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탉 찾아 도두봉

by 김용희

어느 날 운명처럼 한라도서관에서 일하는 지인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지금 책 만들기 수업 수강생을 홈페이지에서 모집하고 있어요. 용희 씨도 신청가능한데 어쩌면 필요할지 몰라서 보내요.”


링크를 살펴보니 글은 쓰고 있지만 책 만드는 법을 모르는 내게 꼭 필요한 교육 같았다. 설명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당신만의 책 만들기>

언젠가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는 꿈을 갖고 계신 분

평범한 일상에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보고 싶은 분

글, 그림, 사진 등 SNS에 보관만 해오던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분


‘머야. 딱 내게 필요한 교육이잖아.’


나는 바로 지인에게 답장을 보냈다.


“저 갈게요. 신청했어요.”


수업은 한라도서관에서 열렸고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진행되었다. 나는 도서관 교육에서 책 만들기 선생님인 S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힘든 시절 매일 먹던 빵 하나가 많은 위안이 되어 닉네임을 지었다고 하셨다. 첫 수업이 끝나고 기획서 작성 숙제를 내주셨는데 인터넷 카페에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책 기획서를 올리라고 하셨다. 이때까지 책 콘셉트이나 기획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어떻게 적을까?’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되든 안 되든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기획안에 대한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1. 이 책을 왜 만들고 싶은가

- 갑자기 신기한 동물을 만나거나 특이한 경험을 하는 제주 여행지 추천 책

- 식상한 여행지 말고 진짜로 가면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을

주소 정보와 함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2. 어떤 형식의 책을 만들 것인가? 책의 주제는?

- 에세이 형식 짧은 글+ 여행지 주소+ 사진으로 구성된 제주 관련 콘텐츠책

- 주제: 제주 소개


3. 내 책의 특징은?

- 감성이 부족한 여행정보지에 감성 한 스푼 더하기.

- 투박하지만 유머러스한 제주감성이 담긴 책

- 구성: 여행지와 관련한 에세이 + 찾아가기 주소 + 관련 사진 + 짧은 시 한 편 선물

(부족한 부분 수업에서 개선)

이윽고 다음 월요일이 되었고 수업시간에 기획안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 책은 뜻밖의 장소에서 야생동물을 만나거나 특별한 경험을 했던 관광지의 이야기를 에세이를 쓰고 다음에 만난 장소에 대한 소개를 쓰고요. 주소를 적어서 독자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만드는 여행가이드 책입니다. 다른 여행 책을 보면 정보만 많아서 글을 읽는 재미는 없잖아요. 그래서 장소와 관련한 짧은 에세이와 사진을 담아서 유머러스하게 만들면 제주의 관광지 소개하기에도 좋고 독자들도 읽으면서 재밌지 않을까 했어요. 관광객들도 제주에 왔다가 비싼 굿즈 대신 이 책을 사갈 수도 있고요. 예를 들면 제가 노루를 만난 곳은 삼의악인데 그때의 느낌을 에세이로 쓰고 삼의악 주소를 쓰고 노루 사진 위에다 ‘오늘은 못 만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써보는 거죠.”


발표가 좀 특이했는지 사람들이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 종이를 넘기며 발표를 이어갔다.


“여기는 사라봉이고요. 이렇게 토끼가 뛰어다니는 사진을 넣고 사라봉 소개를 넣고요. 여기는 거문오름인데 달팽이를 만난 사진을 넣고 주소를 적고요. 위에는 ‘비 안 오면 달팽이 쉼’ 이런 식으로 좀 재밌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하하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이디어를 꽤나 흥미 있어했다.


“좋은데요? 재밌는 책이 나올 것 같아요.”

S선생님이 말했다.


“정말요? 근데 이제는 아이디어가 고갈되었어요. 우연히 동물을 만나는 콘셉트인데 어떤 동물을 만나면 좋을 까요? 동물 취재를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여러분들 혹시 추천장소 있으시면 좀 추천해 주세요."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도두봉에 가면 닭이 있어요.”


도두봉에 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도두봉으로 갔다. 일단 주차장에 주차하고 어느 쪽으로 오르면 닭을 볼 수 있는 지를 검색했다. 하지만 포털사이트를 아무리 검색해도 도두봉에 닭이 있다는 말만 있지 도두봉 어디쯤 닭이 있는지는 찾지 못했다. 정상까지는 높지 않다는 건 알아서 올라가는 데 부담은 없었지만 여기서 닭을 찾는다는 게 좀 막막했다.


