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저찌 준비에 성공한 내가 옆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내 능력에 대한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그냥 능력과 상관없이 옆 사람의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주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혜수 언니는 말의 안장을 얹고 있었는데, 나는 말의 오른편에 서서 복대를 연결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혜수 언니가 준비하는 말은 새별이라는 말로 경주마인 서러브레드인데, 우리가 타는 한라마 보다 몸집이 크고 잘 달리기로 유명하다. 사람들 말이 새별이는 성격도 좋다고 했다.
'나도 나중에 서러브레드 한 번 타보고 싶다.'
사람들의 체형이 모두 다르듯 각각에 맞는 말의 크기와 성향이 있는 것 같은데, <덜커덩 선생님> 말씀으로는 선수들이 서러브레드를 타다가 한라마를 타면 선수에 따라서 잘 못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라마는 서러브레드와 제주 토종말인 제주마의 혼종으로 서러브레드보다는 덩치가 작은 게 특징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체형이나 성향에 따라 한라마는 따가닥 따가닥 거려서 잘 못타는 사람이 갑자기 서러브레드는 잘 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나는 전에 겅중겅중 뛰어서 달리면서 머리를 흔드는 소만이는 어려워서 못 타고, 얌전히 달리며 종종 걸음을 치는 동지를 유독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면 사람과 말의 궁합이 있는 것도 같다. 지난 학기 유진 씨는 동지를 타다가 떨어질 뻔하기도 했고, 나는 못 타는 소만이를 김 반장님은 좋아하는 걸로 봐서 아마도 자기에게 맞는 성향의 말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뭐 사람들 사이도 그렇긴 하지. 나에게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고.
어느덧 우리가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한 <덜커덩 선생님>이 말했다.
"등자 맞추세요."
나는 이 길이를 어떻게 맞춰야 좋은지 잘 몰라 옆에 계신 잘 타는 분께 물어보았다.
"등자는 길이를 얼마로 맞춰야 좋은 거예요?"
"그건 강사님마다 다르셔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등자 길이에 대한 특별한 규칙은 없는 모양이다. 등자는 안장에 달린 발판을 말하는 데, 이 길이가 얼마가 되야 내가 잘 탈 수 있는 지는 아마 내가 찾아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았는데, 거대한 대한이를 탈 때 등자 길이를 아주 길게 했다가 말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말 위에서 스쾃하는 것처럼 움직이려면 등자 길이가 너무 길면 안 좋은 거 아닐까?'
나는 등자 길이를 최대한 짧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한 시간이나 말을 타야 하기에 말 등에서 최대한 쭈그리고 있다가 반동을 이용해서 다리를 조금만 펼 생각이었다. 한 시간을 스쾃을 해야 하니까 이렇게 하면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지나가던 <덜커덩 선생님>이 등자를 보고 말했다.
"아니, 이렇게 짧으면 아무도 못 타요. 다리 길이를 생각해야지.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하지 말아요."
'아니, 선생님은 어떻게 내가 나를 과소평가 하는 걸 아시는 거지?'
이번 승마 수업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그 마음을 끊고자 다짐했었는데... 그게 아마도 자신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채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귀신같은 덜커덩 선생님 같으니라고.'
어떤 분야든 꽤 오랫동안 몰입해서 하게 되면 통찰력이 생기는 걸까? 선생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잘 보는 것 같다.
"자, 이제 마장으로 들어 가실께요."
<덜커덩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말을 끌고 마장으로 들어갔다. 동지는 신기한 성격의 말인데, 앞에 차가 있으면 길을 잘 안 건넌다. 말의 지능이 5~6살 정도의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데, 아마 위험을 체득해서 알고 있는 똑똑한 말 같다.
하지만 어린아이도 엄마 손을 잡고 걸으면 길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듯이 말에게 의지할 수 있는 강한 리더라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면 말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데, <덜커덩 선생님> 말씀으로는 기수가 말을 앞에서 세게 끌어야 말이 따라온다고 하셨다.
'동지야, 위험한 거 아니야.'
나는 마음속으로 한마디 한 뒤 동지를 세게 잡아당겨 마장으로 들어갔다.
"동지, 처서는 직접 복대 길이를 맞추시고요, 다른 분들은 제가 해드릴게요."
복대 길이에 따라 말 등에 안장이 고정되는 데 잘 무는 말은 학생들이 말을 잡고 있으면 선생님이 올려주실 예정인 것 같고, 동지는 원래 잘 안무니까 내가 직접 올리라고 하신 것 같다. 나는 안장 밑에 있는 복대 끈을 잡고 길이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동지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조심조심 길이를 조정하고 있는데, 동지가 내 허리를 콱 물었다.
'뭐야, 동지도 무는 거야?'
다행히 나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승마 조끼를 입고 있어서 말 입에 허리가 들어가진 않았다. 지난 학기 동지랑 많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동지가 무는 것은 이상하게 소만이나 대한이 만큼은 무섭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물릴 수는 없어서 선생님께 큰 소리로 말씀드렸다.
"선생님, 동지가 무는 데요?"
"그래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올려 드릴게요."
