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침에 돌담에서 찍은 사진과 사계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다가 진짜 깜짝 놀랐다. 아침에 돌담에서 찍은 사진 중 신박하고 예쁜 사진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오잉? 뭐야? 이 사진으로 쓰면 되겠는데?'
아침에 돌담에서 사진을 찍은 뒤, 햇볕에 반사되어 핸드폰 화면이 잘 보이지 않자, 내가 당연히 못 찍었을 거로 생각하고, 사계 카페로 갔던 것이다. 내가 대체 이걸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보니 내가 원하는 완벽한 구도였다. 신기하게도 돌담에 책이 가지런히 서 있고, 배경으로 파란하늘도 잘 보이고 돌담 위로 초록색 풀도 싱그러운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찍어도 이것보다 잘 찍긴 어렵겠다.'
프로 작가님들께 부탁할 게 아니면 내 실력으로는 이게 최선인 것 같다.
'근데 같은 장소에서 찍은 정면 샷은 없나?'
이런 게 바로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아마 내가 경험이 많다면 잘 나왔든 아니든 맘에 드는 장소에서 정면 샷과 측면 샷을 모두 찍어뒀을 텐데... 다음에는 만약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사진은 무조건 다양한 각도로 많이 찍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 사진 또 찍으러 가? 말아?'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 샷은 필요할 것 같은데... 나는 독립책방에 책을 입고해 본 경험은 없지만 아무래도 입고 요청 메일을 드릴 때, 책의 대각선 사진과 실물 느낌의 정면 샷을 함께 첨부하면 책의 생생한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페이지 디자인을 어떻게 해서 어떤 느낌으로 홍보자료를 만들지 나도 모르겠지만, 한창 페이지 디자인을 하다가 사진이 없어서 답답해하며 날이 맑기를 또 며칠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부침이 밀려왔다. 나는 혼자 모든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일의 작업 순서는 사진작가가 디자이너에게 필요 사진을 모두 넘기는 것 처럼 애초부터 책 프로필 사진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그다음 단계인 페이지 디자인을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다시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로 했다.
'그냥 또 가서 찍자. 어차피 돌담길은 가까우니까... 뭐.'
이쯤 되니 반포기 상태로 그냥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몸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잘하려고 하니 끝도 없고 경험 부족으로 잔 실수 연발인데, 이제는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상황이 펼쳐져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니 역시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다. 집에서 아침에 사진 찍은 돌담까지의 거리는 852m. 그리 멀진 않다. 아침보다는 하늘이 좀 흐린 건지, 느낌 탓 인지 모르지만 하늘색이 뚜렷하지 않은 느낌이다. 집에서 나와 놀이터를 지나 돌담이 많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 하나 돌았을 뿐인데...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불길한 느낌이 든다.
'설마? 저기 또 돌담 앞에만 비 내리는 건 아니지?'
나는 사려니 숲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익숙한 돌담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헐. 이럴 수도 있어?'
정말 아무도 안 믿겠지만, 골목길 안쪽 돌담 위쪽만 구름이 껴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책 뒤로 보이는 배경도 좀 예쁘게 나오는 거였는데... 그래도 <제주의 말 타는 날들>이란 제목 뒤로 보이는 하늘의 먹구름은 좀 아닌 것 같다. 구름이 다 지나가길 기다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태풍도 다 끝나서 인지 구름도 너무 천천히 간다.
'오늘은 아마도 날이 아닌가 보다.'
결국 나는 지쳐서 오늘 책 정면 촬영은 포기하고 돌아왔다. 내일 만약 해가 뜬다면 프로필 사진은 내일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