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종족을 만나고 싶으면 삼의악으로

by 김용희

나는 제주에 산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사는 사람이지만 조금 특별한 취미가 있다면 걷기를 좀 좋아한다는 것. 시간을 쪼개서 이것저것 도전하고 있는 나에게 걷기는 작지만 소소한 취미이다.

처음부터 걷기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고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직업의 특성상 허리와 골반을 보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걷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의자에만 앉아 있으면 몸이 너무 뻐근하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는 나 말고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 희 언니가 산다. 어느 날 나는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희 언니와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언니에게 불쑥 질문을 건넸다.

"언니, 이 동네에는 그늘 없어요?"


"그늘? 그늘은 갑자기 왜..."


"저 길을 잘 몰라서 인도로 걸어 다니는 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요. 육지*에는 동네 뒷산도 많잖아요. 여기서는 한라산밖에 모르는 데 한라산은 큰맘 먹고 가야 하니까요. 어디 동산이나 산길 같은 데 아시는 데 없죠?"


"아 진짜? 자기 몰랐어? 여기 삼의악 좋아."


"아 진짜요? 전에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자주 등산복을 입고 길을 나서시기에 어디로 가시냐고 물어보니 삼의악에 간다고 했었는데. 근데 거기 찾기 어렵잖아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주소가 안 나와서 못 갔어요."


“왜 안 나와?"


"잘 모르겠어요."


언니는 재빠르게 포털사이트를 검색했다.


"자기야 이거 봐봐. 삼의악이라고 치면 안 되고 세미양으로 쳐야 나와."


"삼의악을 왜 세미양으로 부른대요? 도민**들은 다 삼의악으로 부르는데."


그렇게 말하며 나도 핸드폰을 열어서 세미양오름을 검색했다.


"뭐야. 제주 오름 현지인 명소? 나 빼고 다 아는 곳인 거예요?"


"하하하. 일단 자기야 나랑 한 번 가. 삼의악으로."


삼의악오름 입구는 두 군데가 있는데 오늘 희 언니와 나는 <제주시 아라일동 6-62>로 향했다. 이곳은 정상 코스로 한라산의 탁 트인 전망이 매력적인 곳이다. 주소에 도착하면 삼의악 소개 푯말이 있는데 역시 찾기 힘든 곳답게 불리는 이름이 너무 많다. 이름 소개만 하다 푯말이 끝난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자면


「 정상에서 샘이 솟아 나와 '새미오름',

한자의 음을 빌려 '삼의양오름',

사모관대 모양이라 하여 ‘삼의악’

탐라순력도에는 '삼의양악',

제주삼읍총지도에는 '삼매양악',

그 밖에도 '삼양봉', '사미악' 등으로 불렸다.」라고 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맞는 건지 아리송한 이 푯말에 쓰여 있는 오름소개처럼 역시 삼의악은 찾기 힘든 곳답다.


삼의악 초입은 가파르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면서 걷기는 어렵다. 정상까지 가야 걷기 완만한 공간이 나온다. 나는 숨은 찼지만, 희 언니와 함께 걷는 게 상당히 즐겁단 걸 깨달았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걸으면 힘들진 않은지 지금 몸의 컨디션이 어떤지 자꾸 확인하면서 걸어야 하는데 언니와 나는 걷는 속도와 강도가 아주 잘 맞아서 체력적으로 잘 맞았다.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언니와 자주 만나서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우리 여기 앉을까?"


"네. 좋아요."


"여기 정상에서 뒤쪽으로는 함덕 서우봉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자기야 한 번 둘러봐 경치 정말 좋지?"


"그러네요. 시야가 탁 트여서 가슴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아요. 잠깐 여기서 한라산 멍 좀 때리고 가야겠어요."


언니와 나는 서로 말없이 경치를 감상했다. 앉아 있던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가슴속으로 상쾌한 공기를 흠뻑 밀어 넣었다. 한참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렇게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눈앞에 펼쳐진 큰 한라산이 나에게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여기 너무 좋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여기 정말 좋아. 나는 되게 자주와."


"언니 그거 알아요? 봄 한라산은 아래쪽부터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거요. 저는 온 산이 같은 계절에는 한 번에 다 같은 색으로 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한라산을 자주 보다 보니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맞아. 그렇지. 가을은 산에서부터 봄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되잖아. 그러니까 봄은 산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거야."


그렇게 언니와 한라산을 보며 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개가 덫에 걸려서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놀란 내가 언니한테 물었다.


"모르겠어. 나도 처음 듣는 소린데? 뭐지?"


숲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희 언니와 나는 혹시라도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을까 봐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언니 여기 괜찮은 거 맞아요? 너무 무서워요."


"그러게. 들개인가? 어쩌지? 요즘 들개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


나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 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그 소리는 개인 것도 같고 큰 새인 것도 같은 소리인데 좀 두껍고 탁했으며, 낮지만 큰 소리였다. 잘 들어보니 무언가 다급함이 있는 소리여서 우리가 습격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언니와 나는 용기를 내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짐승이 덫에 걸린 게 맞는다면 구해줘야 할 것 같은 어떤 다급함도 전해졌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다행히도 지나가던 등산객 아저씨가 나타났다. 야생동물이라면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그분도 무슨 소리인지 자못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옆에 있는 벤치에 올라가 삼의악 아래쪽을 계속 살폈다. 이윽고 아저씨는 떨고 있는 우리를 향해 외쳤다.


"별건 아니고 저기 노루가 새끼들을 찾고 있네요."


"네? 이게 노루 소리예요?"


