내리막으로 되어 있고 평지도 많아 돌에 낀 이끼만 조심하면 걷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하셨다. 나는 전날 삼의악에서 산길 걷는 연습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예행연습은 좀 됐을 것 같단 생각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이 용암길을 걸으러 거문오름 국제트레킹대회에 참가한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면은 주로 '일 년에 단 한 번! 개방되지 않는 '용암길'을 따라 걸을 기회', '행사 기간 내 신비의 숲, 비밀의 숲이라 불리는 용암길 공개'와 같이 용암길을 홍보하는 문구가 많았다.
'아니, 이걸 내가 왜 여태 몰랐지?'
나는 6년 전에도 한 번 이 국제트레킹대회에 참가했었는데, 그때는 참가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분화구 코스에서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국제트레킹 행사에서 거문오름을 예약 없이 갈 수 있다는 것과 여러 재밌는 체험행사가 열린다는 건 알았었지만, 가장 중요한 용암길의 존재는 몰랐다.
"해설사님의 아니었으면, 우리 여기 못 보고 갈 뻔했네요."
나는 해설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옆에 있던 언니에게 말을 건넸다.
"맞아요. 왠지 꼭 봐야 할 곳 같은데, 그냥 갈 뻔했어요. 오늘 참 우연에 우연이 겹치네요. 용희 씨랑 거문오름에 오게 될 줄 몰랐었는데 이렇게 오고, 일 년에 한 번 공개한다는 용암길도 가보고요."
나도 언니와 같은 생각이었다. 오늘은 날씨마저 도와주는 운 좋은 날이다.
용암길 입구로 들어가려는 데 입장객 수를 세고 팸플릿을 나눠주는 부스가 보였다.
"언니, 우리 저 팸플릿 하나씩 가져가서 급하면 모자로 쓸까요?"
언니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좋아요."
우리는 팸플릿 2장을 챙겨 용암길 입구로 들어서면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입구를 보니까 약간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아요."
셀레는 마음으로 내가 말했다.
"진짜 그러네요."
용암길 입구는 어둡고 까매 보였고 나무가 워낙 울창해서 고개를 숙이고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바닥에는 나무 테크 없이 그냥 산길이었는데,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돌이 가득하고 돌마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숲임을 인증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위 위 나무 덩굴과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뒤엉켜 자라나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언니, 여기 제대로 원시림이네요. 저쪽에서 산적이 뛰어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여기 그냥 말 타고 달리면 그대로 사극 세트장 같을 것 같은데요..."
나는 구불구불한 나무 덩굴과 고사리밭이 뒤섞인 저지대를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산적이 나타나고 내가 말을 타고 도망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진짜 그러네요. 영화 촬영장 같아요. 한라산에 가면 데크가 잘 되어 있어서 걷기 좋지만 인공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는데, 여기는 그냥 원시림이네요. 진짜 한 번 와 보기 좋은 곳이에요."
우리는 한라산에 갔던 이야기, 도두봉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숲을 걸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선두로 걸을 때 자꾸 길을 잃는다는 데 있었다. 워낙 원시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길이 어딘지 잘 모르겠고, 나는 분명 길 따라갔는데 걷다 보면 막다른 길이고... 드디어 나는 두 갈래 길에 멈춰 섰다. 위쪽과 아래쪽 길.
"언니, 여기 길이 없어요. 길이 안 보여요."
나는 뒤에 있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는 두리번거리다가 위쪽 길도 아래쪽 길도 아닌 바위 뒤쪽으로 이어진 길을 찾았다.
"용희 씨, 이쪽으로요. 여기 보면 나무에 빨간 끈이 매여 있고요. 이렇게 나무에 '거문오름 트레킹 9 용암길'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이런 표시를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아요."
나는 보이지도 않던 바위 뒤쪽 길을 찾아내는 언니가 엄청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언니, 만약 저 혼자 왔으면 길 잃었을 것 같아요. 진짜 원시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길 찾기 정말 어렵네요. 이래서 해설사님께서 뒤로 돌아 나오면 안 된다고 한 것 같아요. 혼자 돌아 나오려고 하다 보면 백이면 백 모두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곳인데요?"
