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디어 시작된 공포의 말 타기

by 김용희

"용희 씨, 빨리 와. 여기 거의 준비 다 했어."


1시 50분. 승마 수업 10분 전에 나는 가까스로 승마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수장대에는 이미 4명의 사람이 말이 4필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느낌적으로 망했다고 생각하며, 얼른 마구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늘이 첫 수업이라 새 멤버들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궁금증을 풀기엔 말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얼마 전에 만난 성희 님이 초급반은 1인 1말이라더니, 설마 진짜 1인 1말일 줄이야... 말 준비가 능숙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내가 10분 안에 말을 준비시키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에 들어간다는 건 무리다.


내가 진짜 왜 이번 학기도 승마를 하고 있는지 나도 미스터리이지만 오늘 말을 탈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친다. 지난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못한 나는 사실 미자 언니한테 연락해서 초급반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해 볼 수도 있었지만... 말 탈 생각을 하면 여러모로 부침이 밀려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추측만 하던 초급반의 1인 1말 배정을 확인하는 순간 좌절감이 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입문반은 2인이 말 1필을 준비시키고 20분 정도씩 돌아가면서 탔었는데, 이제 초급반으로 진급한 나는 혼자서 말을 준비시키고, 혼자 1시간을 타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용희쌤, 저 책 잘 봤어요."


마구간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는 데 <덜커덩 선생님>이 반가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오랜만에 보는 <덜커덩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반가워 책 얘기를 오래오래 하고 싶었지만, 수장대에 준비 중인 1인 1말의 충격 때문에 또 아무 말이 나왔다.


"쌤쌤, 초급반은 이제 진짜 1인 1말이에요? 뭐야 뭐야. 나 망했네. 이번 학기 나 환불각이에요."


첫인사로 환불 드립이라니 나도 참 어이가 없다. <덜커덩선생님>도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이야기냐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대충 내 얼굴을 살피던 선생님은 내가 또 겁먹은 게 보였는지 선생님은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용희쌤, 오늘은 '대한이'를 타세요. 다들 거의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서두르시고요."


나는 마구간 한쪽 벽에 걸려있는 마방굴레를 집어 대한이의 마방을 찾았다. 마방 문 사이로 대한이의 커다란 엉덩이가 보였다.


"쌤, 말이 엄청 큰데요?"


"안 커요."


선생님은 이번 학기도 나를 강하게 키워주시려는 듯 나와 말을 덩그러니 남기고 밖으로 나가셨다. 어쨌든 혼자서 말을 끌고 나오긴 해야 하는데, 처음 보는 말이라 얘가 어떤 성격인지를 모르기도 하고, 소만이, 동지, 처서보다 1.5배는 큰 덩치에 위압감을 느껴서 홀로 머뭇머뭇거렸다.


'아... 얘 각도가 내가 뒷발에 차이기 딱 좋네.'


대한이는 시크하게 뒤돌아서서 바닥에 놓인 건초를 씹어 먹고 있었다. 나는 대한이의 뒷발을 피해 오른쪽 옆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마방굴레*를 손으로 벌리고, 대한이의 얼굴을 들어 넣으려는 순간 대한이는 내게 방해하지 말라며, 한쪽 발을 들어 발을 세게 한 번 굴렀다. 다시 조용히 건초를 먹는 대한이를 보며, 조용히 마방 문을 닫아드렸다.


'아... 여기 있다 나 죽겠네...'


나는 수장대에서 다른 사람들의 준비를 지켜보시던 <덜커덩선생님>께 뛰어갔다.


"쌤쌤, 저 다음 주에는 1시간 일찍 올 테니까요. 이번만 진짜 도와주세요. 말 준비시키는 데 1시간 걸릴 거 같은데요... 대한이 너무 커요."


"안 커요. 그리고 저 1시에는 여기 없어요."


나는 <덜커덩선생님>과 다시 마방으로 갔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옆에 있으면 말들이 긴장하니까, 나도 약간 용기가 나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은 뒤 마방 문을 열었다. 대한이는 이번에 반대로 돌아 입구 쪽을 보면서 건초를 먹고 있었다. 나는 마방굴레를 최대한 넓게 벌리고, 말 입에 한 번에 씌우려는데 '대한이'는 껌을 씹듯 건초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구역의 일진 같았다.