나는 선생님이 다가오시길 잠시 기다리며, 동지를 쓰다듬었다. 동지를 많이 알게 돼서 그런지 동지는 이제 그냥 좀 귀엽게 느껴진다.
이윽고 <덜커덩 선생님>이 다가오셨고, 나에게 동지 머리를 살짝 바깥쪽으로 잡으라고 하셨다. 이윽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안장이 잘 고정되었고 나는 사다리에 올라 말 등에 탔다.
신기한 건 오늘은 왠지 잘 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아직 말 컨트롤은 모르지만, 적어도 지난주처럼 말 등 위에 앉아 힐링 승마를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장도 등자 길이도 내 체형과 잘 맞게 조율된 것 같다.
'아마도 오늘 1시간 말타기가 가능할 것 같은데?'
아래쪽에서 <덜커덩 선생님>이 소리치셨다.
"쌤, 오늘은 동지 세게 타셔야 되요. 지금 다리 힘으로는 동지 컨트롤 못 해요. 강하게 리드해야 해요."
"네!"
이제는 뒤에 뒤처져 있지 말고, 의존심을 끊고 혼자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는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수 역할을 맡은 이상 말을 제대로 리드해 봐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떨어지는 건 무섭지만, 떨어져도 죽진 않으니까 잘 자립할 수 있다면 죽기 직전까지만 위험한 건 괜찮지 않을까?
나는 동지를 먼저 달리게 하고,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동지는 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지만, 옆에 말이 달리면 자기도 따라서 달리고, 아무도 없으면 그냥 섰다.
'뭐야, 동지. 너 자존감 없는 말이야? 옆 말들만 따라 하게?'
나는 지금 이 말을 내게 하는 건지 동지에게 하는 건지, 아니면 동지와 나 둘 다 문제인 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승마를 하면서 자아 성찰하고 있는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나를 매의 눈으로 보고 있던 <덜커덩 선생님>이 밑에서 소리치셨다.
"쌤, 말을 확실히 리드해요. 말이 옆 말들을 따라서 달리잖아요. 어디로 갈 건지 쌤이 정해야 해요."
'아... 이번 만큼은 저 말씀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겠는데, 말 컨트롤을 진짜 안 된다.'
"쌤, 방향 전환할꺼면 고삐를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확실히 당겨요. 양쪽 다 당기지 말고."
"네!"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확실히 입력은 되는 데, 지시대로 출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말을 리드해 보려고 했다. 이윽고 선생님은 반 전체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마장에 발자국을 다 찍고 다닌다는 느낌으로 빠르게 방향 전환하세요. 컨트롤이 속도가 느리면 말이 그냥 서버려요.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 건지 확실히 정하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세요. 말 컨트롤 못하면 나중에 6~7주 차에 구보 배울 때 수업 못 따라가요. 못 따라가는 사람은 그냥 두고 수업할 거예요."
<덜커덩 선생님> 성격에 못 따라가는 사람을 그냥 두고 수업할 리도 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6~7주 차가 되면 우리 반이 뭔가 무서운 걸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마 6~7주 차에도 말을 컨트롤 제대로 못 하게 되면 그때 아마도 또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힐링 승마를 해야 할 듯하다. 나는 이제 이번 학기에는 지난 학기처럼 벌벌 떨며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동지야, 가자."
나는 동지를 빠르게 달리게 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빠르게 달려 보았다.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방향 전환한 후, 동지와 함께 빠르게 달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왼쪽으로 달릴 때보다 오른쪽으로 달릴 때 동지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뭐야,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왼쪽은 편한데 오른쪽은 무섭게 느껴지는 거야?'
나는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오른쪽으로 돌 때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차도 창문 열고 안 타고, 오토바이도 싫어하는데... 으아 말은 더 무섭잖아.'
사실 나는 평소에도 운전할 때, 창문을 잘 열지 않는데... 빨리 달릴 때 자동차 창문을 열어 놓으면 속력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 좀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이 방향 전환을 마구마구 하라고 하셨지만, 당분간 나는 그냥 오른쪽으로 달리지는 않고 왼쪽으로만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용희 쌤, 고삐를 계속 잡아당기면 말이 점점 더 빨리 뛰어요. 고삐를 잠시 당겼다가 놓아주면서 속도를 컨트롤하면서 달려요."
'아...'
내가 오른쪽으로 돌 때 무섭다 보니 상체에 힘이 들어가서 고삐를 계속 당겼고, 그래서 동지도 계속 빨라졌나 보다.
'그래도 뭐 지난주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리는 말 등에 있으니, 몰입이 잘 되어 1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즐거웠다. 태워줘서 고마워 동지야.'
나는 오늘도 별다른 사고 없이 나를 등에 태워준 동지를 쓰다듬고 귀에 다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승마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시간 동안 승마에만 몰입하다 보니, 센터에 오기 전 머릿속에 있던 약간의 상념들이 어느새 다 사라진 것 같다.
'이렇게 강한 몰입이 승마의 효과인가?'
신기한 것은 말 위에서 중심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쨌든 허리를 강제로 세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목과 허리가 교정받은 것처럼 매우 시원하게 느껴졌다.
'다음 주에는 더 열심히 해볼까?'
말에 대한 무서움이 점점 사라지고 허리가 시원해지는 점이 어느덧 나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