‘방법도 없고 그냥 일단 올라가 보지 뭐.’


나는 닭을 찾으러 왔지 벚꽃을 보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벚꽃이 만개한 시점이라 벚꽃을 구경했다. 오늘 도두봉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날씨도 좋고 맑은 하늘이 예쁜 날이라 닭을 못 찾아도 사진은 잘 나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도두봉은 햇살과 바람이 좋았고 연인들, 친구들이 함께 여행하고 있어서 분위기도 좋았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자니 마음까지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한쪽에는 탁 트인 바다와 반대편에는 커다란 한라산이 나를 반겼다.


‘한라산을 지나는 비행기 사진을 찍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들고 한라산을 맘껏 찍었다. 파란 하늘 탁 트인 한라산 뷰, 벚꽃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 맞다. 키세스존 사진도 찍으면 멋진데.’


전에 개인적으로 도두봉에 왔을 때는 책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키세스존에 나를 크게 넣어서 찍었었다.


‘저번에 찍은 사진은 못 쓸 것 같고 온 김에 키세스존도 찍어 놔야겠다.’


키세스존은 도두봉에 있는 사진명소로 우리가 흔히 아는 초콜릿 모양의 돈나무 굴이 있는 곳이다. 많은 연인들이 이곳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다.


‘사람들은 알까? 이 나무가 돈 나무 인 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키세스 존 앞에 줄을 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줄 서 있는데 나 혼자 줄 서서 기다린 다음 나무만 찍는 게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2명씩 여행하기 때문에 사진 찍을 사람도 필요했다.

‘어차피 남는 인력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면 뭐 해. 연인들 사진이나 찍어주자.’


“사진 찍어드릴까요?”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앞줄의 연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정말요?”

“네. 저는 어차피 나무 사진만 찍고 가면 돼서 제가 찍어 드릴게요.”


나는 연인들의 모습이 예뻤고 나무가 예뻤고 도두봉의 분위기가 좋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연신 감탄을 했다.

“아 미쳤다. 엄청 예쁘다. 한 번 보세요. 사진 잘 나온 것 같은데 맘에 안 드시면 다시 찍어드릴게요.”

“오 잘 나온 것 같아요. 멋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가죽 재킷을 입은 연인> 한 팀,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 한 팀, <아이 두 명과 함께 온 엄마> 한 팀, <신생아를 안고 여행 온 젊은 부부>한 팀의 사진을 차례로 찍어주었다.

‘설마 나도 사진 잘 찍는 사람인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키세스 존이 너무너무 예뻤고 사람들이 예뻤고 사람들이 사진 멋지다며 감탄해서 더 즐거웠다. 사람들이 만족해하니 내가 마치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혹시 여기서 닭을 보신 적 있으세요?”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닭이요? 닭이 있대요?”

“네. 닭이 산대서 여기 찾으러 왔는데 정상에도 없고 키세스 존에도 없어요.”

나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사람들이 대답했다.


“저희는 못 봤는데요.”

“그 그렇죠. 여기 닭이 있을 곳이 도저히 없어 보이는 데...”


사람들과 인사하고 다시 도두봉 정상에 올라 닭이 있을 만한 곳이 있나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능선 아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쯤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 팀이 내게로 다가왔다.

“사진 감사해요.”

“하하. 뭘요.”

“언니는 어디서 오셨어요?”

“아 저는 도민인데요. 여기 살아요.”

“아 여행 온 게 아니시구나. 근데 언니 왜 닭을 찾아요?”

“책을 쓰고 있는데 닭을 취재하려고요. ‘도두봉에 가면 닭이 나와요.’ 이런 콘셉트예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닭이 안 보이네요.”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은 나를 꽤 흥미 있어했고 나는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방문하면 좋을 듯한 도내 여행지 몇 곳을 소개했다.


“여행 즐겁게 하시고요. 추억 많이 만들고 가요. 저는 이만 닭을 찾아야 해서요. 안녕. 꽃이 많이 피었는데 꽃도 많이 보고 가요.”

웃으면서 헤어졌으나 닭이 어디 있는지 몰라 곧 걱정이 앞섰다.

‘오늘 도두봉에서 닭 찾을 수 있는 거 맞아?’


터덜터덜 내려오는 데 길 옆에 귀여운 <뱀 주의> 표지판이 있었다.

‘아 맞다. 이거. 이거 여기 있었네. 여기저기 찾아다니려 했는데.’


