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혹시 공격하실 때 공격을 좀 천천히 해주실 수 있나요? 날쌔셔서 움직임이 잘 예측되지 않아서요."
팔꿈치 사고 이후 체육관에서 다시 만난 블루벨트 친구에게 말했다.
"공격은 하지 말고 방어만 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관장님이 블루벨트 친구에게 당부했다. 블루벨트 친구는 관장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내게 말했다.
"탭을 치실 때는 바닥 치지 마시고 제가 느낄 수 있게 제 몸을 쳐주세요."
탭은 주짓수에서 상대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항복의 의미로 바닥이나 상대의 몸을 탁탁 치는 것을 말하는데 내가 바닥을 쳤을 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까 봐 블루벨트 친구는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어쨌든 그 후로 나는 블루벨트 친구의 몸을 탁탁 두드리며 빨리빨리 항복했다. 평소 불편한 감정을 꾹 참기만 하고 아프다는 말을 잘 못하는 내게 조금만 아파도 탭을 친다는 건 엄살을 부리는 것 같아 너무도 어색했지만, 관절이 어느 정도의 통증에 부서지는 지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바로 탭을 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는 걸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것도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것도 주짓수 수련의 긍정적인 면인 것 같았다.
나는 탭은 누구보다 빠르게 빛과 같은 속도로 치면서 어떻게든 남은 2달을 잘 버텨볼 요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다시 위기가 찾아온 건 더블 레그 테이크다운을 배울 때의 일이었다. 더블 레그 테이크 다운은 앉아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상대의 두 다리를 동시에 잡아 들어 뒤로 넘어뜨리는 기술을 말한다.
이 날 나는 늘 같이 연습하던 블루벨트 친구 대신 4 그랄 고등학생 친구와 짝이 되었다. 4 그랄 고등학생 친구와는 합을 많이 맞춰보지 않아서 살짝 걱정이 됐지만, 탭만 잘 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관장님의 시범과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기술 연습을 했다. 주짓수는 기술이 걸려서 한 번 넘어가는 느낌을 알아야 공격할 때 기술을 올바르게 걸 수 있어서 잘하는 사람이 먼저 공격을 하는 게 초보자가 배우기 편하다.
4 그랄 고등학생 친구가 먼저 내 발목을 잡고 내 허벅지에 다리를 걸고 나를 뒤로 내동댕이 쳤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순간 나는 중심을 잃고 뒤통수를 바닥에 세게 박았다.
퍽 소리가 나게 너무 세게 박아서 뇌 세포의 반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살면서 이렇게 세게 머리를 박은 건 처음이었고, 잠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낙마하는 게 이런 기분인 건가?'
아직 낙마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주짓수 도장에서 낙마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이야.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세게 박은 머리는 괜찮을지 걱정이 됐다.
'이 정도면 헬멧을 쓰고 주짓수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하는 사이 관장님이 오셨다.
"괜찮으시죠? 뒤로 넘어지실 때는 배꼽을 보세요. 그래야 머리가 안 다쳐요."
그 뒤로 난 뒤로 떨어질 때마다 배꼽은 꼭 보면서 떨어졌고, 관장님은 내게 꼭 블루벨트 친구를 파트너로 붙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