"한 번에 빠르게 씌워야 해요."


앞에서 보고 있던 덜커덩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씀하셨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납득이 되어 일단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장갑이 걸리적거렸다. 다음 시간에는 말에게 물릴 것을 각오하고라도 작업은 맨손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오는 건데...'


왜 내가 30분 정도 일찍 출발하지 않은 건지, 현실을 외면하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덜커덩선생님>이 계셔서 그런지 지금 대한이는 고분고분하다. 나는 빠르게 마방굴레를 씌우고 말을 수장대로 리드했다.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이 보였다. 미자 언니는 처서를 김 반장님은 소만이를 벌써 다 준비시켜 놓았다.


'아 진짜 큰일 났다. 말 준비를 혼자 언제 하나?'


아마 내 실력으로 혼자서 대한이를 준비시키려면 20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나는 급한 마음에 미자언니의 옆 칸으로 말을 데리고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칸의 말을 고정시키는 줄의 고리가 고장 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일단 한쪽 줄만 걸었더니 대한이는 이미 밖으로 나가서 빨랫대에 널어놓은 재킹 패드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나는 일단 밖으로 나간 말은 옆에 두고 선생님께 소리쳤다.


"선생님, 여기 말 고정하는 고리가 고장 났어요."


"옆 칸으로 가요."


시간도 없는데 수장대의 칸을 잘 못 찾아서 시간이 또 지체되다니, 일단 밖으로 나간 대한이를 다시 끌고 옆 칸으로 가서 말을 U턴 시켰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나는 말을 일단 잘 두고 안장과 재갈을 가지러 창고 쪽으로 뛰어갔다.


'말 이름이 뭐였더라?'


말은 각자 쓰는 재갈이 정해져 있는데, <덜커덩선생님>말씀은 사람도 남의 칫솔 쓰는 게 기분 나쁘듯이 말들도 그래서 재갈이 다 정해져 있는 거라고 하셨다.


'말 이름 말 이름.'


나는 '대한이'의 재갈을 챙기고, 간장과 복대도 챙겼다. 대한이는 덩치가 커서 복대도 대자로 넉넉하게 챙겼다.


안장을 들고 달려오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다른 분들에게 소리치셨다.


"혹시 다 하신 분들은 용희 선생님 같이 도와주세요."


'아... 이 무슨 첫 수업부터 민폐를...?'


처음 보는 인상 좋으신 여자분께서 내게 다가오셨다. 말을 많이 다뤄보신 듯 능숙한 분이신 것 같았다.


"대한이는 잘 물어요."


"네?"


나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 앞에 계신 <덜커덩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얘 잘 물어요?"


<덜커덩선생님>과 함께 서 있던 미자 언니가 선생님 대신 대답했다.


"용희 씨, 소만이랑 대한이는 잘 물어."


'아니, 미자 언니도 대한이는 오늘 처음 본 것 아니야? 어떻게 알았지?'


나는 <덜커덩선생님>을 보며 소리쳤다.


"선생님, 저 오리엔테이션 안 와서 그런 거예요? 어떻게 하는 건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그러게 용희 씨, 오리엔테이션은 왔어야지."

미자 언니가 나를 놀렸다.


"그러게요. 쌤. 오리엔테이션 오셨으면 지금쯤 날아다녔을 텐데요."

놀리는 덜커덩 선생님을 보며 나는 선생님의 농담을 다큐로 받았다.


"쌤, 저 오늘 진짜 대한이 타고 날아가는 거 아녜요?"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왠지 선생님은 여태까지 생각 못 했었는 데 내가 오늘 대한이를 타다가 진짜로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뭐야? 대한이 사람을 무는 데 기수가 맘에 안 들면 날려버리기도 하는 거야?'


<덜커덩선생님>의 뭔가 진지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 진심 불안하다.


"자, 마장으로 들어가세요."


