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희 님 그거 알아요? 저 노꼬메 오름에 자주 가는데 산 길에서 말이랑 단 둘이 만나기도 해요."
내가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D님이 불쑥 말했다.
"진짜예요?"
"네, 산에서 혼자 말이랑 마주쳤는데 비켜줘야 하나 어떻게야 하나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노꼬메 오름 좋아요?"
"네. 저는 답답할 때 큰 노꼬메 오름에 자주 가거든요. 거기에 가면 세상이 제 발 밑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노꼬메 오름이 높아서 새 들이 발 밑으로 날아다니거든요."
'노꼬메 오름에도 가봐야겠네.'
나는 노꼬메 오름에 한 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큰 노꼬메 오름에 주차하고 입구를 찾아 들어가려는 데 <젊은 연인>이 돌아 나오는 걸 발견했다.
"오늘은 여기 문 안 여나 봐."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위해 젊은 연인은 사무실같이 생긴 작은 건물로 향했고 나는 혼자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엥? 문 열었는데?"
입구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로로 담장이 쳐진 것처럼 보였지만 오른쪽 귀퉁이를 자세히 보니 미로처럼 지그재그로 돌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노꼬메 오름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뒤에 <젊은 연인>이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맞다. 모자 안 가져왔네."
노꼬메 오름은 햇볕이 뜨거웠기에 모자가 필요할 것 같았다.
다시 차로 돌아가는 데 <단란한 가족>이 말을 걸었다.
"여기 얼마나 걸려요?"
내가 아마 등산을 마치고 나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친절하게 입구 앞 안내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면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2.32km라고 나오네요. 아 여기 운동시간은 40분 걸리고 남성은 6,833보 여성은 7,208보가 나온다고 되어 있네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차에 들렸다가 다시 노꼬메 오름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안내된 노꼬메 오름 안내판에는 노꼬메 오름 소개가 쓰여 있었다.
「노꼬메는 분석구(Scoria Cone)로 오름이 갖고 있는 규모, 경사, 분화구 등 제주도에 분포하는 360여 개 오름 중에서 화산지형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오름이다. 노꼬메는 덜어진 두 개의 오름으로 되어 있는데 좀 높고 큰 오름을 '큰노꼬메' 좀 낮고 작은 오름은 '족은노꼬메'라 부른다.
큰노꼬메는 상당한 높이와 가파른 사면을 이루며 남·북 양쪽에 두 개의 봉우리를 품고 있는 큰 화산체로서 북쪽 봉우리가 주봉으로 정상이며, 화구 방향인 북서쪽에 암설류의 소 구릉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는 원형이 화구였던 것이 침식되어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룬 것으로 추측된다.
북동쪽에 위치한 '족은노꼬메'는 경사가 낮고 울창한 자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설마 높진 않겠지?'
약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느낌 탓일거로 생각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한참 가다 보니 먼저 들어갔던 <젊은 연인> 팀과 <단란한 가족> 팀이 모두 길을 찾고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던 <젊은 연인> 팀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단란한 가족은>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초행길이라 그냥 <젊은 연인> 팀을 따라갔다. 한참을 가던 <젊은 연인>은 다시 주차장이 나오는 걸 발견하고 뒤로 돌았다.
"여기 표지판이 없네.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길을 돌아 나와 <단란한 가족> 팀을 만났다. <단란한 가족>은 앱을 켜고 철조망이 쳐진 곳 안쪽으로 들어갔다.
"길이 이 안에 있는 것 같아."
나도 오늘 말을 만나야 했기에 철조망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저기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
젊은 연인팀은 고민하다 등산을 포기하고 내려갔다.
"어머, 여기 고사리 봐. 고사리 천지네."
<단란한 가족>의 어머니가 말했고 나는 고사리 사진을 찍었다.
숲을 헤매던 우리는 곧 다시 철조망 밖으로 나가 <젊은 연인팀>이 도로 내려오던 산길로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리로 올라가면 될 것 같네요."
결국 우리는 입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단란한 가족> 팀은 옆에서 걷고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여기 혼자 오신 거예요?"
"저는 여기 제주에 살고 있어요."
