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승마대회 구경하기 2

by 김용희

경기는 어느덧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덜커덩 선생님>은 제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마구간으로 향했고, 나는 관중석에 앉아 선수들이 말 타는 것을 구경했다. 나는 아직 승마를 잘 모르겠지만 춤을 출 때도 댄서마다 춤 선이 다 다르듯이 선수마다 자세나 리듬이 다 다른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선수들이 말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선수 잘 타네.'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승마경기는 특이하게도 같은 선수가 말을 바꿔 타고 여러 번 나오는 듯했다. 예를 들면 소속이 같은 이민지 선수의 이름이 팸플릿에 여러 번 쓰여있기도 했고 선수의 체형이 계속 같은 사람인 듯하게 보였다.


'뭐야? 한 사람이 말을 바꿔 타고 계속 출전해도 되나 보네?'


팸플릿의 대회 요강 부분을 살펴보니, 말은 경기에 따라 1마(馬)가 1일(日) 4회 이내로 출전하게 제한되어 있었지만, 선수는 제한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옆에 있던 말을 잘 탈 것 같은 관중분에게 물었다.


"저 혹시 지금 이민지 선수가 이 경기에 3번을 출전하는 게 맞나요?"


말을 잘 탈 것 같은 관중분은 내게서 팸플릿을 받아 들고는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대답해 주셨다.


"네. 선수들은 말을 바꿔 타고 출전하기도 하는데, 여기 소속을 살펴보면 이민지 선수가 3번 출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헐, 선수들 진짜 대단하네요."


나는 장애물 80cm라면 낮은 높이도 아니고, 한 번 출전할 때 긴장감이나 체력 소모도 엄청 날 텐데 대체 선수가 어떻게 한 경기를 3번씩이나 출전할 수 있는 건지 그런 깡깡한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


경기를 보고 있자니 아침에 읽었던 루이스 헤이의『치유』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루이스 헤이가 77세가 되었을 때 사교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춤을 추는 게 유독 두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자신의 마음을 성찰해 보니 춤을 틀리면 누군가 때릴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77세가 되어서도 자신 안에 있는 내면 아이는 여전히 누군가 때릴까 봐 두려워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승마를 못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뭔가 루이스 헤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


나는 경기를 관람하다가 어쩌면 내가 승마가 두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내가 무언가를 통제하는 데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자유를 통제하는 건 나쁜 짓'이라거나 '나는 절대 누군가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이런 생각이 내 인생에서 타인이 나의 경계를 넘어들어오게 너무도 쉽게 허용해 주거나, 타인의 자유를 중시하다가 오히려 내 자유를 제한해버리고, 내 인생의 주인공자리에 나를 잘 갖다두지 못하는 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타인을 쉽게 내 자리에 허용한 뒤 그 사람이 내게 배려해줄 것은 기대하는 그런 생각이 어쩌면 누군가에는 의존성이 강하고 이용하기 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좋은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고마워 하겠지만 글쎄? 세상 사람이 모두 그럴까? 어쩌면 통제의 힘은 우리가 함부로 남용하면 안 되겠지만 통제의 힘을 익혀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있으면서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아예 갖고 있지도 못하는 것은 뭔가 다른 문제인 것 같기도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데 말을 타던 이민지 선수가 장애물에 말이 걸려 앞으로 튕겨 나가는 게 보였다.


'방금 뭐였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느라 선수가 어떻게 넘어지게 된 건지는 보지 못했지만, 선수가 앞으로 튕겨 나가는 모습은 목격했다. 내가 맞게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는 한 번 바닥에 가슴을 찧고 또 한 번 앞으로 튕기면서 떨어진 것 같았다. 선수가 타던 말 만 홀로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선수 확인, 선수 확인. 진행요원들은 선수 확인부터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흥겹게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고 본부석에서는 진지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면 큰일 난 거 아냐?'


나를 비롯한 많은 관중이 선수가 걱정되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말은 다행히 경기장을 반 바퀴 정도 돌다가 다른 팀 코치님으로 보이는 분께 잡혀서 진정되고 있었다.


