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으로 인쇄한 첫 책이 도착한 지 3일 차 드디어 비가 그쳤다. 왜인지 모르지만, 책이 도착하고 3일간 나는 멍한 상태였고, 오늘도 역시 인쇄물 도착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멍한 정신과 함께 길을 나섰다.
'오늘은 제대로 된 책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할 텐데...'
프로필 사진을 찍지 못하면 책 소개 페이지를 만들지 못할 것이고, 책 소개 페이지를 만들지 못하면 서점에 입고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책 소개 페이지를 만들 줄은 아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나는 여러모로 마음이 급했다.
책이 온 첫날 카페 '아라아라'에서 사진을 찍다가 돌담에 책을 올려놓고 책 사진을 찍어 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었다. 나는 그 생각을 실행시키기 위해 책을 특정 각도로 고정하기 위한 독서대가 필요했고, 문구점에 들러 다양한 독서대를 살펴보기도 했다. 문구점에서 조사해 본 결과 독서대가 책의 바닥과 뒤표지를 받쳐야 해서 프로필 사진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결국 구매를 포기했다.
'그런데 책이 혼자서 돌담에 제대로 설 수 있을 건가?'
의문은 많지만 그건 해본 사람이 없으니,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독서대가 없는 책을 흠집 하나 안 나게 울퉁불퉁한 돌담에 세우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통이 밀려왔다.
나는 사진을 찍다가 돌에 찍혀서 새 책이 망가지면 내 마음도 몹시 아플 것 같아 일단은 가제본을 먼저 챙기고, 오늘의 모델이 되어 줄 책으로 인쇄가 가장 예쁘게 나온 것 같이 느껴지는 책도 한 권 챙겼다. 가제본을 돌담에 올려 촬영용 각도를 찾은 뒤 새 책을 사뿐하게 올려 망가지지 않게 사진을 한 번 찍어볼 요량이었다.
'일단 한 번 가보자.'
나는 어제 빗속을 헤치고 동네 산책을 하며 책 사진을 찍을 장소를 미리 봐두었다. 어제 점 찍어 두었던 예쁜 돌담 쪽으로 향했다. 돌 하나가 삐죽하게 나와 있어서 그곳이라면 어쩌면 책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돌담에 책을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돌담 가운데에 책을 박아놓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바람에 표지가 날려 내 눈 쪽으로 표지가 날아오는 느낌도 좋았고, 햇빛이 비치는 느낌도 좋았다. 신박해서 맘에 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건 사진작가님들이 보시기엔 가치가 없는 사진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그리고 책 프로필로 쓰기엔 배경이 좀 삭막한 기분도 든다.
'이건 좀 아닌가?'
사진에 대한 감이 없는 나는 그냥 많이 찍기로 하고 동네 여기저기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하늘이 유독 맑고 아름다웠다. 나도 제주에 이사 오기 전까지 제주의 날씨가 맑고 아름다운 줄로만 알았지만, 살아보면 사실 맑은 날이 귀하다. 집을 나오기 전 확인한 일기예보에는 어제 그제 비 오고, 오늘만 맑고, 내일 모레 계속 비가 예정되어 있다. 결국 난 오늘같이 하늘이 예쁜 날에 반드시 프로필 사진에 성공해야 한다.
'귤밭을 배경으로 찍으면 어떨까?' 자주 다니는 동네 산책길 카페 앞에 멈춰 섰다. 이곳 돌담은 돌담 꼭대기에 자갈을 판판하게 깔아둬서 사진을 찍기 편할 것 같다.
'한 번 찍어볼까?'
결국 이곳은 책을 세우긴 편했지만, 밑에 깔린 자갈 때문에 사진이 삭막해 보였다.
'힝. 망한 건가?'
나는 평소 자주 가는 바다와 오름이 한 번에 보이는 통창 카페 '사계카페'가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나의 돌담 아이디어는 실행이 어려울 것 같고... 바다를 배경으로 창가에 책을 올려두고 사진을 찍는 게 예쁘지 않을까? 아무래도 내가 입고 요청을 드릴 서점 주인분들은 실내에서 찍은 책 사진을 더 선호하시지 않을까?
나는 함덕에 있는 '사계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돌담 아이디어는 이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내 눈앞에 돌담 하나가 보였다. 높이는 내 허리쯤 되었고, 돌담 안으로 보이는 배경이 예뻤다. 잘하면 하늘도 배경에 같이 나올 것 같다.
'어차피 이틀을 맘 졸이다가 오늘 이렇게 큰마음 먹고 나온 김에 저기에도 한 번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보자.'
나는 얼른 가제본을 가방에서 꺼내 돌담에 책을 세워놓고, 햇살을 등지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햇빛 때문에 핸드폰 화면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봤을 때 아마 이 구도가 꽤 괜찮은 것 같다.
'어쩌면 오늘 좋은 사진이 나올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잠시 희망이 차올랐다.
하지만 찍으면 찍을수록 야외촬영은 진심 어려웠다. 스냅사진을 찍으시는 사진작가님들이 실내촬영을 더 선호하신다고 했는데, 야외에 나와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니 진심 왜 인지 알 것 같다. 실내조명은 반사판 등으로 조절하면 되는 데, 햇빛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책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책 표지가 제대로 안 나오는 데다가 햇살이 맑아서 핸드폰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고 조금 잘 못 하면 내 그림자가 책에 비쳤다.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책의 각도를 틀거나 내 몸을 비틀어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보았다. 나는 배경도 예쁘게 찍고 싶어 돌담의 처음, 중간, 끝으로 책을 옮기면서 사진을 찍으며 돌담 근처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회사로 출근하는 듯한 차들이 골목을 지나다녔다. 바쁘게 출근하는 차 사이로 책 사진을 찍고 있자니, 뻘쭘함이 몰려왔다.
'저 여자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지나가는 차 안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등으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나 뜨거웠다. 오늘은 몇 보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건 아마 내 마음을 반영한 식은땀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가자. 이 사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함덕에 있는 '사계카페'에 가서 다시 프로필 사진을 찍어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다리 위 하르방이 눈에 띄었다. 나는 하르방의 손에 책을 올리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하르방 할아버지, 제 책 잘되게 해주세요. 제발요.'
사진을 찍으면서 나도 모르게 간절한 기도를 한 것 같다. 내 책을 들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르방이 귀엽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꽤 귀여우신 걸.'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 난 이 때까지는 꿈에도 몰랐지만, 내 책의 프로필 사진은 이미 내 핸드폰 속에 괜찮게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