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산오름에 사는 딱따구리

by 김용희

“자기야, 저 쪽으로 가봤어? 저 쪽에 편백나무 숲이 있는데 평상이 많아서 잠시 휴식하기 좋아. 사람들 많이 오더라. 나중에 저기도 가자”

언니는 삼의악 오름의 관음사 코스 맞은편 길을 가리켰다.


“저기 가면 사람들 맨발 걷기 많이 해. 신발 벗고 많이 걸어.”

“맨발로 걷는 다고요?”

“응. 자기 맨발 걷기 해 봤어? 난 안 해 봐서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어.”

“저도 걸어 본 적은 없는데요. 전에 몇 번 맨발로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본 적은 있어요.”

“신문에서 봤는데 맨발로 걸으면 면역력이 좋아진다는 데?”

“진짜예요? 저는 발바닥이 시원해서 좋을 것 같은데...”


삼의악오름에 혼자 들어가는 게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차라리 사람이 많은 건너편 소산오름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소산오름으로 가보지, 뭐.

소산오름으로 들어간 나는 생각보다는 아늑함이 느껴져서 놀랐다.


‘머야. 이런 데가 있었어? 사람이 많아서 혼자 걸어도 위험하진 않겠는데?’


나는 안내 표지판을 읽어 보았다.


<소산오름>

(...) 산천단 서측에 위치해 있는 원추형 화산체로 붉은 송이로 구성되어 있고, 오름 전체가 편백나무, 해송, 삼나무, 대나무가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 북동쪽 기슭에는 한라산신단비가 있어 해마다 음력 정월 정일에 이곳에서 산진제를 지내왔으며, 소림천이라는 샘이 있고,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 곰솔 여덟 그루가 19~23m의 높이로 식생한다. (...) 이 오름은 ‘소산봉’이라고도 하는 데 이 오름과 관련되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고려 예종 때 송나라 호종단이 와서 제주에 명산의 모든 혈(穴 풍수지리에서 용맥이 모인 자리)을 질러 버리고 떠나던 날 갑자기 솟아나 한라산의 맥이 다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 이 오름의 명칭인 ‘소산’은 (...) 솟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재미난 오름이네. 산신제도 지낸다고 하고 한라산 맥이 죽지 않음을 과시했다고 하니 뭔가 신성한 느낌도 든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신발을 벗고 걷고 있었고 지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도 반들반들했다. 처음에 나는 선뜻 맨발 걷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몇 번 찾아간 후로 어느 날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많이 밟아서 그런지 돌부리 같은 뾰족한 것들은 없어 보이는데... 나도 한 번 걸어볼까?’

어느 날 부턴가 나는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어 맨발로 걸어보았다.


‘뭐야. 그동안 내가 잘 걷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장비발이었나? 아예 맨발로 걸으려니 하나도 안 걸어지잖아. 나 되게 못 걷는 사람이었네.’


신발을 신고 걸을 때는 내가 꽤나 잘 걷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신발 없이 맨발로 걸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걷고 있는 곳은 한 바퀴가 약 1,000보 되는 곳 같았는데, 평소 신발을 신고 걸을 때는 10바퀴 돌아도 끄떡없었겠지만 신발 없이는 두 바퀴 돌면 쉬어야 했다. 다섯 바퀴 정도 돌고 너무 아파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여운이 강하게 남아 집에서도 내가 돌길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뭔가 시원한 느낌은 들었다.


‘느낌 괜찮은데 다시 가봐야겠다.’


소산오름애 갈 때마다 나는 흙이 주는 포근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발이 시원해서 몸에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이 들었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맨발 걷기를 하면 우리 몸의 활성산호를 밖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뭔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은 시원함이 들어.’


나는 맨발 걷기에 H 언니를 초대했다.


“자기야, 여기 뭔데. 진짜 시원해. 느낌 너무 좋다.”

“그렇죠.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데 기분 좋지 않아요?”


