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책 읽으면 좋은 삼다수 숲길

by 김용희

"언니, 요즘 어떻게 지내요?"

요즘 들어 자주 못 본 희 언니에게 연락했다.


"얼마 전에 한라산 번개로 다녀왔는데, 윗세오름 정말 멋지더라."


6월 초에는 사람들이 철쭉을 보러 한라산 영실코스에 많이 간다. 영실 코스는 길이 5.8km, 2시간 30분이 걸리는 코스로, 한라산 등산 코스 중에는 가장 짧으면서도 경치가 아름다운 구간이다. 차로 1,280m 고지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전문가들이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코스가 맞다.


하지만 초보자도 초보자 나름이고, 한라산은 또 한라산인 법. 나는 영실코스에 갔다 내려오는 데 11시간이 걸렸다. 경치가 워낙 경이롭고, 아름다워서 쉬다 걷다 사진 찍다 보니 오래 걸린 것도 있지만, 계단이 가파르고 계단의 층고가 높아 걷는 데도 힘이 많이 들었다. 나중에 하산할 때는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여서, 다리가 풀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쨌든 전에 한 번 영실코스에 다녀왔다가 다리가 풀려버린 나는 이렇게 좋은 계절에 철쭉을 보러 가는 한라산인데도, 심지어 매우 가까운데도,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6월의 한라산은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본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번에 희 언니도 철쭉을 보러 다녀온 것이었다.


"오늘은 당일치기로 추자도 다녀왔어."


"추자도요?"


언니 입에서 또 다른 여행지인 추자도 얘기가 나왔다. 희 언니는 원래 걷는 게 취미여서, 잘 걷기 때문에 여기저기 잘 다니시는데... 한라산에 덧붙여 추자도라니. 6월의 제주는 정말 볼 게 많은 시기 같다. 언니는 내게 추자도 사진을 보냈다. 풍경 사진이었는데 멀리 보이는 바다와 산, 마을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우와. 사진 멋저요. 여기가 추자도예요? 저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정말 멋져요."

나는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추자도는 신기하게 엉겅퀴국을 팔아.”


“엉겅퀴국이요?”


“응. 자기가 SNS에 올렸던 엉컹퀴.”


“그 엉겅퀴요? 설마, 국에 꽃을 넣어서 끓이진 않죠?”


“꽃은 안 넣지. 잎으로 끓여. 나는 제주에서 콩잎 국은 먹어봤어도 엉겅퀴국은 처음이었는데... 같이 간 일행은 맛있다고 했는데, 나는 너무 쓰게 느껴졌어.“


나는 엉겅퀴국은 꽃이 들었다면 못 먹을 것 같았지만, 잎만 넣은 국은 한 번쯤 먹어볼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추자도는 어떻게 가요? 어디서 배를 타요?”


“우리는 제주항에서 9시 반에 배 타고 갔다가 추자도에서 4시 반 배를 타고, 나왔어. 추자도 당일치기는 시간이 좀 부족한 것 같고, 자세히 보려면 숙박을 해도 좋을 것 같아. 추자도 여행 추천해. 나중에 자기도 한 번 가봐."


나는 언니에게 추자도 여행을 추천받은 뒤 언니가 매우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기로 미리 예약을 해놓았다.


월요일이 되어 우리는 가까운 '삼다수 숲길'로 향했다. 삼다수 숲길은 예전에 아이유가 이곳에서 삼다수 광고를 찍었다고 하는 숲으로, 원래 지역 주민들의 말 방목터 이자 사냥터로 이용되던 곳을 제주특별자치도 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들이 길을 정비하여 2010년 개장한 곳이다. 지난 2018년, 이곳은 제주도의 13번째 지질공원 대표명소로 지정되기도 했다.


"여기가 예전에 아이유가 광고 찍은 곳이래."


숲길에 들어서자, 빼곡한 삼나무와 조릿대가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진짜 광고를 찍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숲인데요?"


"나는 원래 조릿대를 별로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이곳은 조릿대가 아름답지?"

언니가 조릿대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말했다.


"네. 맞아요. 아니 근데 원래 삼나무 밑에는 고사리랑 천남성 정도만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는 조릿대가 이렇게 많이 펼쳐져 있네요?"


"그러니까. 조릿대가 얼마나 생명력이 센지, 알겠지?"


