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종족을 만나고 싶으면 삼의악으로

#4 다급한 어미 노루의 외침

by 김용희

삼의악 초입은 가파르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면서 걷기는 어렵다. 정상까지 가야 걷기 완만한 공간이 나온다. 나는 숨은 찼지만 H 언니와 함께 걷는 게 상당히 즐겁단 걸 깨달았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걸으면 힘들진 않은지 지금 몸의 컨디션이 어떤지 자꾸 확인하면서 걸어야 하는데 언니와 나는 걷는 속도와 강도가 아주 잘 맞아서 체력적으로 잘 맞았다.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언니와 자주 만나서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우리 여기 앉을까?”

“네. 좋아요.”

“여기 정상에서 뒤쪽으로는 함덕 서우봉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자기야 한 번 둘러봐 경치 정말 좋지?”

“그러네요. 시야가 탁 트여서 가슴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아요. 잠깐 여기서 한라산 멍 좀 때리고 가야겠어요.”


언니와 나는 서로 말없이 경치를 감상했다. 앉아 있던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가슴속으로 상쾌한 공기를 흠뻑 밀어 넣었다. 한참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렇게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눈앞에 펼쳐진 큰 한라산이 나에게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여기 너무 좋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여기 정말 좋아. 나는 되게 자주와.”


“언니 그거 알아요? 봄 한라산은 아래쪽부터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거요. 저는 온 산이 같은 계절에는 한 번에 다 같은 색으로 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한라산을 자주 보다 보니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맞아. 그렇지. 가을은 산에서부터 봄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되잖아. 그러니까 봄은 산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거야.”


그렇게 언니와 한라산을 보며 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 어디선가 다급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개가 덫에 걸려서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놀란 내가 언니한테 물었다.

"모르겠어. 나도 처음 듣는 소린데? 뭐지?"


숲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와 희경 언니는 혹시라도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을까 봐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언니 여기 괜찮은 거 맞아요? 너무 무서워요."

"그러게. 들개인가? 어쩌지? 요즘 들개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


나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 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 소리는 개인 것도 같고 큰 새인 것도 같은 소리인데 좀 두껍고 탁했으며 낮지만 큰 소리였다. 잘 들어보니 무언가 다급함이 있는 소리여서 우리가 습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언니와 나는 용기를 내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짐승이 덫에 걸린 게 맞는다면 구해줘야 할 것 같은 어떤 다급함도 전해졌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다행히도 지나가던 등산객 아저씨가 나타났다. 야생동물이라면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그분도 무슨 소리인지 사뭇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옆에 있는 벤치에 올라가 삼의악 아래쪽을 계속 살폈다. 이윽고 아저씨는 떨고 있는 우리를 향해 외쳤다.


“별건 아니고 저기 노루가 새끼들을 찾고 있네요.”

“네? 이게 노루 소리예요?

“네. 노루 맞아요. 저기 보세요. 아래쪽에 새끼들이 엄마노루를 따라가는 게 보이잖아요. 새끼들이 없어져서 어미가 새끼를 찾는 소리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자면 애들이 산 어딘가로 사라져서 엄마 노루가 부랴부랴 새끼를 찾았던 거고 내가 들은 건 행방이 묘연한 새끼를 찾는 엄마 노루의 울음소리였던 것이다.


“휴. 다행이다. 노루라니.”

H 언니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옆에 있는 아저씨를 향해 외쳤다.

"우리는 들개가 덫에 걸린 소리인 줄 알았지, 뭐예요. 그나저나 노루 목소리 참 특이하네요."


"네. 그러네요. 저도 노루 소리는 처음 들어 봐요."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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