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 30분. 지난주 너무 늦게 센터에 도착해서, 헐레벌떡 준비를 마쳤던 나는 일부러 30분 일찍 센터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미자 언니와 김 반장님이 이때쯤 센터에 도착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 보네...'
센터로 들어가는 계단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는 '9월 23일~24일은 대회로 인해 승마 아카데미 수업이 휴강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마장 근처로 걸어가니 여러 사람이 대회 시설을 준비하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1시 40분 경이면 누군가 오겠지, 뭐...'
오늘은 대회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안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이참에 마구간을 구경하기로 했다. 내일이 대회라 그런지 마구간에는 못 보던 말이 많은 느낌이다. 헬멧을 쓰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던 나는 혼자서 말을 꺼내다가 깔리면 어디 도움 청할 곳도 없고 무지 아플 것 같아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승마 잘해보려다가 목숨을 내놓을 필요는 없잖아...?'
이런저런 생각 끝에 야외벤치에 앉아 수장대에 있는 말을 구경하기로 했다. 대회에 나갈 말들이 잠시 센터로 온 거라 그런지 마구간에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가 너무 크고 무서웠다. 수장대에는 말 3마리가 있었는데, 양옆 두 마리는 묶여 있었고, 가운데 한 마리는 입구를 줄로 막아놓아 못 나오게 해 놓았다. 잠시 후 나는 잘 못 본 것 같았지만 말이 유유히 걸어 나와 마당을 걸어 다니는 게 아닌가? 자세히 살펴보니 말은 마방굴레만 하고 있을 뿐 고삐도 없고 리드할 줄도 없다.
'아... 내가 저 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지금 말이 나와서 돌아다니는데요?"
다들 설치물을 만들러 오신 분들 같았지만, 일단은 누구든 들으시는 분이 있지 않을까 하고 무작정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말을 아주 잘 다루실 것 같이 생기신 인상 좋은 남자분이 오셔서 말에게 소리치셨다.
"특사, 들어가. 들어가."
그리고 나를 보시곤 말씀하셨다.
"쟤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알아요."
나는 무슨 말씀인지 몰라 흥미롭게 구경하기로 했다. 남자분은 말에게 수장대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특사, 들어가."
잠시 후 말은 신기하게도 수장대로 자기가 들어가 버렸다. 사람과 말이 대화가 통하다니. 진짜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게 동물과의 교감인 건가?
"신기하네요. 쟤 이름이 뭐라고요?"
"특사예요. 특사."
우리 센터는 편의상 말의 이름을 24절기로 짓는데, 말 이름이 '특사'면 우리 센터에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혹시 특사는 여기 센터 말인가요?"
"아니에요. 잠시 온 거예요."
아마도 내일 대회 때문에 적응차 온 것 같다. 어느덧 시간은 1시 49분이 되었는데, 왜 인지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원래 우리 반은 30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하는 데...
"설마, 오늘 내가 잘 못 온 건가?"
미자 언니에게 전화 걸어보았지만 언니는 받지 않았고, 수업이 취소됐는데 나만 모르는가 싶었던 나는 덜커덩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오늘 우리 수업해요? 저 지금 센터와 있는 데 아무도 없어요."
"오늘 해요. 오늘은 미리 준비해 놓을 거죠? 제가 저번에 무슨 말 타라고 말씀드렸죠?"
"동지예요. 저 지금 미리 준비하려고 센터에 와 있어요. 동지 준비해 놓을게요."
전화를 끊는 순간 사람들이 마구간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무서워서 사람들이 오기를 20분 넘게 기다리다니...
'아... 나도 얼른 혼자서 말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서 못하는 게 있다는 건 역시나 불편한 일이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마음속 깊은 두려움을 없애버리고 의존심을 끊은 능숙한 기수가 되고 싶다. 심호흡을 하고 마방굴레를 잡아 마구간으로 들어가는 데 여전히 말들이 큰 소리로 울어대서 마치 쥐라기 공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말 울음소리 엄청 크다. 쟤들은 아직도 울고 있네. 그나저나 동지는 어딨지?'
동지, 처서, 청명에는 진 밤색 한라마로 셋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마방 앞에 붙어 있는 명찰 없이는 구분이 어렵다. 나는 그냥 돌아다니면서 동지를 찾기로 하고 마방 한쪽 끝까지 다 훑어보았다. 잠시 후 반대편으로 돌아 들어가는 데 건초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동지가 보였다.
"동지야. 동지야 너 방학 동안 잘 지냈어?"
나는 나도 모르게 동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지금 교감을 시도하는 건가? 지난 시간 대한이는 초면이기도 하고 덩치가 커서 그런지 가까이 다가가기 무서웠지만, 동지는 지난 학기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서 그런지 꽤 반가웠다. 마방문을 열자 동지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럴 때 영화에서는 손을 코에 대고 사람과 말이 아름답게 교감하던데... 현실의 나는 동지가 밖으로 나가버릴까 봐 재빨리 말의 왼쪽으로 들어가 동지의 얼굴을 안고 마방굴레를 벌렸다. 방학이 끝나고 처음 만난 동지의 얼굴은 여전히 따뜻했다.
나는 마방굴레를 채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나만 동지가 반가웠던 모양인지, 동지는 그대로 쌩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재빨리 마방굴레에 연결된 끈을 잡고 동지를 끌었다. 동지는 역시나 자기 맘대로였다. 갑자기 앞쪽 마방에 있는 말과 코를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하며, 둘이 뽀뽀하는 건지 인사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무리 밀어도 가만히 있었다. '동지는 프랑스에서 온 건가? 인사가 완전 유럽식이네...'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동지를 뗄 수가 없어서, 지나가던 미자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언니.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
"응. 그냥 밀면 돼."
나는 미자 언니와 함께 동지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