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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Sep 20. 2024

12. 오늘, 난 주짓수 진짜 하차 할 거야.

그렇게 발짓수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나는 제법 빨라진 몸짓에 자신감이 조금 붙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이렇게 어설프게 자만심이 밀려올 때를 주의해야 하는 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주짓수의 위대함을 모르는 지나가던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덜커덩 선생님 승마장에 놀러 갔을 때, 블루벨트 고등학생을 내가 힘을 실어 누르면 진짜 위험할 것 같단 말에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블루벨트 무시하지 마요."


어쨌든 발짓수에 자신감이 붙어가던 나는 왜소한 고등학생들은 내가 힘으로 살짝 버텨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스파링 파트너가 되면 조금 적극적이 되어 보았다.


특히 나에게 주짓수 기술도 알려주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블루벨트 친구는 몸이 워낙 가볍기도 하고 내가 해보려 하는 기술들을 잘 받아주기도 하고 나를 많이 주기도 해서 편했다.


'원래 모든 운동은 체급 차이를 무시 못하니까 내가 이 친구 공격은 좀 버텨도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던 나는 용기 있게 그 친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공격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일단 내가 적극적이 되니까 그 친구도 점점 힘을 싣게 되었고 힘만 싣는 게 아니라 기술과 스피드까지 싣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주짓수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했던 나는 너무나 방심한 채로 이 친구 앞 매트에 함께 앉은 자세에서 공격을 받아 내보려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현재의 나는 도장에서 누구에게든 잡히면 일단 도망부터 가야 하는 상태란 것을...


우리는 마주 앉은 상태에서 대치했다. 내 왼팔은 매트 바닥을 짚었고 블루벨트 친구는 내 도복 앞 섶을 잡았다. 그냥 그거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친구가 순식간에 물레방아를 돌아버렸다. 나는 무슨 기술인지 상대가 뭘 할 예정인지 파악이 안 된 채로 "아 아 아!"만 외치다가 왼팔 팔꿈치에 내 무게, 상대의 무게, 그리고 상대의 회전력이 다 실려버렸다.


"아!"


진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왔고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왜 팔꿈치에 무게가 실렸는데 뇌가 정지하고 필름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축구 선수들이 몸 싸움하다가 필드에서 못 일어나는 순간처럼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관장님과 주변에 있던 여자 회원 분들이 모두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관장님이 분명 옆에서 물으시는 데도 무전을 치는 것처럼 지지직 거리며 들리는 느낌이었다.


"아... 아..."


팔이 너무 아파서 왼쪽에 피가 통하는지 신경이 살아 있는지 싶어서  왼쪽으로 구부리니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그쪽으로 누우시면 안 돼요."


친절한 3 그랄 고등학생이 얼음팩을 가져다주었다.


"얼음찜질 하세요."


일단 나는 왼팔꿈치를 얼음으로 감싸고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했다.


"어떻게 된 건데?"


고등학생 친구들이 블루벨트 친구에게 물었다.


"베림보로 하려고 했는데..."


난 베림보로가 뭔지는 모르겠는 데 스피드에 회전력을 더하니 죽을 맛이라는 건 알게 되었다. 갑자기 덜커덩 선생님의 무전이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블루벨트 무시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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