경기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119 소방대원분들이 선수를 구조하기 위해 뛰어갔다. 나는 저 정도 충격이면 선수가 못 일어나는 게 아닌 가 했었는 데, 한참이 지나서 선수가 일어나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선수의 한쪽 뺨이 무척이나 빨갰다. 아마 가슴으로 떨어진 후에 한쪽 얼굴을 경기장에 찧은 것 같았다. 다행히 피가 나진 않았지만, 충격이 대단할 것 같았다.


'저렇게 걸어 나가는 것도 부상을 더 심각하게 하는 거 아닐까?'


나는 걱정이 되어 선수가 퇴장하는 걸 한 참 지켜보았다.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때론 코치님들도 선수로 경기에 참여하는 데, 어떤 승마클럽의 코치님이 경기에 참여하자 어린 제자들의 응원이 메시지가 쏟아졌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코치님은 관중들의 호응을 받으며 멋지게 말을 타고 퇴장했다.


'와 멋지다. 코치님의 실력은 확실히 다르구나.'


코치님의 상체가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멋지게 말을 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수는 말이 너무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대서 타기가 어려워 보였는데,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말을 리드해서 경기를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저 말은 저 아이 아니면 아무도 못 탈 거야."


뒤에서 아저씨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봐도 저 말은 너무 야생마 느낌이 강해서 경기장에선 아무나 못 탈 것 같긴 하다. 어느덧 팸플릿에 쓰여있는 참가선수의 경기가 모두 끝났다. '이제 80cm 장애물 경기는 모두 끝난 건가?' 생각하고, 관중석에서 일어나려는 데 본부석에서 방송이 들려왔다.


"다음은 번외경기로 이민지 선수가 출전하겠습니다."


'엥? 아까 넘어졌던 그 선수 아니야?'


분명 아까 엄청나게 세게 넘어진 것 같은데, 다시 말을 탄다고? 나는 지금 내가 뭘 잘 못 생각하고 있나 싶어서 옆에 계시던 말을 잘 탈 것 같은 관중분에게 다시 물었다.


"저기 혹시 아까 넘어진 그 이민지 선수가 또 나오는 게 맞나요?"


옆에 있던 관중분은 나를 보더니 대답했다.


"네. 아까 넘어진 그 선수가 맞는 것 같아요."


"아니, 근데 넘어져도 이렇게 또 나오기도 하나요?"


"네. 넘어져도 선수가 부상이 없으면 다시 나오기도 해요."


'헐.'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진짜 세게 떨어졌는데, 다시 나온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정신력 대단하다.'


나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놀라서 그냥 경기를 지켜보았다. 선수는 여전히 좋은 실력으로 경기를 마쳤다. 경기가 끝나고 잠시 경로를 조정하는 시간에 나는 선수가 너무 걱정되어 몸은 괜찮은지 보러 마구간 앞을 서성거렸다. 소방관분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선수 진짜 큰일 날뻔했어요."


나는 두 분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그 선수 괜찮은 거 맞아요?"


"네. 결과적으로 괜찮긴 한데, 떨어질 때 하마터면 목 꺾일 뻔했어요. 안 꺾인 게 천만다행이에요."


'헐.'


내가 아무리 승마 입문자라도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내일 되면 선수 몸이 엄청 아픈 거 아닐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 내게 드디어 이민지 선수가 보였다. 작은 체구의 차분해 보이는 얼굴의 선수는 조용히 말을 타고 있었다. 어떤 친구가 선수에게 말을 걸었다.


"진통제 먹었어?"


"아니, 안 먹었어."


선수의 왼쪽 뺨이 유독 빨개 보였다. 말을 계속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선수는 뭔가 다음 경기에도 나가는 것 같다. 나는 다가가 어떤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수장대에 있는 다친 말에게 연고를 바르고 상처를 극진히 살피고 있었다.


'설마 저 말 아까 그 말인가?'


저 말이 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은 코가 좀 까지고 무릎이 좀 까졌다. 겉보기에는 선수가 더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말만 챙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못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호구 착용을 강화한다거나 해서 어쨌든 승마경기에서 말 못지않게 선수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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