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 앞에는 볼거리가 많다. 대학교 앞이 뭐가 볼 게 많을까 싶지만 이곳은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벚꽃이 만개하면 푸드 트럭이나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사람들로 작은 마켓이 열린다. 제대 벚꽃길은 넓고 크고 긴 편이라 이 편에서 저 편으로 크게 한 바퀴 돌면 다양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가 많이 모이더라도 제주대학교 주차장이 워낙 넓어서 주차 걱정은 없어서 좋다. 참고로 제주 도민들은 제주대학교를 ‘제대’라고 줄여서 부른다.
언제부터인가 H 언니와 나는 아침에 만나서 걷기 시작했다. 평일에 각자의 스케줄이 없으면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만나서 함께 걸었다. 처음에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잘 알지 못했었지만 아무도 없는 깜깜한 새벽에 함께 걷고 울고 웃으며 우리는 고등학교 친구들 못지않게 친해지기 시작했다.
H 언니는 사진에 소질이 있는 데 걷다가 예쁘다고 느끼면 풍경사진을 찍었고 나는 걷기가 끝난 후 언니와 이야기하면서 떠오른 영감들을 시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끔 언니는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줬는데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어준다는 게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이었다.
“자기야. 그거 알아? 여기 제대 ★벅스 있는 거?”
“여기에 ★벅스가 있다고요?
“응, 이쪽으로 돌아가면 있어.”
언니를 따라 간 곳은 검은 간판에 빨간 별이 그려진 제대 명소 제대 ★벅스였다.
“오. 여기 이런 데가 있다고요? 저 처음 봤는데.”
“성현언니랑 걸으면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지거든. 저렴하고 커피 맛도 좋아.”
제대 ★벅스는
한 사람이 주문을 받고 포스기에 입력할 때 실시간으로 옆 사람이 바로 커피 두 잔을 만들어 준다.
카드를 긁으면서 점원이 말한다.
“바로 드릴께요.”
주문과 동시에 커피를 받는 제대 ★벅스.
“이게 말이 돼? 주문과 동시에 커피가 나와.”
“여기 엄청 빠르네요.”
제주에서 노루만큼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은 꿩으로 얘들은 정말 여기저기 산다. 어디서 자주 나오는지는 정확히 말해주기 어렵고 그냥 제주의 길을 걷다 보면 들판 어딘가에서 뭔가 무거운 것이 푸드덕하고 날아간다. 움직임이 있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꿩이다.
나는 꿩이 좀 웃기다고 생각되는 게 멀리 날지도 못하는데 소리만 시끄럽다. 둔탁한 게 팍 날아가서 자세히 보면 꿩이고 사람이 뛰어가는 것처럼 뛰기 때문에 어디서든 묵직하게 존재감이 크다. 풀숲으로 도망가면 목을 쑥 넣고 나름대로 잘 숨어 있는 데 사람의 눈으로 찾으면 어디 있는지 금방 알지만 사진을 찍으려 하면 풀 숲과 섞여버려 분간이 어렵다.
꿩은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져 정원에 날아들면 재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만날 때마다 큰 웃음을 줘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길을 걷는 데 귤 밭에서
“꿩 꿔거 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설마 꿩의 울음소리가 <꿩 꿔거 겅> 이겠어?’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꿩이 울고 있었다.
‘얘 설마 울음소리가 꿩이라서 이름도 꿩인 거야?’
나는 재빨리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봤다.
‘뭐야 맞잖아? <꿩 울음소리가 꿩이라 이름도 꿩>인 게. 얘 진짜 뭐야?’
이후 H 언니와 아침 걷기에서 난 또 <꿩 꿔거 겅> 소리를 들었다.
“언니 저 소리 뭔지 알아요? 저게 꿩 울음소리예요.”
말하자마자 보란 듯이 꿩 두 마리가 귤 밭을 가로질러 호기롭게 조금 날아 옆 보리밭으로 들어가 숨었다.
언니가 말했다.
“난 쟤들 웃겨 죽겠어. 가만히 있으면 못 찾을 텐데. 저렇게 큰 소리를 내고 달려서 조금밖에 못 날아가니까 꼭 나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잖아.”
“맞아요. 가만있으면 오히려 못 찾을 텐데 도망가다가 더 티나요. 가끔은 너무 우렁찬 소리에 멍하게 가다가 더 놀란다니까요. 아 언니 그거 알아요? 꿩은 한 방향으로만 다닌대요.”
“진짜야?”
“네. 그래서 잡기 쉽대요. 어떤 책에서 봤어요.”
꿩은 늘 같은 길만 다니고 뒷걸음질은 모른 채 오로지 직진만 한다.
어제 지났던 길을 오늘도 당연한 듯 지난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은 철사 두 가닥을 꿩이 지나는 길에 머리 높이쯤 걸어 놓고 기다린다.
반나절 정도 기다리면 열에 두세 번은 꿩이 걸린다.
- 『제주식탁』 양용진, 60p.
참고로 꿩은 기분에 따라 <꿩 꿔거 겅>하고 울기도 하고 <꿩~ 꿩~>하고 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