이 표지판을 어디선가 봤었는데 그게 어디인지 생각이 안 나던 차에 도두봉에서 다시 뱀 표지판을 만나니 반가웠다. <뱀 주의> 표지판은 귀여운 뱀이 직접 뱀을 주의하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표지판이다. 제주에는 동물이 직접 자신을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많은데 나는 그 표지판들을 찍어서 책에 실으면 귀여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왠지 이런 사소하고 귀여운 것들이 투박하고 유머러스한 제주의 감성을 잘 보여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직고 있는 데 표지판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는 애완견을 데리고 온 사람들과 동네 산책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닭의 행방을 물었다. 이 주변에 살고 자주 오는 느낌이 나는 분들이라면 도두봉을 익숙하게 알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 우리 여기 매일 오는 데 닭은 본 적이 없는 데? 석굴암에 가면 토끼가 있는 데 거기 가봐요.”


많은 도민들에게 물어봤으나 아무도 몰라서 나는 그렇게 한 참을 표지판 옆에 서 있었다. <뱀 주의> 표지판은 도두봉 중턱에 있는데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나는 바로 이 표지판처럼 산 중턱에 박혔다. 어떻게든 오늘 닭을 만나야 했는데 최선을 다해서 찾아봤으니 이제는 뭐 못 만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몇 명에게 더 물어보고 가자. 아마 오늘은 닭이 없나 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애완견을 데리고 내려가는 사람 뒤에 있는 등산복장을 한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닭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닭이요?”

“네 닭이요.”

“네. 알지요. 저기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도두봉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있어요.”

나는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정말 닭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세요? 아래쪽 입구에 있는 표지판이요? 그리고 그다음에 어디로 가는데요?”

반갑고 막막한 표정의 나를 보고 그분은 말했다.


“음. 그러면 저랑 같이 갑시다. 어차피 운동하러 왔으니까... 같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그렇게 나는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닭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네”라는 대답을 활기차게 하는 분이었다. 어느 책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요청을 할 때 세상을 향해 “네”라고 크고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는 사람은 복을 쉽게 받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분이 그런 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찾으시는 닭은 도두봉 정상에서 도두봉 입구 쪽으로 내려가 도두봉 안내 표지판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능선을 타고 도두봉을 반 바퀴쯤 돌면 나와요. 이쪽으로 가면 돼요.”


“닭이 정말 있는 거예요? 닭 있는 곳을 찾으려면 어떻게 찾으라고 하면 돼요?”


“처음 온 사람들은 여기 무지개 해안가 ‘도두봉 주차장’에 주차하고 도두봉 쪽으로 올라오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돼요. 여기 보면 오른쪽에는 ‘길 없음’ 표지판이 있잖아요. 저기는 길이 진짜로 없으니 들어가면 안 되고 왼쪽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닭이 곧 나와요. 닭은 원래 반경 50m를 넘어가지 않으니 닭이 우리를 찾진 않고 우리가 닭을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조금 걷다 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통통한 수탉이 나왔다.

‘얘는 대체 왜 여기에 살게 되었을까?’

닭 옆으로 밥그릇이 보였다.

수탉은 대체 왜 여기 있을까요?

“여기 밥그릇도 있네요?”

“사람들이 가져다 준거예요. 원래 암탉도 있었는데 암탉이 없어진 뒤로 얘가 영 병든 닭처럼 힘이 없어요. 암탉이 어디로 간 건지 원... ”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안타까운 마음을 계속 표현했지만 나는 수탉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빠르게 사진을 찍었다.


오늘 키세스 존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사진을 선물했지만 평소 사진 실력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간신히 찾은 닭을 잘 못 찍을 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렇지만 수탉은 원래 운동성이 없는 동물인지 아니면 정말 암탉이 사라져서 우울해진 건지 수탉은 움직이지 않고 증명사진 찍듯 꼼짝 않고 그냥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옆에 있는 동백꽃나무와 수탉의 색이 어우러져 좀 키치 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탉을 촬영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어? 이거 뭐야. 여기 왜 닭이 있어?”


그렇게 나는 무사히 수탉 촬영을 마치고 <도두봉에서 만난 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수탉 말고 볼 건 또 뭐가 있어요?”

“저는 항상 이 쪽 무지개 해안으로 걸어 다니는 데 여기 걷기 좋아요. 여기서부터 걸어서 무지개 해안 끝 유명한 돈가스 집까지 걸어가면 걷기 딱 좋지요.”