“정말... 그래서 그런가 봐요.“
이곳은 사람들의 조난을 방지하기 위해 각각의 지점마다 해설사님이 상주하면서 길을 안내한다. 우리는 숯 가마터에서 첫 번째 해설사님을 만났고, 어느덧 <두 번째 해설사>님과 마주했다.
"아니, 이것은?"
나는 커다란 잎이 탐스러운 고사리밭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고사리네."
내 목소리에 <두 번째 해설사님>이 말했다.
"맞아요. 고사리.”
"이 고사리 이름이...."
"이름은요?"
해설사님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관, 관"
"관?"
"아니, 대, 대?"
"대? 뭐죠?"
사실 나는 얼마 전 화순 곶자왈에서 만난 <사진작가님>과 '족은 노꼬메 오름'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작가님은 큰 잎이 탐스러운 고사리를 가리키며 이 고사리의 이름이 ‘관중 고사리'라고 가르쳐주셨다.
“용희 씨, 있잖아요. 저희 언니가 이 고사리를 보고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글쎄요. 뭐라고 하셨어요?“
“이름이 관중 고사리인데, ‘어, 어 이 고사리 관객 고사리네.’ 했어요. 그래도 언니가 한 자는 맞춰서 ‘언니, 한 자는 맞췄네.’ 했더랬죠. 그러니까 용희 씨도 이 고사리 이름은 꼭 외워둬요.“
<사진작가님>의 거듭된 당부에 그렇게 열심히 외웠건만, 결정적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관중 고사리'는 기억이 안 나고, '관종 고사리? 대중 고사리?'만 계속 맴돌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관종 고사리'와 '대중 고사리'는 누가 봐도 정답이 아닌 상황이라 그냥 혼자 "관, 관, 대, 대."하다가 멈췄다. 나를 보던 <두 번째 해설사>님은 고사리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나라 고사리는 총 400종이 있는데, 함부로 고사리 이름을 아는 척하면 큰일 나겠죠?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특별히 이 고사리 이름은 알려드릴게요. 이 고사리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400종의 고사리 중 이 검은 오름에만 있는 고사리로 이름은 '일색 고사리'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아이는 잎 맥의 방향 때문에 이렇게 뒤집어 보면 뒷면이 앞면 같고 앞면이 뒷면 같은 특징이 있어요."
결국 이 고사리는 '관중 고사리'도 '관종 고사리'도 '대중 고사리'도 아닌 '일색 고사리'였다. 나는 잎이 커다란 고사리는 모두 '관중 고사리'일 거로 생각했는 데, 짧은 지식으로 입 밖으로 고사리 이름을 말했더라면 정말 부끄러울 뻔했다. 그나저나 고사리가 우리나라에 400종이나 있는 건 몰랐네...
"아, 진짜 그러네요. 뒷면이 더 예쁜 고사리는 처음 봐요."
나는 해설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고사리 잎의 앞면과 뒷면을 만져보고, 사진 찍으며 말했다.
"오늘 이렇게 거문오름에 오셔서 '일색 고사리' 이름도 외워가시면 좋겠죠?"
해설사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갖고 있던 종이를 꺼내 '일색 고사리'라고 적었다. 다음번에 만나면 이 고사리는 꼭 알아볼 수 있길 바라며...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국제트레킹 대회를 맞아, 사람들이 길을 정비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번 트레킹 대회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미리 이곳을 다 정비해 놓았네요.."
숲과 나무에 익숙한 언니가 내게 말했다. 아마 비가 한 번 오면 수풀이 쑥쑥 자라나는 숲의 특성상 누군가 미리 길을 걷고 길을 정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길이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이 울창한 산림 안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고...
