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가 대체 어디 간 거야?'
책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사계카페에 가려는 데 오늘따라 내가 좋아하는 편안한 청바지가 보이지 않았다. 사계카페가 바빠질 점심시간 전에 가려니, 마음은 급하고 장롱을 뒤질 시간은 없었다.
'그냥 아무거나 입고 가자.'
나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자주 입는 청바지를 입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집에서 '사계카페' 까지는 35분이 소요된다. 조금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카페에 도착했을 때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에 걸릴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사계카페'는 뷰가 좋아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점심시간에 가면 오늘 책 프로필 사진은 영원히 안녕이다.
책 샘플을 챙기고, 급하게 차에 올라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여러모로 마음이 급했다.
사계카페는 함덕 해수욕장에 위치한 카페로 함덕 바다와 서우봉이 한눈에 보이는 뷰 맛집이다. 나는 지인의 소개로 처음 이곳을 알게 되었는데, 카페에 처음 가본 뒤로 바다와 산이 한 번에 보고 싶을 때마다 '사계카페'를 찾게 된다.
사계카페는 제주 전통가옥을 리뉴얼한 곳으로 한옥 느낌이 나면서도 세련된 곳이다. 제주에서 전주 한옥 마을을 가려면 큰마음 먹고 일부러 가야 하지만, 제주에서도 한옥의 소담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사계카페'의 실내 인테리어는 갈색과 하얀색의 편안한 느낌이고 등도 너무 쨍한 조도의 눈이 불편한 등이 아닌 은은한 전구 느낌의 노란빛이라 분위기가 한층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카페의 하얀 벽에 군데군데 박힌 돌집의 느낌도 좋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카페에서 의자가 편해서 오래 앉아 있어도 힘들지 않다.
'너무 붐비지 않을 때 도착해야 하는데...'
나는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한참 달려 함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함덕은 언제 봐도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름답다. 군데군데 야자수와 튜브를 든 관광객들이 아직 여름이 다 지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여름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 나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함덕 해수욕장의 끝까지 달려 '사계카페' 돌담을 돌아 카페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주차 공간은 넉넉했지만, 날이 뜨거워 마당 한편 야자수 나무 아래 그늘에 차를 주차했다. 때마침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께서 카페를 쓸고 계시다가 마당으로 나오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안녕하셨어요? 봄에 뵙고 한 철 다 지나고 이제야 뵙네요."
사장님은 잠시 누군가 하고 나를 보시더니, 곧 생각이 나셨는지 빙그레 웃으셨다.
"김 작가님. 잘 지냈어요?"
사장님은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데도 절대로 반말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가끔 사장님과 얘기하다 보면 내가 세상에서 존중받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장님, 안녕하셨죠? 책 쓰다 보니까 못 왔어요. 갈아엎고 갈아엎고 하다가 여름이 다 지나갔네요."
"네. 원래 책 쓰는 게 그렇죠. 그래서 책은 나왔어요?"
"아네. 오늘 카페에서 책 프로필 사진을 찍을까 하고 한 번 가져와 봤어요."
나는 내 책을 궁금해하실 사장님을 향해 책을 내밀었다. 사장님은 책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예쁘게 나왔네요. 원래 처음 책 만들면 이렇게 안 나오는데...? 예뻐요."
나는 사장님에게서 예쁘게 나왔다는 말을 들을 거란 상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 말씀에 혼자 긴장하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무래도 첫 책이다 보니 이 책이 세상에 어떻게 보일지, 독자들은 어떤 반응일지 몹시도 궁금한 건 사실이다.
"일단 사진을 찍으러 오셨다고 하니까 얼른 찍어요. 마음껏 찍어요."
사장님은 손님 오시기 전에 빠르게 찍어야 내가 원하는 대로 편하게 찍을 것이라 생각하셨는지,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셨다. 아마 내가 불편할까 봐 자리를 비켜주시는 것 같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오늘 운이 좋은 건지 다행히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들 오시기 전에 얼른 찍어야지.'
나는 책을 들고 카페에서 가장 전망 좋은 자리로 갔다. 마침 창가에는 말 장식이 놓여 있었다.
'잘됐다. 혹시 말이랑 찍으면 예쁘게 나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책을 테이블에 세우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빛 방향 때문인지, 아니면 조명이 없어서인지 책이 무척 어둡게 나왔다. 사진작가님들이 실내촬영에서 반사판과 조명을 왜 사용하시는지 알 것 같다. 혹시나 표지가 환하게 나오는 곳이 있나 해서 카페 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힝. 오늘도 책 프로필 사진은 찍기 어렵겠구나.'
느낌상 사진 초보인 내가 이 빛의 각도와 양을 조절하긴 어렵겠다 싶었다. 이 쯤 되면 난 책 프로필 사진 찍는 걸 포기할까 싶다.
나는 이 카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루베리 요거트로 쓰린 속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장님 말씀이 카페의 모든 메뉴 중에 희한하게 이 요거트만큼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끝까지 다 드시고 간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왜 그러시었는지 알 것 같다. 이 요거트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먹고 나면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장님은 냉동 블루베리를 안 쓰시고 생블루베리를 요거트에 올리시는 데 이 생블루베리가 요거트와 잘 어우러져서 내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도 든다.
"사장님, 저 블루베리 요거트 한 잔 주세요."
