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사 온 두 권의 책 모두 폭 110mm 높이 178mm와 비슷한 판형이었다. 요즘 인기 있는 에세이는 이 판형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백이 좀 적기도 했고 글씨도 좀 작게 느껴져서 약간 의아했다.
'이 판형이 인기가 있는 게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이 판형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기에 일단 인디자인으로 두 가지 판형으로 각각의 책을 만든 뒤 프린터기로 출력해서 내 책과는 어떤 판형이 어울리는 느낌을 한 번 보기로 했다.
먼저 조금 큰 판형인 폭 126mm 높이 188mm의 판형으로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여백도 많이 주고, 전체적으로 페이지에 여유를 두고 작업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분량이었다. 원고의 반 정도 분량을 만들었을 때 총 40장의 책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작업한다고 했을 때 80장 정도 분량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걸로 책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생각보다 글이 적은가? 아니면 판형을 더 줄이면 분량이 많아지려나?'
나는 궁금증이 들어 폭 110mm 높이 178mm의 책도 만들어 보았다. 그러다가 똑같이 원고의 반 정도 분량을 만들어 보니 37페이지가 나왔다.
'엥? 판형이 작아지는 데, 왜 페이지가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지?'
생각해 보니, 전체적으로 페이지의 여백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또한 책이 크면 한 꼭지당 가끔 아무런 글이 들어가지 않는 빈 페이지가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판형이 작은 경우는 우연일 수도 있지만 빈 페이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고 내용이 꽉꽉 채워졌다.
'아... 책 판형을 줄이면 그만큼 글도 많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책을 만드는 것은 책을 그냥 보는 것과는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
그래도 뭐. 지금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까 답답해하지 말고 이것저것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일단 분량이 같다면 나는 여백을 좀 더 많이 줄 수 있고 독자들이 읽기에 더 편한 폭 126mm 높이 188mm의 판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막막했던 건 내 글과 이 판형에 어울리는 글씨체를 고르는 일이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글씨체가 읽기에 불편하지만 않으면 어떤 글씨체인지 별다른 관심이 없다. 나도 독자의 입장일 때는 그랬기 때문에 막상 내가 책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문제는 글씨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거였다.
'나 원래 한글로 파일을 작성할 때는 함초롱 바탕체 좋아하는 데, 책을 함초롱 바탕체로 인쇄하기엔 좀 그렇겠지?'
아무도 내게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느낌상 왠지 그럴 것 같다. 소라빵 선생님께서는 책을 만들다가 필요한 서체가 있으면 눈누라는 한글 폰트 모음 사이트에서 검색해 볼 수 있다는 말을 해주셨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눈누 사이트에 접속해서 명조체를 검색해 보았다. 주변에 책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본문 서체는 요즘 명조체가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면으로 보니, 어떤 서체가 내 문제와 어울리는 지 감이 오지 않았다.
'뭐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다 프린트해 보자.'
나는 책 4~5페이지 분량을 다양한 서체로 인쇄해 보기로 했다. 책에 어울리는 글씨체를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글씨 크기도 중요해서 나는 내 책 판형에 어울리게 글씨 크기도 이렇게 저렇게 설정해 보기로 했다.
내가 인쇄해 본 서체는 한마음 명조 B regular 9.5, 나눔 명조 Bold 9.5, 제주 명조 10, 부크크 명조 9.5, 예스명조 9.5, 바른 바탕 10, 수성 바탕체 9.5 등등이었다. 집 프린터기가 흔들리면서 인쇄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글자 크기가 작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모든 글씨가 좀 울렁울렁하게 보였다.
일단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니까 집 프린터기로 인쇄했을 때 최대한 울렁울렁함이 없는 진한 글씨체를 선택하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지난번 가제본에서는 글자가 또렷하고 울렁거림은 없는 체를 선택하긴 했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책이 좀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번 가제본에서 사용한 글씨체와 다른 글씨체들을 도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글씨체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글씨체 중에는 부크크 명조 Bold 9.5와 수성 바탕체 10에 자간 103%를 한 게 제일 예뻤고, 수성 바탕체 9.5에 104%도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계속 글씨체를 찾고 인쇄하고 다시 살펴보고 하니, 책의 판형에 잘 맞는 글씨체와 글씨 크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글씨체를 조절 하다보니, 글씨체와 크기에 따라 책의 이미지가 미세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내 책에 어울리는 글씨체와 크기를 찾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찾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글씨체를 발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때마침 내가 틀어놓은 유튜브에서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 흘러나왔다.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모든 과정을 어떤 지혜를 얻기 위한 실험으로 봐라."
나는 이 말이 왜 지금 내 귓가에 들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냥 누군가 지금 내가 들어야 할 말을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