그래서인지 조릿대를 차로 마시면 강한 생명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조릿대는 삼나무와 더불어 제주에서는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식물이다. 조릿대는 한라산에서 방목이 금지된 1980년대부터 퍼져나가 지금은 한라산 국립공원의 95%를 덮고 있다고 한다. 번식력이 강해 주변 식물들의 생육을 막고, 한라산의 식생을 교란하고 있다고.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거문오름에서 숲 해설사님께 조릿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조릿대가 증가하면서 한라산의 깃대종인 '산굴뚝나비'도 먹이가 없어지고, 나비들이 해발 1,700m 이상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다고 하셨다.


어쨌든 조릿대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삼나무 숲 사이로 떨어지는 빛과 조릿대의 연둣빛 물결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홀린 듯 셔터를 눌러댔다.


"여기 진짜 예쁘다. 삼나무도 조릿대도 모두 다 다시 보이네요."

"그렇지?"


우리는 사진을 좀 찍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맞다, 언니. 숲을 다니다가 책 읽기 좋은 장소 추천하는 여행책 어때요?"


"오. 그거 좋은데?"


"지난번에 쓰던 원고를 좀 다듬으면 그렇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나중에 승마책 먼저 출간한 다음에 차기작으로 한 번 해보려고요."


"좋을 거 같은데? 여기 삼다수 숲에도 좋은 테이블이랑 의자 많은데. 사진 찍어 뒀다가 책 만들 때 써봐."


언니는 나의 아이디어가 맘에 드는 눈치였고 적극적으로 함께 고민해 주었다. 나는 언니가 고마워서 언니를 위해서라도 글을 열심히 써 보리라 다짐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입구에서 30분 정도 거리인데, 이 테이블에서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간단히 책 가져와서 여기서 읽고 가고. 그늘도 좋고, 새소리도 좋고. 책 읽기 딱 맞다."


"그런 것 같죠?"


나는 언니의 말에 빈 테이블과 의자를 찍었다.


"자기야, 저쪽에 가서 서봐. 내가 사진 찍어 줄게."


평소 같으면 너무 부끄러워서 쭈뼛거렸겠지만, 이곳 숲이 주는 멋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포즈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해 봐. 자연스럽게."


정성껏 찍어주는 언니의 옆에서 모델 같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멋진 포즈를 취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잘 되진 않았다.


"언니, 담에 올 때는 포즈도 연습하고 살도 빼고 올게요."


"아니, 지금도 좋은데? 그런데 SNS에 자연스럽게 사진 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찍는 거야? 자연스럽게 잘 찍던데."


"그러니까 그게 꾸민 듯 안 꾸민 듯하게 자연스러운 포즈를 연구하는 걸 거예요. 보기엔 쉽게 찍은 거 같지만 숨은 각도를 연구하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사진인 거죠."


나는 다음번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 포즈를 좀 연구하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예쁘게 찍어줄까 계속 고민하는 눈치였고, 난 나의 어색한 표정과 굳어 있는 손가락, 팔다리가 다 부끄러웠지만 언니랑 이 숲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그냥 즐겁게 느껴져서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누군가 숲에 있는 내 사진을 찍어 준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다시 길을 걷고 있는데, 숲 바깥쪽으로 거울이 하나 보였다.


'왜 숲에 거울을 붙여놨지? 거울에 뭐가 비친 거지?"

하면서 숲 바깥쪽을 계속 쳐다봤는데, 나중에 계속 보다 보니 그곳은 거울이 아니라 ‘노루 물'이라는 작은 샘이었다. 하늘에서 비치는 빛의 각도 때문에 온통 갈색으로 보이는 샘 위로, 황토색 구름이 반사돼서 보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고 있었다.


"언니 저 물. 색이 너무 특이하지 않아요? 저는 저게 거울인 줄 알았어요."


"어? 그러네. 저쪽으로 한 번 가보자."


나는 언니와 '노루 물' 가까이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 진짜 예쁘다. 신비로운 것 같아요."

"물색이 어떻게 저렇게 보이지? 빛 각도 때문인가?"

"근데 이 물 노루가 진짜 먹을 수 있는 물 맞나요? 너무 갈색인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숲을 지나갔다. 어느덧 우리는 3코스로 진입했다. 이 숲의 코스는 총 3개가 있는데, 1코스는 1.2km, 약 30분이 걸리고, 2코스는 5.2km 약 3시간이 소요되며, 3코스는 8.2km 약 4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는데 언니는 우리가 3코스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잘 안 들어와. 보통 입구에서 1코스까지만 왔다가 많이 가더라고."