"저는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언니 말씀 듣고 보니 그러네요. 미리 준비해 주신 사람들이 있었나 봐요. 아까 주차장도 미리 건초 같은 걸 깔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주차도 못 했을 거예요."
나는 이번 트레킹 대회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많은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주차장도 정비하고, 용암길도 미리 정비해 준 누군가가 있었고, 그분들의 세심함에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다.
"아 이 풀. 우리 어렸을 때 많이 먹었어요."
언니가 땅에 있는 어떤 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강아지풀 아니에요?"
"강아지풀 아니고..."
"그럼 억새인가요?"
"글쎄,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억새보다는 작은데... 어릴 때는 이 풀 밑동을 벗기고 많이 먹었어요."
"언니 있잖아요. 지난번에 제가 거문오름 왔을 때, <서울깍쟁이> 언니와 함께 여기 온 적이 있었는데요. 해설사님이 갑자기 억새를 벗겨서 먹어보라고 우리한테 건넸어요. 아마 어린 시절 향수가 떠올라 저희에게 권한 것 같은데요. 그 언니가 너무 놀라 도망가고 난리였는데요. 저도 건초를 먹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같이 도망갔어요."
"하하하. 왠지 그림이 그려지네요. 우리에겐 익숙한 건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황할 수도 있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용암길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벵뒤굴' 앞에 섰다. '벵뒤굴'은 철문으로 막혀 있었고, 앞에는 '벵뒤굴' 지도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입구가 3개의 입구 중 어디인지 찾아보려 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알아내지 못했다. 벵뒤굴을 들여다보니 입구의 천장은 낮았고 어두컴컴했다.
벵뒤굴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용암동굴 중 하나로 용암이 평평한 땅을 흐르면서 연속적인 미로형 동굴을 만들어 낸 곳이다. 약 4.5km 길이이며, 안에 들어가면 작은 동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고 한다. 벵뒤굴은 지표면 가까이 생성되어 천장이 얇아 함몰된 입구가 생겼다고 하며, 동굴 구조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되어 있고, 미로형 동굴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거문오름 안내 표지판에 의하면, 벵뒤굴은 천연기념물 제490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동굴 근처에는 쉬어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가 굴 입구인데요. 이곳에 의자가 있으니 쉬었다 가세요."
해설사님의 말씀에 우리는 잠시 쉬기로 했다.
"사탕 먹어도 돼요?"
누군가 해설사님께 묻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마음껏 드셔도 돼요. 많이 드셔도 돼요."
해설사님이 말씀하셨다.
마침 점심시간도 좀 지났고, 한창 배가 고프던 때라 나는 언니와 함께 딸기 사탕을 먹었다. 평소 같으면 이 사탕이 이렇게 맛있지 않겠지만 이곳에서 만나니 제대로 당 충전이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해설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딸기 사탕을 3개 받았다. 이 정도 당이면 이제 이 길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자가 없어서 서서 쉬던 우리는 체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그냥 다시 걷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벵뒤굴' 입구를 지나 걷다 보니, 이곳은 아까 원시림 같은 곳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 중 어딘가의 한 장면 같은 숲길이 펼쳐졌다. 제주의 돌과 나무숲과 흐르는 물줄기가 오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이 길 중간쯤 어딘가에서 잘생긴 뱀파이어를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긴 어디지? 여기도 벵뒤굴 입구인가요?"
조금 걷다 보니 동굴 입구가 보였는데, 언니는 내게 질문했다.
"아마, 아까 3개의 동굴 입구 중 한 곳 같은데요? 입구가 너무 낮고 안이 어두컴컴해서 들어가긴 힘들 것 같네요."
모험심에 누군가는 들어가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입구가 너무 낮아 섣불리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어쩌면 옛날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전쟁을 피했을 수도 있어요. 아마 이런 곳에 숨었겠죠?"
언니의 말에 나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일본군 진지와 비슷한 동굴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아픈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제주 땅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과거에 인프라가 전혀 없던 시절 전쟁을 겪었던 선조들은 얼마나 고생이었을까? 후손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유독 제주에는 제사 문화가 크게 발달해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20분만 더 가시면 돼요."
