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봉은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제주 10경 가운데 하나로 제주국제공항으로부터 5.2km,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다. 제주를 곧 떠나야 하는데, 자연을 끝까지 마음에 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사라봉에 방문하면 좋다. 사라봉에서 산을 볼 수 있고 별도봉에서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제주를 떠나기 전 산과 바다를 모두 눈에 담가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특별함을 준다.
나는 한때 제주에 이사 오고 싶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마다 사라봉에 들르곤 했다. 아직 도민이 되지 못했을 때 사라봉에 가면 내가 마치 제주 도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쉬워서 좋았다. 사라봉 정상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운동하다 보면 나도 곧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고, 그런 과거의 강력한 상상력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오늘의 나는 이주에 성공해서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
사라봉을 둘러보려면 <제주시 사라봉동 길 30> 우당도서관 앞에 주차하는 게 가장 편하다. 주차장이 비교적 넉넉해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우당도서관 앞에 주차하고 나면, 사라봉 쪽으로 잠시 걸어 오르다가 <사라봉 공원 안내도> 밑에서 별도봉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면 손쉽게 사라봉을 둘러볼 수 있다. 사라봉에서 별도봉으로 가는 것보다 별도봉에서 사라봉으로 가는 게 경사가 심하지 않아 조금 더 편하게 느껴진다.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야자수 매트가 깔린 푹신푹신한 나무 그늘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시원한 공기와 나무 향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또한 주변에 제주대학교 사라캠퍼스와 오현고등학교가 있어서 관광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경 때문에 내가 진짜 제주 도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도민의 향기에 취해 별도봉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 꽃의 향기와 짙어지는 나무 그늘, 새들의 지저귐과 냇가에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런저런 평화로운 풍경들에 빠져 행복하다고 느낄 때쯤 느닷없이 일본군 진지가 나온다. 제주 곳곳에 새겨진 이 진지들은 여행하다가 문득 무거운 마음을 선사하곤 하는 데,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해서 반성과 교훈으로 새기는 여행가들도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길을 걸을 때는 왼쪽을 절대로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빠르게 통과하길 추천한다. 이 길에서는 걷다가 왼쪽을 돌아보면 안내 표지판과 함께 너무 가슴 아픈 과거를 알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봉을 오르는 데 어떤 사람이 말을 건넨다.
"이 바위가 무슨 바위게요?"
"애기 업은 돌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맞아요. 아래쪽은 뭐게요?"
"글쎄요? 엄마바위?"
"노노. 자살바위라고요."
"네? 진짜예요?"
"여기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
“Oh, no.”
나는 그 이후로 이곳을 통과할 때면 너무 무거운 분위기에 젖고 싶지 않아서 아래쪽을 보지 않고 또 빠르게 통과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라봉 정상에는 토끼 가족이 산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 사라봉에서 토끼를 만난 건 3년 전 봄이었다. 사라봉을 즐겁게 오르고 있는데 느닷없이 뭔가 작고 귀엽고 하얀 동그라미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토끼 같은데 내가 잘 못 봤나?'
사라봉에 토끼가 사는 게 현실이 아닌 것 같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그만 토끼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아니,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느닷없는 토끼 공격에 정신이 혼미할 때쯤 몇 마리가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아 심하게 귀여워. 이러면 심장에 해롭잖아.'
나는 본능적으로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신나게 토끼를 촬영했다.
'얘들 여기서 잘 살 수 있는 거 맞아?'
사라봉을 내려오며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혹시 얼어 죽는 거 아닐까?'
그로부터 3년 동안 나는 사라봉을 찾을 때면 토끼가 잘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내 생각과 다르게 겨울에도 토끼들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다.
'정말 잘살고 있잖아?'
주변을 돌아보니 사라봉 정상에는 초록색 풀이 많아 먹을 게 풍부하고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와 그 옆으로 돌로 쌓아져 있는 건축물이 있는데, 이곳 어딘가를 토끼 굴로 활용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사라봉이 얘들 살기 적절한 걸 다 갖추고 있나 보네.'
