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 인생 가장 황당한 날

책 프로필 촬영기

by 김용희

나는 사계카페를 나와 차에 올랐다. 오늘은 하늘이 맑고 구름은 예쁘다. 이제 사려니숲으로 가면 오늘만큼은 책 프로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사려니숲'을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사려니숲은 입구가 두 개 있는데, 내비게이션에 '사려니숲길 붉은오름 입구'라고 나오는 곳으로 차를 몰아야 주차가 편하다. 사려니숲 입구로 가면 주차장이 없고, 입구가 막혀있을 때도 있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당연히 '사려니숲' 입구로 차를 몰았다.


'어? 저기가 붉은오름 쪽인데, 왜 내비게이션이 이쪽으로 가라고 하는 거지? 뭐,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하겠지. 내가 틀렸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모든 게 이상하지만, 우회전을 했다. 이 길은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으로 가는 길 같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사려니숲'은 주차장이 없는 그 사려니숲 입구였고, 오늘따라 안내요원이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통제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온 거야? 아까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네.'


요즘 내가 왜 이럴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첫 책 개미를 쓰고 한동안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하던데, 나도 요즘 그런 건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도무지 정신이 없다.


'오늘 안 되겠는데, 그냥 집으로 갈까?'


기왕 집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마당에 그냥 집으로 갈까 했다. 이것은 어쩌면 내게 당장 집으로 가라는 신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책 홍보자료를 만들다가 사진이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어딘가로 사진 찍으러 갈 것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생각만 해도 그 감정은 아찔하다. 이미 비 때문에 이틀 동안 맘 졸였던 나였기 때문이다. 내일과 모레는 또 비가 예보되어 있기도 하다.


'아... 오늘같이 맑은 날 꼭 사진 촬영을 끝내고 싶다.'


몸과 마음은 피곤했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감정보다 이성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냥 다시 붉은오름 입구로 가보자.'


나는 다시 내비게이션 '사려니숲길 붉은오름 입구'를 검색했다. 다른 쪽 입구까지 무려 8.8km가 나왔다.


'헐. 원래 이렇게 멀었어?'


체감상 너무 멀어서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다시 가보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냥 가기로 했다. 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나는 아까 내가 우회전했던 사거리에 다시 도착해서 붉은오름 입구 방향으로 들어섰다.


'우와. 오늘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붉은오름 쪽으로 들어서니 정신이 더 아득해지는 것 같다. 믿기지 않았지만, 사려니 숲만 먹구름이 끼고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게 지금 실화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영화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맑은 날 유독 여기만 비가 오는 게 말이 되나?


나는 이 광경이 너무도 신기해서 사려니 숲 입구까지 차를 몰아봤다. 젊은 친구들이 치마를 입고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뒤쪽으로 모두 우산 쓴 사람들만 보였다.


'책 가지고 내리면 쫄딱 젖겠는데...'


아무리 예쁜 사진이 욕심나더라도 오늘 사려니 숲은 진짜 아닌 것 같다. 나는 다시 집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뭔가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이쯤 되니 다 내려놓고,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목이 탔다. 사계카페 사장님이 주신 얼음물을 쭉쭉 들이켰다. 사장님께서 이 물 안 주셨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사려니 숲 근처를 빠져나오니, 다시 맑은 해가 보였다. 심지어 내가 처음 갔던 사려니 숲 반대편 입구는 맑다.


'진짜 신기한 날씨다. 이럴 수도 있구나.'

나는 오늘 제주 날씨에 대해 또 배운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주마방목지가 보였다.


'책 제목이 <제주의 말 타는 날들>이니까 책 뒤 배경으로 말이 있는 걸 찍으면 어떨까?'


나는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라 서둘러 마방목지로 들어갔다.



제주마방목지는 5.16 도로에 있는 곳으로 천연기념물 34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제주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마는 4월부터 10월 말까지 볼 수 있으며, 겨울에는 추위와 폭설로 인해 겨울철에는 말을 볼 수 없다. 참고로 겨울에는 말을 보호하기 위해 축산진흥원 내 방목지에서 관리된다고 한다.


주차장이 잘 되어 있어 사람들이 이곳에서 천천히 말을 구경하기도 하고 나무 밑 벤치에서 잠시 휴식하기도 한다. 제주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곳에는 문화관광 해설사님이 계신다.



마방목지에 들어서니 높은 곳에 전망대가 보였다. 마방목지는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목장 내부는 출입할 수 없지만, 전망대에서 말을 내려다볼 수 있다. 아마 전망대라면 책 배경으로 멋진 들판이 나올 것 같다.


'어쩌지? 여긴 아닌가?'


나는 책을 꺼내보려고, 가방을 뒤졌다.


'어? 이게 왜 여기서 나와?'


내 가방 안에는 사계카페 사장님께 드렸던 샘플 책이 들어와 있었다.


'엥?'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사인한 뒤 가방 쌀 때 사뿐히 챙겨 왔던 것이다.


'이건 뭐지?'


나 스스로도 너무 황당하다.


일단 나는 책을 챙기고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오늘같이 정신없는 날 난간에 책을 세웠다가 방목지로 떨어지면 영영 책을 찾지 못할 것 같아 좀 위험할 것 같다.


'전망대보다 좀 낮은 곳에 책을 세울 수 있는 곳은 없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목지 둘레로 연두색 철창 같은 담이 보인다. 말을 잘 찍어도 앞쪽에 연두색 철창이 배경이 되면 책이 좀 삭막해 보일 것도 같다.


'아... 여기는 아닌 것 같아.'


좌절감에 고개를 숙였는데, 나는 내 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에 입기 위해 그렇게 찾았던 내가 좋아하는 편안한 청바지를 내가 이미 입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원래 이런 것도 가능해?'


난 오늘 많이 놀란 것 중에 이게 가장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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