길을 걷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만난 해설사님은 남은 시간을 안내해 주셨다.
"20분 정도는 쉽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마지막 힘을 내기 위해 강조해서 말했다.
마을로 들어서니 곧 피어나길 기다리는 어리고 하얀 수국들이 우릴 반겼다. 수국의 어린 꽃은 하얀색으로
피었다가 자라면서 색을 입는다. 제주는 요즘 수국이 제철을 맞아 한 참 피어나고 있고 나는 수국에 이끌려 볼 때마다 수국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어머 예뻐라."
나는 예전에는 다 핀 수국이 예뻤는데, 요즘에는 싱그러운 힘이 느껴지는 갓 피어나는 수국이 더 예쁜 것 같다. 파란 하늘과 함께 탐스러운 수국 꽃송이를 찍으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언니, 이것 좀 보세요. 진짜 예뻐요."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담장 옆으로 세상의 모든 수국을 모아놓은 듯한 집이 보였다. 수국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색이 변한다고 하던데, 요즘은 다양한 색뿐 아니라 품종도 다양해진 것 같다. 담장 옆으로 목수국, 별수국, 산수국을 모두 모아 놓았다. 수국에 취해 한 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언니가 내게 말했다.
"저는 이 집주인이 더 궁금한데요. 정원의 나무들도 심상치 않아요. 대문도 제 스타일이고."
언니의 말을 듣고 정원 안쪽을 살펴보니 아치형 설치물 위로 장미 덩굴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이곳은 고급 주택이 많네요. 정원도 넓고... 이런 마을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좀 조용하게 살기 좋은 마을이잖아요."
"그런가요?"
언니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도 행복하지만,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이런 곳에 살아도 멋질 것 같다고 상상했다. 외국 방송에 나오는 이층집 같은 집들이 꽤 많이 있는 부유한 동네였다.
"이제 다 왔나 보네요."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 언니와 나는 눈앞에 보이는 '방주 할머니'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셔틀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마을 길은 햇빛이 강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담장 옆으로 나무들이 많아 걷기 좋았다. 햇빛가리개 용으로 챙겼던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팸플릿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언니, 여기 '거문오름' 사행시 짓기 이벤트 있어요."
"용희 씨, 한 번 출품해 봐요."
"그럴까요? 근데 '름'자를 어떻게 쓰죠? 늠름하다? 이렇게 해야 하나?"
"음도 해주나요?"
언니의 말에 나는 급히 사행시 짓기 QR코드를 찍어 '름'자에 대한 지침이 있나 살펴보았다. 특별한 지침은 없고, 그냥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사행시를 제출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름'자만 해결되면 한 번 출품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데, 어느새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강단 있게 생긴 여자 기사분이 내리시면서 "셔틀은 30분에 출발합니다."라고 소리쳤다.
"언니 저분이 버스기사님인가 봐요. 제가 제주 와서 놀란 게 여자분들이 건설 현장에도 있고 택시 기사도 하고 음식 배달도 하고... 주로 육지에서 남자분들이 하던 일을 성별과 관계없이 하는 게 정말 인상적이에요."
"그러게요. 운전기사님도 포스가 남다르신 분이네요."
언니가 대답했다.
이곳 사람들은 생활력이 강해서 남자든 여자든 일 자리가 있으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편이다. 추측건대 서비스업 비중이 그리 높지 않고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아 성별에 따른 직종의 차이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선글라스를 낀 멋진 운전사님의 차를 타고 탐방 안내소로 돌아왔다.
"언니, 이렇게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니까 여기가 제주 같지 않고 어디 외국에서 패키지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요. 언니랑 이렇게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러게요. 오늘 참 재밌는 날이네요."
언니와 나는 탐방 안내소에 도착해서 숲 해설사님들이 진행하는 만들기 부스로 갔다. 나는 '나무로 된 큐브'를 만들었고, 언니는 '종이로 된 한라산 입체' 만들기를 했다.