"네. 노루 맞아요. 저기 보세요. 아래쪽에 새끼들이 엄마 노루를 따라가는 게 보이잖아요. 새끼들이 없어져서 어미가 새끼를 찾는 소리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자면 애들이 산 어딘가로 사라져서 엄마 노루가 부랴부랴 새끼를 찾았던 거고 내가 들은 건 행방이 묘연한 새끼를 찾는 엄마 노루의 울음소리였던 것이다.


"휴. 다행이다. 노루라니."


희 언니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옆에 있는 아저씨를 향해 외쳤다.


"우리는 들개가 덫에 걸린 소리인 줄 알았지, 뭐예요. 그나저나 노루 목소리 참 특이하네요."


"네. 그러네요. 저도 노루 소리는 처음 들어 봐요."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IMG_3604.jpg 삼의악 정상


삼의악의 두 번째 입구는 완만한 경사가 있는 관음사 코스이다. 두 번째 입구를 찾으려면 <제주시 아라일동 산 67-4>에 주차하고 숲으로 향하는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관음사 코스는 좀 으슥하긴 하지만 전체가 1시간 반으로 부담이 없고 한 번 들어가면 걷기 싫어도 돌아 나오기가 어려워 강제로 운동이 되는 코스이다. 한마디로 이곳을 표현하자면 걷기에 완만하면서 그만 걷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 한번 들어가면 자동으로 원하는 만큼의 운동량을 채울 수 있는 곳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점이 좋아 혼자서도 관음사 코스를 많이 찾았다. 하지만 문제는 운동하기 정말 좋은 데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 낮에 이 숲은 진짜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가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숲이 아주 커서 드물게 사람들과 마주칠 뿐이고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에 감히 혼자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야. 거기 혼자 가면 위험해. 아무도 없단 말이야. 저번에 나는 조릿대 밭쪽으로 들어갔다가 길도 잃었었어."


희 언니는 걱정하며 나에게 조언했지만 나는 하루 종일 의자에 눌린 허리가 아주 잘 풀리는 관음사 코스의 시원함을 잊지 못하고 계속 찾아갔다. 가고 싶을 때마다 언제나 언니와 함께 다니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기 때문에 그냥 혼자서 숲으로 들어갔다.


한 번은 나도 색다른 길을 가보고 싶어서 평소 다니던 길에서 살짝 옆길로 들어가 보았는데, 갈수록 숲이 깊어지고 길이 없어져서 결국 눈앞에 딱 걸려 있는 대형 거미줄을 보고 돌아 나온 적이 있다. 마침 핸드폰 배터리도 간당간당하던 순간이라니. 심장이 쫄깃했다. 그때 알았다. 산길에서는 잡초가 무성한 길은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사람이 많이 다니면 저절로 잡초가 없어지니까 산에서는 무조건 잡초가 무성한 길은 피하고 봐야 한다.


길을 걷고 있는데 길 아래 절벽을 타고 무언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말의 움직임처럼 보이는 데 말보다는 가벼운 발걸음이라서 본능적으로 노루라는 걸 알았다.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절벽에서 멈췄고 또 한 마리는 절벽 끝까지 절벽이 끝나서 멈췄다.


'뭐야. 쟤들 때문에 그렇게 어미 노루가 소리를 지른 거였어? 쟤들 길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절벽 앞에 멈춰있는 새끼 노루의 뒷모습이 보았다.


「길 없음. 주의」


아래쪽에 노루를 위한 표지판을 하나 세워야겠다.




오늘도 삼의악에서 긴장하며 홀로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서 갑자기 노루와 마주쳤다. 이번 노루의 모습은 아기 노루 같지는 않고 청소년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그 아이도 나처럼 예상치 못한 동물을 만나게 되어 어리둥절한 것처럼 보였다. 노루가 길 한가운데를 딱 막고 서 있는데 나도 이렇게 정면으로 노루를 만나 본 적이 없어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우리 둘 사이에는 잠시 묘한 정적이 흘렀다.

노루와 만나기

'여기 외길인데 노루야? 거기 사람 다니는 길이야.'

바닥에는 야자수 매트가 깔려 있었고 다른 길로 들어가면 또 길을 잃을 수 있어서 내가 다른 길을 택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마 노련한 성인 노루였다면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란 걸 미리 알고 피했겠지만, 이 녀석은 청소년이라 거기가 인간이 다니는 길이란 사실을 모른 것 같다.


'하긴 노루에게는 다 같은 숲이겠지. 인간이 다니는 길이 무슨 상관이람.'


일단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특별히 다른 종족을 이렇게 만나게 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얘네 집에 내가 들어온 거니까 내가 비켜서 기다려야 하나? 인간이 다니는 길이니까 좀 비켜 달라고 해야 하나?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긴 하지만 결국 동물이고 지구상에 함께 사는 동물 중 한 종족으로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과 접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만남은 경계 모드가 발동된다. 혼자 숲에 있기 때문에 눈앞의 노루가 착한 종족임을 알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엄습한다. 이 아이는 인간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긴장하고 있는 홀로 있는 숲에서 다른 종족을 만나는 경험이 처음인 나는 온 신경이 노루에게로 쏠렸다.


'대체 저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도 정말 모르겠다.'


또 다른 내 마음 한편에는 현대 문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까닭에 처음 본 노루의 신비함에 넋이 나가는 것 같았다.


'이게 말이 돼? 노루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이건 마치 동화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잖아.'


나보다 조금 겁이 많았던 노루가 먼저 숲 쪽으로 몸을 숨기자,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인증사진을 찍었다. 노루가 도망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조심.



*육지: 제주도에서 현지인들이 쓰는 말로 대한민국 본토를 이르는 말

**도민: 제주도에서 현지인들이 현지인을 이르는 말, 주민이나 시민이란 말 대신 이 단어를 사용함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 노꼬메 오름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