"벌써 3코스라고요? 여기 거의 평지라서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나는 그간 다녔던 숲길들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이곳은 삼의악보다 경사가 없었고, 길마다 야자수 매트도 잘 깔아놔서 걷기도 편했다. 어쩌면 내가 언니랑 함께 이곳에 있어서 행복한 마음에 힘든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뭔데 뭔데."

"저분 뭔데."


우리는 한참을 걷다가 숲속 한가운데서 정말 책을 읽고 계신 분을 발견했다.


"아니, 자기야. 저분 정말 책을 읽고 계시는데?"

"책 콘셉트로 숲속 책 읽기 여행 이렇게 한 건데, 여기서 지금 진짜 책을 읽는 분을 만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나는 놀라서 언니에게 말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책을 읽으시는 분>께 다가가 인사했다.


"평소에도 이곳에서 책을 읽으시나요?"

나는 궁금한 게 많아 질문이 쏟아졌지만, 초면에 너무 실례를 할 순 없단 생각에 일단 참고 약간만 여쭤봤다.


"네. 여기 좋잖아요. 풍경도 좋고, 책 읽기도 좋고요."


나는 그분께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그분은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숲에서 책을 읽는 분을 만났다는 기쁨에 맘에 드는 좋은 사진을 찍었다.


"괜찮으니까 여기 앉았다 가세요."


혹시 책을 읽는 분께 방해가 될까 싶어, 그냥 지나치려는 데 친절한 그 분이 옆 테이블에서 쉬다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말에 옆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쪽에는 'Let's Run PARK, (사)제주메세나협회. 말 테우리길과 아름다운 숲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렛츠 런 파크에서 이 테이블을 기증해 주신 건가?'


나는 누가 기증해 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숲에 이렇게 테이블을 설치해 주셔서 옆에 계신 <책을 읽으시는 분>도 편하게 책을 읽고 가고, 우리도 쉬었다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언니, 여기서 기념사진 찍어요."


나는 언니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숲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관광지에서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는 느낌이 들었다. 애플리케이션에 배경 꾸미기와 메이크업 기능이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언니와 돌아 나오면서 숲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얼마 전에 한라산에 갔었는데, 혼자 여행하는 여자분 사진도 찍어 주고, 버스 정류장까지 차도 태워다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여자분이 혼자 여행하는 데, 윗세오름에 혼자 온 거야. 물 한 병 달랑 들고 윗세오름까지 왔대. 보통 점심은 싸서 오잖아. 놀래서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하니까 체대를 나와서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더라고.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하길래 내려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 렌트를 왜 안 했냐고 하니까 혼자 이렇게 다니면서 맥주 마시고 싶을 때 맥주 마시고 편하게 다니려고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했어."


"말만 들어도 자유로움이 느껴지네요. 혼자하는 여행도 재밌겠다.“


"그치? 그 분께 지금도 체육 쪽 일을 하냐고 하니까, 지금은 그냥 회사원이래. 8일 휴가 받아서 혼자 재밌게 여행하다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한라산 구경하고 내일 떠난다고 하더라고."


나는 언니 얘기를 들으면서, 여자가 혼자 편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대한민국이 참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숲에 혼자 들어갈 때가 많은 데, 아마 이곳이 외국이었고, 우리나라가 아니었으면 절대 그렇게 못할 것이다. 새삼 우리나라가 좋아졌다.


계속 걷다 보니, 숲 사이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렸다.


"뭐야? 노루인가?"


언니와 나는 숲 사이를 쳐다봤는데, 사람 2명이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 피크닉 해도 되나 봐요."


“그런가 보네.”


“저렇게 앉아서 도시락 먹어도 재밌겠다."


"나중에 한 번 점심 싸와서 먹어볼까? 좋을 것 같은데..."


문득 언니와 내가 이곳에서 함께 피크닉 하는 상상을 하니 재밌게 느껴졌다. 차에 돗자리는 있으니까, 각자 도시락만 싸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간단한 핑거푸드를 준비해서 나뭇잎을 따고 그릇 삼아 먹는 것도 새로울 것이다.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데 언니가 말했다.


"다음에는 자기야, 책 한 권 들고 와."


"책이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언니를 쳐다봤다.


"저기다 펴놓고 찍으면 더 생생하잖아."

언니는 근처 숲속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그늘도 좋고, 새소리도 나도 좋네.“

언니의 말에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으며 대답했다.


"진짜로요. 앞으로는 작은 책이라도 한 권 들고 다녀야겠어요.“


어쩐지 나는 오늘 ‘삼다수 숲길‘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 프로필 사진도 찍고. 여러모로 작가의 길로 한 걸음 더 다가선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는 이곳에 와서 책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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