나는 사람들을 따라 대한이를 데리고 마장으로 들어갔다. 마장에는 모래 냄새인지 모르겠지만 마장만의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를 맡으니 왠지 마음이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마장이 편하다니, 나도 미쳤구만... 그래도 설마 뭐 말 타다 죽기야 하겠어?'


이상하게도 마장의 편안한 냄새 때문인지 오늘 죽지는 않을 거로 생각해서 그런지 맘은 편했다. 말을 세우고 등자 길이를 맞추고 있는데 갑자기 대한이가 머리를 휙 돌리며 내 허리를 물었다.


"악~~~"


비명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허리가 한 입이 아니라 매우 잘 피했지만, 옆에 있던 미자 언니가 소리쳤다


"뭐야 뭐야? 용희 씨"


"말이 물었어요."


"제가 갈게요."


멀리서 다른 말을 준비시키시던 <덜커덩선생님>이 다급하게 소리치셨다. 나는 왠지 대한이가 내 허리를 또 물어도 잘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말을 가만히 잡고 있었다. <덜커덩선생님>이 오시고 나는 가까스로 대한이를 탔다. 어리바리해하고 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용희쌤"


"네?"


"오늘은 타지 못할 것 같으면 달리지 않아도 돼요."


'웬일이야? 우리 <덜커덩선생님>이...'


나는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말을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오늘의 긴장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말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건 내 전문이니까.


"대신 달리지 않을 거면 다른 분들 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안쪽으로 타시고, 걷다가 달리고 싶으시면 제게 말씀하세요."


"네!!!"


나는 내 짧은 승마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 기분이면 장애물도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오예. 너무너무 좋다.'


나는 말을 안쪽으로 몰아 동글동글 돌기로 했다. 새로운 멤버 두 분은 계절학기를 수강해서 지금은 속보를 하신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하는 게 뭔지 몰라서 친구들이 물어보면 뭐 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하는 데, 나도 이번 학기는 경보도 알고 속보도 알고 타면 좋겠다. 마장 안쪽을 혼자 돌고 있는데, 소만이를 안정적으로 타는 김 반장님이 보였다.


'아이고, 저렇게 한 시간 타시면 김 반장님 죽겠다.'


말을 안정적으로 탄다는 것은 말 등 위에서 직각으로 스쾃을 하는 건데, 그걸 한 시간 하실 예정인 김 반장님을 보고 있자니 새삼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오늘 안 탈 예정이므로 김 반장님의 운동은 세상 남일로 느껴졌다.


대한이를 타고 있자니 대한이는 명마가 아닌가 싶었다. 다른 말들이 앞으로 지나가면 저절로 서고, 내가 달릴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특별히 내가 뭘 안 해도 잘 걸었다. 그리고 동지, 처서, 소만이 보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내 몸이 앞뒤로 '따그닥 따그닥' 하는 흔들림도 덜했다.


'말마다 특징이 다 다르구먼...'


이런저런 생각을 뱅글뱅글 돌다 보니, 어느새 20분이 지났다. 나는 오늘 말 위에 앉아만 있었지만 벌써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몰입감이 좋았다. 그렇게 나만의 힐링 승마를 즐기고 있는데 속보를 하시던 새로운 멤버분이 선생님께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동지는 경보도 속보도 하나도 안 돼요."


"그럼 다음 시간에는 대한이랑 바꾸세요."


'오잉? 그럼 나는 다음 시간부터 동지를 타는 건가?'


나는 지금 타보니 대한이가 명마라서 맘에 들긴 했지만, 뭐 동지라면 지난 학기에 나랑 가장 많이 탄 말이기도 하고, 모르는 말보다는 동지를 계속 타는 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학기에는 그래도 혜수언니랑 짝꿍이라서 언니가 먼저 동지를 잘 달리게 하고 나에게 물려줬었는데 내가 동지를 준비시키고 타게 되면 이번 학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원래 이렇게 의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나는 오늘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의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나 도무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학기는 말을 타면서 어떻게든 의존심을 끊어 내고 진정한 자립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마방굴레: 마방에서 말을 데리고 나올 때 쓰는 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