H 언니는 친한 지인 2명을 더 초대했고 나도 지인 2명에게 이곳을 소개했다.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맨발 걷기는 기분 좋고 색다른 경험이라 신기하다고 말했다.


나는 꾸준히 맨발 걷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글이 잘 안 풀리거나 아이디어가 없을 때면 이곳을 찾았다.


“언니 발바닥이 풀리면서 인생이 풀리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네요.”

나는 아침 걷기에서 H 언니를 만나서 말했다.

“왜? 뭐, 자기 좋은 일 있어?”

“뭐라 꼭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책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고 있고 일단 기분이 좋아요.”


오늘도 난 소산오름에서 혼자 걷고 있었다. 이곳은 가끔 관광객들이 발길을 멈추고 들렸다가지만 실제로 맨발 걷기를 해보고 가는 사람은 없다. 산길은 새까만 제주 흙으로 되어 있는데 발에 묻으면 흙이 잘 안 지워져서 나는 관광객들에게 맨발 걷기를 해보라고 권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맨발 걷기 하는 걸 보고 자주 말을 걸었다.

“맨 발로 걸으면 좋아요?”

“네 좋죠. 맨발로 한 번 걸어보세요. 맨땅에 발이 닿으면 좀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맨발로 걸으면 몸에 있는 활성산소도 다 빠져나간다네요.”

가끔 내 말을 듣고 궁금한 마음에 흙을 밟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어디선가 ‘딱딱 딱딱 딱딱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따구리 소리였다. 이곳은 딱따구리가 많이 산다. 실제 모습을 볼 수는 없는 데 어딘가에서 나무 쪼는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딱따구리의 모습을 한 번 보려고 소리가 나는 나무 위를 쳐다보면 딱따구리의 모습은 늘 찾을 수 없다.

‘소리는 가까이서 들리는 데 어디 있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딱따구리의 행적을 찾는다.

볼 때마다 딱따구리를 발견하지는 못했었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어설픈 딱따구리를 만났다.


딱따구리 소리에 오른쪽을 쳐다보니 큰 오색딱따구리 수컷이 먹이를 잡으러 나무를 '톡톡' 두드리면서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었다. 나무에 수직으로 붙어서 나선형으로 올라는 딱따구리는 부지런히 부리로 '톡톡' 나무를 두드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지만 두드릴 때마다 계속 헛방이었다. 불현듯 나는 이 딱따구리를 보고 시 한편이 떠올랐다.


<큰 오색 딱따구리>


큰 오색딱따구리야

너도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오늘도 우리는 헛방이구나


참고로 머리 꼭대기가 붉은 큰 오색딱따구리는 수컷이다.




소산오름 주차는 <제주시 아라일동 산 37-1>에 해야 한다. 가끔 모르고 편백나무 숲으로 차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백이면 백 보험사 레커차에 끌려나간다. 일단 편백나무 숲으로 차를 돌진해 오면 차가 다닐 수는 있는데 외길이고 길이 점점 좁아져 돌려나갈 길이 없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바퀴가 그대로 진흙 속에 파묻히니 주의해야 한다.


「돌진하다가 파묻히면

레커차 아저씨 보기 민망하고

옆에 같이 타고 있던 여행 친구들에게 부끄러울 수 있음 주의

주차는 주차장에」




오늘도 나는 소산오름 주차장에 주차하고 맨발 걷기 하는 곳으로 내려가는 참이었다.

고사리 복장을 한 할머니 두 분이 헐레벌떡 나에게 뛰어오셨다.


“여기 고사리 어디서 따요?”

나는 제주 도민들은 모두 나만 빼고 고사리 따는 곳을 아는 줄 알았는데 신선한 질문에 당황했다.


“저, 여기는 고사리 따는 곳이 아니고 맨발 걷기 하는 곳이에요.”

그제야 할머니들은 서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린 여기 차들이 죽 서 있어서 고사리 따는 곳인 줄 알았어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할머니들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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