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서울에 가 본 것은 2019년. 제주에 살다 보니 서울 갈 일이 없다. 서울이 그리워지기도 한다는 걸 도시 사람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제주의 바람과 흙, 돌담에 익숙한 삶을 살다 보면 가끔 서울의 산맥을 보는 게 신기하고 한강과 야경이 그리울 때도 있다.
실 님은 오늘 나에게 도시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실 님 이야기 들으니 좋아요."
"저 오늘 별 이야기 안 했는데요?"
실 님은 당황한 눈치였다. 사실 실 님이 별 이야기를 안 하신 건 맞다. 하지만 나에겐 그 별 이야기가 아닌 게 특별함을 다가왔다. 서로가 익숙한 것들이 특별한 너무 다른 장소에 살고 있는 우리이니까.
"저 사실 회사가 궁금했었거든요.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는 지 이런게 궁금했는데... 다들 잘 지내고 계시다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것 만으로도 좋네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실 님은 내 말을 듣더니, 내가 평소에 궁금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사실 그렇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내가 했던 경험은 모두 추억이 되고... 회사가 특히 그런 것 같다. 다닐 때는 죽겠지만 나오면 모두 즐거운 추억인. 나온 지 오래되서 그런지 그곳 사람들이 궁금하다. 내가 좋아했던 몇몇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이 생각나서 좋았고 왕성히 활동하던 시절의 나와 만나는 것 같아서 활력이 넘쳤다.
"용희 님은 어떻게 지냈어요? 서울에서 가장 서울 사람처럼 살던 용희 님이 살고 있는 지금 일상이 궁금한데요?"
나는 그냥 나의 일상을 말해주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살고 있는 나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용희 님은 평범한 일상이라고 하시지만, 많은 직장인이 꿈꾸는 그런 일상이에요."
회사를 나온 지 오래되었고, 서울 사람을 만난 지 오래된 나는 이런 신박한 이야기는 간만이다. 직장인과 프리랜서. 도시인과 자연인. 이 양극단에 살고 있는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모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12시 30분 우리는 <소규모 식탁>을 나왔다. 실 님의 일정이 3시에 있다고 했으므로, 2시 30분까지 2시간여의 시간이 남았다.
"여기 갈래요?"
<모티프제주 카페앤바>
서귀포시 대정읍 중산간서로 2278 1층
실 님은 검색도 빠르고 좋은 곳을 잘 찾는다. 나는 실 님과 함께라면 그게 어디든 좋았다.
"좋아요. 가요."
그렇게 우리는 차를 빼서 <모티프제주 카페앤바>로 향했다.
주차장이 있어서 다행히 주차장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클럽 분위기의 힙한 음악이 흘렀다. 이 분위기 심하게 오랜만이다.
"오. 여기 뭔데, 클럽같아요. 클럽 같은 음악이 나와요."
내 이야기에 실 님도 음악을 듣다가 말했다.
"정말?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이 곳의 느낌은 낮에는 카페. 밤에는 클럽으로 변할 만한 분위기이다.
"뭐 드실래요?"
우리는 메뉴판 앞에 섰다.
"용희 님, 커피 드세요?"
"마실 때도 있고 안 마실 때도 있어요."
뭔가 애매한 대답이 나왔다. 사실 나는 이 집 메뉴가 뭔지 살펴본 후에 적당한 걸 고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티프제주는 우리가 만드는 음료 한 잔이 지역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문구 진심 잘 썼다. '사장님께서 ESG 경영을 실천하시는 분인가 보네?' 힙한 음악에 ESG 경영이라니, 더 힙한 느낌이 들었다. '글 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한 문장으로도 파워풀한 느낌을 낼 수 있고.' 메뉴판을 보면서 진심 감탄이 나왔다.
나는 메뉴판을 빠르게 훑었다. 사실 오늘의 감성은 '티 라떼'가 생각났는데, '티 라떼'도 맛있는 집만 맛있으니까 오늘 이 집은 어떤 음료가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티 라떼'가 메뉴판에 없는 걸 확인한 후 이 집의 메뉴 중 괜찮은 걸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의 장점이 빛을 발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맛있는 집에서 가장 맛없는 메뉴를 시키는 것.'
나의 장점을 잘 살리지 않기 위해서 보통은 Best나, Signature 붙은 메뉴를 고르면 실패가 없는 것 같다. 나는 두 메뉴 중 하나를 고르겠다고 다짐했다.
잠시 망설이는 우리를 위해 사장님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희 커피 맛있어요. 커피 드셔보세요. 너무 쓰지도 않고 적당히 고소하고요. 또 리얼 바닐라 라떼는 저희가 시럽을 사 와서 직접 제조해서 만들어요."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그만 이분 얼굴이 너무 익숙해져서 뒷 이야기는 귀 전으로 그냥 흘러갔다. 한 참 얘기를 하시는 사장님을 보다가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
"저기 혹시 우리가 어디서 본 적이 있나요? 사장님 얼굴이 너무 낯이 익어서요."
"저는 사장 아니고. 직원이에요."
'아. 직원분이 진심 사장님 느낌 난다.'
"아마 제가 ★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영혼이 없는 나의 표정에 직원분이 다시 내게 물었다.
"★ 아세요?"
나는 가게 이름도 제대로 못 들었고. 가본 적도 없는 곳이다.
"아니요. 아닌데, 제가 아는 분인데요?"
그제야 직원분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혹시 현주엽?"
나는 갑자기 웃으면서 엄지척을 날렸다. 그냥 TV에서 보던 현주엽 씨 똑같이 생기신 분이었다.
결국 나는 리얼 바닐라 라떼를 시켰고, 실 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던 우리는 창가 푹신한 소파 자리에 앉기로 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직원분이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고마웠다.
커피를 봤는 데, 내 커피가 위로 동그랗게 솟아 있었다. 나는 진심 이런 동그라미 모양이 좋은 데 이런 동그라미가 좀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 맛은 어떨까?'
카페라면 진심 맛이 중요한 법.
"실 님, 제주도 카페들은 항상 맛이 좋고 컨셉도 잘 잡거든요. 커피 맛은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실 님께 한마디 하고 커피를 마셨다.
"오."
커피의 맛은 쓰지 않았고, 고소하지도 않았고, 달지도 않았다. 밍밍한 것 같으면서도 맛이 있고, 괜찮았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내지? 이 맛을 무슨 맛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실 님이 내게 말했다.
"맛있어요."
"저도 맛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너무너무 이상한 건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가 검은 옷에 반바지 차림이었고, 팔뚝이 굵었다. 여자분들은 레깅스에 크롭티를 입었다.
"여기 주변에 헬스장이 많은가 봐요. 사람들 옷차림이 다 운동복이에요."
나의 말에 실 님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짜요? 진짜 그런 것 같네요."
나는 궁금한 마음에 지나가는 직원분께 물었다.
"혹시 이 주변에 체육관이 많나요?"
직원분은 웃으면서 대답해 주셨다.
"네. 헬스장도 많고, 필라테스도 많아서 많이 오세요."
"아."
나는 그제야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 나는 실 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실 님, 그런데 3시에 여기서 무슨 약속이 있는 거예요? 아시는 분이 여기에 사나요?"
"아하하, 사실은 제가 3시에 이 주변에 요가를 예약했어요."
"아."
아마 여기는 몸짱들이 사는 몸짱 마을인가보다.
모티프제주 카페앤바
<찾아가기>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중산간서로 2278 1층
영업시간: 화수목금토 오전 8시 - 새벽 3시 (월 오전 8시 - 오후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