나는 겨울에도 사라봉 정상에서 토끼가 안전하다는 걸 깨닫고 그때부터 안심하기 시작했다.
토끼가 왜 사라봉 정상에 살고 있는지는 도민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어느 날 나의 절친이자 제주 토박이인 민이 나에게 말했다.
“용희, 사라봉에 토끼 살아. 너 알고 있어?”
“어. 너도 봤어? 걔들 너무 귀엽지?”
“응. 너무 귀여워서 기절할 뻔했어.”
“근데 왜 토끼가 거기 사는 거야?”
나는 제주를 잘 아는 민은 토끼가 왜 거기 사는지 알 거로 생각했다. 평소 사라봉에 많은 추억이 있다고 말했었던 민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우당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몸이 좀 뻐근해지면 사라봉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별도봉을 따라 하늘의 별을 보며 집으로 왔다고 했다. 그때 별똥별도 참 많이 봤다고. 별똥별을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데 그때 취업을 간절히 바라던 민의 소원도 이루어졌다고 했다.
“토끼가 왜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민이 잠시 머뭇거리다 외지인인 내게 제주를 잘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게 미안한 듯 말했다.
“뭐, 토끼가 거기에 왜 살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토끼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사라봉에는 토끼가 먹을 게 풍부한 것 같아. 토끼가 겨울에 죽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따뜻해서 그런지 3년째 잘살고 있더라고.”
나는 내게 제주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친구 민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여러 설명을 덧붙였다.
어느 날 나는 희 언니와 함께 운동 겸 여행 겸 사라봉을 찾았다.
"아, 맞다. 언니 여기 사라봉 정상에 토끼 사는 거 알아요?"
"여기 토끼가 살아?"
"네 정상에 가면 토끼가 있어요. 진짜 귀여워요. 온 김에 우리 구경하고 가요."
나는 언니와 함께 사라봉 정상으로 향했다.
"나는 정상까지는 처음인데, 생각보다는 좀 걷네."
언니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도 그리 많이 올라가지는 않아요. 조금만 더 가면 귀여운 토끼가 나올 거예요."
우리는 사라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 멀리 보이는 멋진 제주항 사진도 찍고, 풀숲으로 고개를 숙이며 도망가는 꿩도 보면서 천천히 사라봉을 올랐다. 정상에서 만날 새하얗고 귀여운 토끼가 뛰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정상에 올라가니 오늘따라 토끼가 안 보였다.
"뭐야? 오늘은 토끼가 없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리저리 토끼를 찾아다녔다.
"자기야, 토끼들 이제 다 죽은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제가 3년이나 봤는데요. 아마 저쪽 돌로 된 건축물 주변으로 가면 많이 있을 거예요. 거기가 토끼들 집이거든요."
나는 희 언니를 돌로 된 건축물 쪽으로 안내했다. 큰 건축물을 한 바퀴 돌아 역기 운동기구가 있는 곳 앞에서 우리는 발길을 멈췄다.
"자기야, 저기 토끼 있다."
"거 봐요. 언니 제가 토끼 죽지 않고 있다고 했잖아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악. 뭐야."
그곳에는 운동기구 밑으로 회색과 흰색의 가로줄무늬가 있는 거대한 토끼 한 마리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쟤 진짜 큰데, 호랑이 같아."
"그 그러게요. 혼자 만나면 무 무서울 뻔했네요."
나는 거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토끼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쟤가 이 구역 대장인가 봐. 혹시 쟤가 다른 애들 다 잡아먹은 건 아니겠지? 호랑이 토끼다. 호랑이 토끼."
"토끼는 초식동물이니까 쟤가 다 잡아먹은 건 아닐 거예요. 그래도 토끼의 영양상태가 이리 좋은 걸 보니 역시 사라봉은 토끼가 살기 좋은 곳 맞네요."
우린 그렇게 아직도 잘살고 있는 사라봉 토끼의 생사를 확인하고 사라봉을 내려왔다.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사라봉동길 30
우당도서관 앞 주차 편한 사라봉
오늘은 어떤 토끼가 나와 있을지 아무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