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 책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기획서를 완성하고 나니 내가 과연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완성할 수 있을지 지금 단계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기획안을 따라 무작정 글을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책은 완성하려면 장소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전에 드로잉 북을 만들 때는 원고 내용이 많았던 것 같았는데, 그 중 동물을 우연히 만났던 곳을 추려내다 보니 선정할 수 있는 장소의 범위가 대폭 축소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에세이를 쓰기로 했기 때문에 여러 장소 중에서 내가 직접 동물을 만났고 자주 가고 익숙해서 작은 것이라도 세세히 알고 있는 장소를 선정하기로 했다. '삼의악의 노루', '사라봉의 토끼', '거문오름의 달팽이', '제대 근방의 꿩', '소산오름의 딱따구리'. 이렇게 다섯 곳을 먼저 써 보기로 했다.
'이 장소들부터 한 번 글을 써보고, 콘셉트가 괜찮으면 추가로 취재해서 글을 완성해 보지, 뭐.'
나는 노루부터 시작해서 생각한 순서대로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라봉 토끼를 쓰다가 한때 집토끼였을 것 같이 생긴 이 아이들을 책에 넣는 게 맞는지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현재 토끼들이 사라봉 정상에서 3년 넘게 잘살고 있으므로 다소 독특한 콘셉트의 우연히 만나는 동물로 토끼도 적어보기로 했다. 당시 토끼를 책에 넣기로하면서 이후에 취재할 수탉, 말, 소 등을 찾아 제주 여기저기를 본격적으로 취재하러 다니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종족이 출현할 때: 삼의악 노루>
어느 날 홀로 숲길을 가는 데 ‘까꿍’ 노루가 인사합니다. 길 한가운데 노루가 서 있었는데 아마 그 친구는 거기가 인간이 다니는 길이란 사실을 모른 것 같아요.
일단 제 입장에서는 노루 출현에 경계모드가 발동됩니다. 홀로 있는 숲에서 가뜩이나 긴장감이 엄습하는데 노루가 나타나면 착한 친구인 걸 알아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겁 많은 노루가 숲 쪽으로 몸을 숨기자, 재빨리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노루가 도망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조심.
★ 노루를 보고 싶나요? 오늘은 없을 수도 있어요!
● 찾아가기: 제주시 아라일동 산 67-4, 삼의악
아라동 역사 문화 탐방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사라봉의 토끼>
제주의 사라봉은 예로부터 사봉낙조(沙峰落照)라 해서 저녁 해가 멋진 곳입니다.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제주 10경 가운데 하나로 동쪽에는 별도봉이 있어서 사라봉의 산과 별도봉의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곳이지요.
사라봉은 제주국제공항으로부터 5.2km,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합니다. 제주를 곧 떠나야 하는데 제주의 자연을 끝까지 담고 싶은 분들이 빠르고 임팩트 있게 바다와 산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적합합니다. 오름을 돌면서 두리번거리면 떠나는 순간까지 한라산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사라봉 정상에는 토끼 가족이 삽니다. 그 친구들이 거기 왜 살고 있는 지는 도민들도 잘 모릅니다. 제가 관찰한 것만 3년 넘게 살고 있으니 아마 안전하게 잘살고 있는 것 같고요. 인간을 경계하진 않지만 만져보긴 어렵습니다. 사라봉 정상에 풀이 많아서 먹을 것은 넉넉하고 토끼를 구경하고 싶으면 우리는 사라봉 정상까지 걷기만 하면 됩니다. 사라봉 정상은 경사가 완만해서 올라가기 어렵지 않아요.
★ 우당도서관 앞 주차 편함
● 찾아가기: 제주시 사라봉동길 30, 사라봉
<비 안 오면 달팽이 쉼: 거문오름 달팽이>
제주 달팽이는 왕 큽니다. 그만큼 자연이 왕 깨끗하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달팽이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생태계의 순환을 돕는다던데 그만큼 성격도 왕 착할 것 같습니다.
꿈에 달팽이를 보면 기다리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혹시 제주에서 달팽이를 만나게 되면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아 어디서 볼 수 있냐고요? 거문오름에 가면 볼 수 있어요. 울창한 숲이 검은색을 띠고 있어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시발점입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벵뒤굴등 제주의 대표적 용암동굴 시스템을 말하는 데요. 이곳의 시작이 이 신령스러운 곳인 거문오름입니다. 독특한 지형과 희귀식물도 볼 수 있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탐방은 예약한 사람만 볼 수 있고 당일 예약은 불가능합니다.
