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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Feb 03. 2024

24. 미자 언니네 동네 탈출기

"어떻게 해? 눈이 많이 오나 봐."


저녁 8시,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창일 무렵 미자 언니네 집 마당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오면 어때? 다들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파티가 즐거웠던 우리는 애써 걱정을 외면한 채, 한시간가량 더 웃고 떠들었다. 9시가 되자 도진 씨가 말했다.  


"이제 가야겠어요. 눈이 너무 많이 쌓이는 데요?"


도진 씨의 말에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니, 미자 언니네 집 마당은 이미 하얀색이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도로 CCTV 보면 용희 쌤네 동네도 장난 아니에요."


"그, 그렇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눈을 뚫고 탈출해야 하는 바로 그 시간.


"쌤, 여기서 스프레이 체인 뿌리고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가시다가 동네 진입하실 때 한 번 더 뿌리시고요."


"네."


도진 씨의 말에 우리는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겨울왕국이었다. 나는 가는 길에 혜수 언니를 집에 데려다 주기로해서 마음이 더 급해졌다.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쳐서 차 앞 유리는 이미 눈이 쌓여 있었고, 아스팔트도 하얀 눈이 덮여가고 있었다. 도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쌓인 눈을 발로 밟아보니 다행히 눈이 아직 얼어 붙진 않아서 미자 언니네 동네를 빠져나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니, 나는 아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혜수 언니를 차에 태우고, 눈 긁개로 앞 유리의 눈을 치웠다. 마음이 급한 것 처럼 손이 빠르게 움직여지지 않는듯했다.


"지금 스프레이 체인 뿌리고 갈까요?"


나는 차에 있던 스프레이 체인을 만지작거리며 김 반 장님께 물었다. 빨리 이 동네를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 데, 미끄러질까 두려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아냐, 그냥 가. 아직 얼어붙지 않아서 지금 빨리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네, 알겠어요."


나는 김 반장님과 미자 언니에게 인사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도진 씨와 유진 씨도 눈을 긁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갈게요. 다들 조심히 가세요."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가속페달을 세차게 밟았다. 이 상황에서 차를 유턴할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빠져나가기 좋도록 미리 차를 돌려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자 언니네에서 내려오는 길은 캄캄하고, 눈이 세차게 내렸다. 길이 워낙 캄캄해서 여기서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차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는 혜수 언니가 걱정할까 봐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사실 내 마음을 바짝 긴장된 상태였다. 괜히 혜수 언니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건 아닌지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조심 큰 도로까지 나왔다. 


제주 산간 지방이 겨울엔 이렇게 무서운 걸까? 


차로 10분 거리쯤 되는 혜수 언니네 동네로 내려오자, 거짓말처럼 눈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도로 상태를 보니 이쯤 되면 산간 지역 초입에 있는 우리 동네도 진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로 볼 때는 미자 언니네와 우리 동네가 고도 차이가 크게 안 나는 것 같았는데, 약간의 고도 차이도 겨울에는 이렇게 다른 가 보다. 


"용희 씨, 고마워요. 조심히 가요."


집 앞에서 혜수 언니가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긴장감이 잦아들었다. 나는 미소를 띤 채 혜수 언니에게 말했다.  


"네, 언니. 언니도 잘 자요."


걱정과 달리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길은 도로 상태가 괜찮았고, 무사히 주차를 하고 나니 미자 언니의 메시지가 보였다. 


"다들 잘 간 것임?"


"네, 저도 잘 도착했어요. 오늘 고마웠어요. 언니."


"다들 잘 자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파티였어요." 


단톡방은 서로 감사 인사를 나누느라 훈훈하게 느껴졌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파티도 마니또 게임도 즐거웠고, 눈 덮인 미자 언니네 동네를 빠져나온 경험도 특이했고, 나는 아마 올해 크리스마스를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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