나는 그와 함께 무지개 해안 쪽으로 나왔다. 무지개 해안은 카페와 식당이 많아 잠시 쉬었다고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카페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아쉬운 대로 길가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기로 했다.


“내가 사줘야 되는데... 커피 감사해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도움 받았으니 당연히 제가 사야죠.”


무지개 해안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나도 무지개 해안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평화로웠다.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닭을 찾으러 왔어요?”

“아, 제가 여행 책을 쓰고 있는데 수탉이 여기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어요. 재미난 관광콘텐츠를 소개하는 책을 쓰려고요.”

“아 그래요? 그럼 여기 무지개 도로도 더 찍어요. 아 참, 저쪽 해안에 보면 새가 많은 데 쟤들은 ‘가마우지’라고 해요.”

“아 쟤들이 ‘가마우지’ 예요? 저 쟤네들 많이 봤는데 이름은 제대로 몰랐어요. 바닷새를 잘 아시네요”

“저는 낚시를 좋아해서요. 일 년에 한 100번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나 봐요.”

“일 년에 100번이요? 그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요?”

“20만 원 정도 들어요.”

“20만 원 내면 100번 태워준다고요?”

“아니오. 한 번에 20만 원이요.”

“네? 그럼 일 년 비용이 얼마야? 그 비용이 다 감당되시는 거예요?”

“그럼요. 그 정도는 젊었을 때 다 벌어 놨지.”


낚시를 즐긴다는 말과 이분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이분이 ‘도두봉에 사는 신선’ 아닌가 싶었다. 정말 신선을 만났다 생각하고 나는 평소 궁금하던 것들을 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이 있잖아요.”

“있죠.”

“그것은 어떻게 키워요?”

“못 키워요. 그냥 자기 그릇대로 사는 거죠.”

“그럼 내 인생이 양념 종지다 하면 양념 종지로 살다 죽는 거예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다 그릇대로 사는 거지 뭐.”

“그러면 사람들이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잘 되면 막 잘난 줄 알고 못되면 막 비굴해지고.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건 절대 안 돼요. 세상이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결국 나는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함께 무지개 해안 끝 돈가스 집까지 갔다.

“여기 돈가스 집도 사진 찍어요. 책에 다 여기서 맛있는 거 먹고 가라고 하면 좋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 많이 오던데.”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책 샘플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어디 가면 뭐가 맛있다는 것도 넣어달라고 하긴 했어요. 근데 돈가스 집을 실으려면 이 돈가스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닐까요? 일일이 가게에 다 물어보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아직 초자라 아는 게 많이 없어요.”

“뭐 주인이 싫어할 리가 있나요? 홍보해 준다고 하면 모두 다 좋아하겠죠. 그리고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안 걸릴 텐데요.”


이 분과 대화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분은 어떤 질문에서도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내뱉기보다는 아예 침묵했다. 나는 그런 점이 이 분을 일 년에 100번이나 낚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걸 거라 생각했다. 좋아하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사람에게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때 ‘생각’은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한 말입니다.

그 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달라지지요.


- 사이토 히토리 『부자의 행동습관』, 152p.


우리는 무지개 해안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근처에는 커피를 마시는 하르방, 머리 위로 손 하트를 한 하르방이 보였다. 하르방을 사진 찍고 싶다는 내게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말했다.


“하르방 손 모양이 다르잖아요. 그런 것도 책에 소개하면 좋을 텐데. 혹시 알고 있어요?”

“하르방이요? 아뇨 그런 건 몰랐었는데요.”

“봐봐요. 여기 찾아보면 나오는 데 왼손이 더 높이 올라간 하르방은 ‘무관’ 오른손이 더 높이 올라간 하르방은 ‘문관’이에요. 문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의미로 한 쌍의 하르방이 늘 함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였군요. 몰랐었는데 알게 돼서 기쁘네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제주투어버스’가 지나갔다.


「수요일 탑승 무료」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헤어지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책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분을 만나지 못했을 텐데. 책을 쓰다 보니 재미난 경험도 하네. 책을 계기로 이렇게 좋은 사람도 만나고. 오늘 참 고맙고 감사했어."


이 날 나는 헤어지면서 이분의 성함과 연락처는 차마 묻지 못했다.

“제주에 오래 계실 거예요?”

용기를 내어 또 뵐 수 있는지 물었다.


“아마 한 3년은 여기에 있을 거예요. 나중에 도두봉에 오시면 아마도 저 있을 거니까 다시 만나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책이 완성되면 도두봉 입구에서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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