해설사님의 안내에 따라 탐방이 시작되는 데 처음에 계단이 많아 좀 놀라실 수 있습니다. 처음만 그렇고 조금만 참으면 456m 높이의 정상에 다다릅니다. 정상 코스가 끝나고 나면 해설사님께서 먼저 “힘드시거나 먼저 내려가실 분들 가세요.” 합니다. 그럼, 그때 완전 특별한 일이 있으신 분을 제외하고 절대 절대 내려가지 마시고 분화구 코스까지 구경하고 가세요.
거문오름 탐방은 분화구 코스부터 시작입니다. 멋지고 좋은 것은 분화구 코스에 다 있어요. 물론 달팽이도 거기 있고요!
★ 비 안 오면 달팽이 쉼
● 찾아가기: 제주시 조천읍 선교로 569-36, 거문오름
● 거문오름 탐방예약문의: 064-710-8981
<한라산 멍 때리는 중: 제주대학교 근처의 꿩>
노루나 토끼만큼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은 꿩인데 제주대학교 근처 들판에서 자주 보여요.
길을 걷다 보면 뭔가 무거운 것이 푸드덕하고 날아갑니다. 좀 웃긴 친구라고 생각되는 게 멀리 날지도 못하는데 소리만 시끄러워요. 둔탁한 게 팍 날아가서 자세히 보면 꿩이고 여기저기서 만나기 쉬운 동물 중 하나입니다.
★ 푸드덕거리면서 둔탁하게 날아가면 꿩
★ 움직임이 감지되면 사진은 빠르게 찍어야 함
● 찾아가기: 제주대학교 근처
<오늘도 헛방이네: 소산오름 딱따구리>
딱따구리는 엄청 열심히 삽니다. 자주 보이지는 않는데 소산오름에 가면 어딘가에서 나무 쪼는 소리는 계속 들려요. 딱따구리를 몇 번 본 적 있는데 제가 본 친구들은 어설퍼서 사람 눈에 띄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를 열심히 쪼는 데 그때마다 계속 헛방이더라고요.
딱따구리가 먹이 잡는 법을 구경해 보니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나무를 쪼면서 부지런히 계속 올라가요. 그래도 오늘 먹이는 못 잡았어요.
지금 이 친구의 이름은 큰오색딱따구리예요. 그리고 수컷이죠. 어떻게 아냐고요? 큰오색딱따구리는 머리 꼭대기가 붉으면 수컷이래요. 참고로 소산오름에 가시면 딱따구리도 볼 수 있고, 맨발걷기도 가능합니다.
★ 부지런한 딱따구리는 소리만 들림
● 찾아가기: 제주시 아라일동 산 37-1, 소산오름
막상 책을 적어 보니, 콘셉트를 잘 풀어내면 나름대로는 세상에 없던 재밌는 여행책이 될 것도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고도 부족하고, 중요한 건 과연 내게 이 콘셉트를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있을까?
'그래도 어떻게 해? 지금은 방법이 없잖아.'
나는 긴가민가했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글만 적으면 콘셉트가 좀 난해할 것도 같아 그동안 찍어두었던 동물의 사진도 넣어보았다. 글과 사진이 함께 있으니 그럴듯하기도 했고, 더 이해하기 쉬운 느낌이 들었다.
'근데 책 제목은 뭐로 하지?'
나는 좋은 제목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전에 어느 카페에 갔을 때 작은 선인장 화분에 쓰여있던 문구를 책 제목으로 하기로 했다.
『안녕, 제주』
나는 표지를 만들고 책 내용을 정리해서 인쇄한 후 발표 자료를 완성했다. 막상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면 책의 콘셉트를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발표 내용도 미리 한 번 생각해 두었다.
'기왕 이렇게 시작한 거 이 책을 끝까지 잘 완성할 수 있었으면...'
나는 10주가 지나 책 만들기 수업이 끝났을 때, 과연 이 책이 완성될 수 있을지 아닐지 별다른 확신이 없는 채로 그렇게 발표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