나무로 된 큐브는 총 8개의 나무 조각을 밀크 테이프로 붙여 보이는 면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교구로, 학교나 단체의 생태숲 관련 교육자료로 활용된다고 했다. 총 6개의 면에 6개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어 있고, 순서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그림이 다 꼬여 버린다. 해설사님은 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친절히 모든 면에 점을 찍어 이 면이 몇 번째 면인지를 세세하게 표시해 주셨다.
나는 그간 일러스트를 그렸던 짬으로 한라산을 쓱쓱 그리고, 수국을 팍팍 그려나갔다. 나의 거침없는 손길에 해설사님들께서 부스로 구경 오셨다.
"잘 그리시네요."
해설사님들이 말씀하셨다.
"아니, 이게 좀 근본 없는 그림인데 그냥 느낌으로 그리는 거예요."
"좋은데요? 색감이 맘에 들어요."
다른 해설사님이 말씀하셨다. 특별히 칭찬받을 만큼은 아닌 것 같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여기 그림 그리실 때는 유네스코 로고는 꼭 그려주셔야 해요."
해설사님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도안이 생각나지 않던 차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유네스코 로고를 그리고 있는데, 해설사님이 그린 나비 도안이 눈에 띄었다.
"해설사님, 이 나비 그림은 뭐예요?"
"이 나비는 '산굴뚝나비'예요. 원래 한라산 해발 1,300m 이상의 지역에서 서식하는 데, 최근 조릿대가 증가하면서 먹이가 없어져서 해발 1,700m 이상으로 서식지를 옮겼어요. 개체수도 감소하고요. ‘산굴뚝나비'는 구상나무와 함께 한라산 깃대종으로 분류돼요."
"깃대종이 뭐예요?"
"깃대종은 지역 생태계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종을 깃발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에요. 쉽게 말하면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생물종을 말해요."
"아 '깃발을 꽂는다.' 할 때의 그 깃대예요?"
"네. 맞아요. 만약 '산굴뚝나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생태계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나는 '산굴뚝나비'가 한라산에서 영원토록 잘 살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그림을 완성했다. 우리가 만들기 체험을 하는 동안 해설사님들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는 친절한 해설사님들 덕분에 오늘이 행복하게 기억될 수 있어 기뻤다.
"용희 씨, 저 티셔츠 어때요?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데 귀엽지 않아요?"
만들기 체험을 하고 나오는데 언니가 말했다.
"저 오름 티셔츠요? 너무 귀여운데요?"
"저기서 파는 스카프도 색이 정말 예뻐요."
“우리 그럼 하나씩 구매할까요? 오름 갈 때마다 입으면 재밌지 않을까요?“
나의 제안에 언니는 그러자고 답했다.
어느덧 3시가 넘어 입장하기 전 봤던 티셔츠와 스카프 판매대는 철수했고, 우리는 거문오름 탐방 안내소 안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이 기념품 가게는 '선흘2리 마을회'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3명의 여자분이 우릴 반겼다. 이 티셔츠는 사이즈가 다양해서 무슨 사이즈를 사야할지 고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원래 중·고생 들이 이렇게 친구끼리 맞춰 입는 걸 많이 하는 데, 학생들도 아닌 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까 마치 즐거웠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니, 도민은 여기서 굿즈는 안 살 것 같지 않아요?"
기념품점을 나오면서 나는 언니에게 말을 건넸다.
"맞죠."
언니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가 도민인 줄은 사람들은 모를 것 같아요. 이렇게 굿즈까지 구매하니까 진짜 여행하는 것 같네요."
“굿즈 구매는 진짜 대박이네요. 도민이 누가 여기서 이 티셔츠를 사겠어요?”
우리는 소녀가 된 듯 깔깔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나왔다. 다음에 언니와 오름 갈 때 이 티셔츠를 입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벌써 나는 언니와의 다음번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