"네. 그래요"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 보려고 카페 이리 저리를 돌아다녔다. 분주히 돌아다녔는데 요거트가 나왔다.
"어머? 컵이 바뀌었네요? 예쁘다. 저 요거트랑 책이랑 같이 사진 찍어야겠어요."
나는 책이랑 요거트를 같이 놓고 카페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컵이 정말 예뻐진 것 같다. 지난번에는 투명 유리컵이었는데,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시원한 느낌을 주었지만, 오늘 컵은 진줏빛 반짝이는 하얀색이다. 인어공주에 나올 것 같은 그런 색.
'이런 컵은 어디에서 파는 걸까?‘
나는 남자분이 어떻게 이런 예쁜 컵을 고르셨을까? 진심 궁금했다. 어디서 파는지 알면 나도 한 개 사고 싶다.
하긴 사장님은 손재주가 좋은 분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 카페도 직접 리뉴얼하셨다고 하고... 메뉴도 엄선해서 만든다고. 지난번에 왔을 때는 빵을 먹었었는데, 한 입 먹자마자 서울에 있는 롯데월드가 생각나는 신기한 맛의 빵이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는 바에 앉았다. 사진을 다 찍었으니, 주문한 요거트를 마시면서 사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장님께서는 카페에 홍보용으로 내 책을 한 권 비치해 주신다고 했다.
"잠시만요. 차에 샘플 있어요."
나는 책이 온 첫날 카페 '아라아라'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책을 딸랑 한 권 밖에 들고 가지 않아서 샘플을 드리지 못했었는데... 그 후로 혹시 언제 샘플을 써야 할지 몰라서 차에 실어두고 다니기로 했다.
나는 차에 가서 샘플을 가져와서 사장님께 드렸다.
"혹시 사인해 드려야 되나요?"
드디어 왔다. 떨리는 순간. 책에 사인을 해야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는 순간. 앞에 계신 분이 사인 책을 좋아하실지 빈 책을 좋아하실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 여쭤보기 힘든 그런 순간 말이다.
"간단히 써주세요."
사장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또 많은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카페 비치용 책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받는 사람에 사장님의 성함을 써야 하나? 상호를 써야 하나? 아무것도 안 쓰고 본론만 써야 하나? 진심 이 순간이 너무 뻘쭘하고 떨린다.
"그냥 책에는 간단하게 쓰는 게 좋아요."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결국 나는 고민하다가 ‘강인함과 섬세함 사이. 당신의 균형 잡힌 인생을 응원합니다. 김용희'라고 썼다. 글씨가 예쁜 편이 아니라 최대한 노력해서 썼는데, 사장님께서 맘에 드실지 아닐지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잠시나마 마음의 부침이 있었던 어려운 시간이 끝났다.
"아직 책 유통을 못 시키고 있는데... 못 시키는 이유가 프로필 사진이 없어서예요. 제가 그 책 등과 표지가 한 번에 나오는 각도로 찍는 목업 이미지를 만들 줄 모르거든요."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말씀하셨다.
"그건 작가분들께 맡겨요. 아마 포토샵이랑 일러스트레이터 쓰면 금방 될 거예요."
맞다 맞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게 바로 저거다. 무슨 프로그램을 쓰면 이 목업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건지. 그걸 좀 알고 싶었었다.
"제가 포토샵이랑 일러스트레이터를 쓸 줄 몰라요. 그래서 실사를 사용해서 책 홍보자료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거예요."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해요? 힘들어서 다 못 해요. 맡겨서 하는 걸로 해요. 맡기면 금방 될 텐데...."
나는 사장님의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해요? 힘들어서 못 해요.' 이 두 마디에 묘한 위안을 받는 듯했다. 아마 내 머릿속에는 홍보자료를 못 만들어서 며칠 동안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내 자신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진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어쩌면 내가 못 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사장님의 말씀에 그간 독립출판한다고 혼자 해결할 게 많았던 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나는 남아 있는 블루베리 요거트를 시원하게 들이키며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저 이제 사려니 숲에 가보려고요."
"사려니 숲에는 왜요?"
"혹시 숲에다 책을 놓고 찍으면 배경이 예쁘게 나올지도 몰라서요. 사려니 숲에는 나무로 된 탁자나 의자도 있을 거고요. 아마 놓고 찍기 편할지도 몰라요."
"네."
사장님의 특징은 '네'라는 대답을 긍정적으로 천천히 해주신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나는 그 점이 사장님을 누구에게나 편안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사장님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씀하셨다.
"작가님이 사려니 숲에 간다고 하면 내가 줄 건 없고 얼음물이라도 챙겨줄게요."
사장님이 얼음물을 만드시는 동안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사장님은 물 한 컵 챙겨주신다고 하시더니 내게 얼음물을 두 컵이나 주셨다. 얼음물과 함께 사장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날씨가 맑아 사진 찍다가 너무 더울까 봐 넉넉히 챙겨주신 것 같다.
"책 잘 되길 바라요."
카페 문을 나서는 내게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 손에 든 두 개의 얼음 컵을 고이 들고 사장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오늘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마당에서 얼음물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리면 다들 '뭐지?' 하겠지만 이 사진을 찍는 나는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사계카페 찾아가기>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76
*영업시간: 매일 10시 ~ 22시
함덕바다와 서우봉을 한 번에 보고 싶으시다면 사계카페로
블루베리 요거트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