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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Feb 04. 2024

25. 말에게 말 걸기

"쌤, 바이올렛은 왜 마구간 난간을 물어뜯어요?"


마구간에서 한참 말을 구경하던 나는 바이올렛이 마치 빠지려는 틀니를 난간을 씹어서 다시 끼는 듯이 하는 행동을 보며, 이미정 선생님께 물었다. 바이올렛은 쥬디 옆 방인데, 하프링거로 쥬디보다 얼굴 하나 정도 키가 더 크다. 쥬디보다 훨씬 덩치가 큰 바이올렛이 쇠로 된 마구간 난간을 씹고 있으니 좀 무섭기도 하고, 이 구역에 일진 같기도 하고 뭐 때문에 그런지 궁금하기도 했다.  


"바이올렛이 저렇게 하는 건 틱 이에요."


"네? 틱이요? 무슨 틱이 이렇게 무서워요?"


"글쎄요? 바이올렛 나름대로 안정감을 찾으려 하는 것 같아요. 우리도 얘를 고쳐주고 싶어서 돈도 많이 썼는데 잘 안되네요."


이 승마장은 말을 정말 자식처럼 잘 돌봐주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이가 가려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여쭤본 건 데 이런 세세한 부분도 고쳐주시려 돈도 많이 썼다고 하니까 좀 놀라웠다.


"말들은 빠르게 달리는 게 장점이긴 한데, 잘 놀라고 겁이 많아요. 포식자가 공격하면 빠르게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다 보니, 아마 사람들이 돌봐주지 않았다면 멸종하고 말았을 거예요."


 나는 승마장에 오기 전까지 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막연히 사람이 말을 이용한다고만 생각했었지 말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도 같다.


이곳 승마장은 이미정 선생님, 하희숙 선생님, 사장님 이렇게 세 분이 근무하시고 총 15마리의 말이 살고 있다. 나는 하루 종일 승마장에 있는 건 아니라 선생님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주로 보면, 강습하시는 시간 이외에는 말에게 풀을 주거나, 물을 주거나, 마구간을 청소하는 등의 분주한 시간을 보내신다. 특히 대설주의보가 와서 도로가 통제되는 상황에서도 걸어서 승마장에 출근해서 눈에 무너진 시설 보수도 하고 말 밥도 살뜰히 챙겨주신다고 했다. 가끔 보면 말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건지 사람이 말을 위해 봉사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곳 승마장의 말들은 털도 뽀송하고, 영양상태도 좋고, 전반적으로 성격도 좋은 게 아마 복지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닐지 생각한다.


"쌤, 말은 몇 년까지 살아요?"


"25년 정도 산다고 해요..."


선생님은 말들이 그 말을 들을 까봐 목소리를 줄이시는 듯했다.  


"그래요?"


나도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쥬디는 몇 살이에요?"


"쥬디는 15살이에요. 작년에도 15살, 올해도 15살."


나중에 알고 보니 말이 사람들 말을 알아듣고, 혹시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걸 느끼게 될까 봐 말 앞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했다.


"아, 그러니까 우리가 작년에도 스무 살. 올해도 스무 살인 거랑 같은 거네요?"

  

"그렇죠. 그렇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쥬디, 너 청춘이구나. 어쩐지 너 진짜 잘 달리더라."


나는 괜스레 쥬디 얼굴을 만지며 한 마디 했다. 그냥 쥬디가 자기 나이를 까먹고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한다.


"선생님, 근데 쥬디도 아기를 낳은 적이 있어요?"


"몇 번 있어요."


"쥬디야, 너 애기도 낳았어? 네 애기들은 아마도 너 닮아서 잘 달리겠지?"


나는 쥬디가 괜히 애기들 생각할까 봐 애기들은 어디 있는지 자세히 묻지는 못했다. 이 승마장에는 벤허와 볼케르 같이 엄마와 아기 말이 있기도 한데, 쥬디 애기들은 왠지 여기 없는 듯하다.


"용희 씨, 쥬디 데리고 마장으로 가시겠어요?"


나는 오늘도 쥬디와 함께 마장으로 향했다. 가끔 다른 말들도 타보긴 했는 데, 쥬디만큼 교감이 되는 말은 아직 없는 듯하다. 쥬디는 진짜 사람만큼 똑똑하다.


"자, 다들 준비되셨으면 출발할게요."


마장에 도착해서 강습 준비를 마친 우리는 출발을 위해 한 줄로 섰다.


"쥬디야, 이제 출발이래. 출발하자."


나는 평소에 쥬디에게 출발 신호를 주지 않고, 쥬디에게 말을 건다. 사실 쥬디는 선생님이 '출발'이라는 말만 해도 알아서 가는 것 같다. 내 느낌이지만 쥬디는 '평보', '좌속보', '경속보' 이런 말도 다 알아듣는 것 같다.  


"용희 씨, 말한테 출발하라고 신호를 줘야지, 말을 하네요?"


놀란 이미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기 승마장 말들은 이렇게 해도 다 알아듣던데요?"


사실 이곳 승마장은 말들이 사람 말을 다 알아들어서 이렇게 해도 쥬디는 잘 간다. 나는 그냥 잘 달리려는 생각보다는 말들과 잠시 교감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나저나 기수가 잘 타야 말에게도 부담이 없다던데 쥬디의 허리디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좀 빨리 연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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