"제주에 사신다고요?"
사람들은 내가 길도 못 찾고 관광객 같았기 때문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저도 사실 오늘 여기 처음 온 거거든요."
<단란한 가족> 팀은 평소에도 트래킹을 많이 하는 사람들 같았다.
오름에 들어서니 먼저 앞으로 가버리고 없었다.
정상까지 600미터 남은 시점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만 돌아갈까?'
큰 노꼬메는 내 생각보다 더 높고 가팔렀다. 입구 안내판에는 정상까지 2.32km라고 했지만 산길 2.32km는 평지와 확연히 달랐다. 체력은 슬슬 한계에 다 달았고, 부러운 마음에 아까 돌아나간 <젊은 연인> 팀의 얼굴이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내려가는 게 옳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절친 M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산에 올라왔는데 정상까지 600미터 남았는데 정상에 올라가는 게 맞겠지?"
곧 답문이 도착했다.
"응응"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평상에 앉아 있는데 정상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
"여기 정상까진 아직 멀었나요?"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뇨. 조금만 가시면 돼요. 한 번 올라가 보세요."
나는 그 말에 힘입어 다시 노꼬메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가니 360° 탁 트인 능선과 함께 한라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큰 노꼬메 오름이 높아 발아래로 벚꽃이 한 창 피어 있었고 까마귀가 내 발 밑으로 날아다녔다.
"여기 뭐야. 이 맛에 정상까지 오는 건가?"
이곳은 용기를 잃고 좌절에 빠진 사람들이 한 번씩 오면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 도시와 오름들이 한눈에 다 내려다 보였고 새들도 발 밑으로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이곳에 우뚝 서면 나도 세상에 좀 더 우뚝 설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주변 사진을 찍으며 정상으로 더 올라갔다.
아까 만났던 <단란한 가족> 팀은 벌써 정상을 살펴보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포기하고 가신 줄 알았어요. 결국 오셨네요."
내가 한참 동안 올라오지 못하자 그냥 내려갔다 보다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정상은 보고 가야죠."
좀 전에 애가 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정상에 섰다는 여유로움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정상에는 표지판이 많았고 친절하게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들의 주변경관의 이름이 적혀있어 좋았다.
'큰 바리메, 비양도, 노로오름, 다래오름 등'
'오늘 그래도 오길 잘했네.'
나는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가다 보면 좋을 결과가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고 산을 내려왔다.
노꼬메 오름은 여기저기 방목 흔적이 많아 D 님의 말대로 오늘은 말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갔던 시간은 말이 어디로 다 가버린 건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는 노꼬메 오름 앞 승마장에서 말 타는 사람을 실컷 구경했다.
안정적으로 말을 타는 사람을 보며 '정말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말 등 위에서 일직선으로 몸을 만들고 사뿐히 흐르듯 움직이는 몸짓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잘 타시네.'
나는 주변에 있는 목장의 말들을 찍었지만 역광이라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장전마을 공동목장> 앞에 섰다. 그곳에서 건강한 말 3마리와 꿩의 무리를 발견했다. 나는 수컷 꿩이 들판에 혼자 다니는 것은 여러 번 목격했으나 꿩의 무리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수컷은 혼자 다니고 암컷은 무리 지어 다니는 건가?'
나는 꿩이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은 처음 보았다. 궁금함에 검색을 해보니 꿩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또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생태계에서는 번식기에 수컷 한 마리에 암컷 몇 마리가 작은 무리를 지으나 겨울에는 암수가 따로 무리를 만든다. 번식기에는 가장 힘세고 나이 든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꿩
'그러니까 지금 이 봄이 꿩들의 번식기란 말이지?'
나는 신기한 꿩 무리의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갔다. 많은 암컷 꿩들이 도망갔지만 한 마리 암컷은 내가 멀리 있다는 걸 눈치채고 까마귀와 담소를 나누었다.
'까마귀와 꿩이 친하네?'
까마귀와 노는 꿩을 구경하고 있는데 멀리서 말 세 마리가 나에게 쓰다듬어 달라는 듯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말의 속도가 너무 빨라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아휴 무서워. 왜 오는 거지?'
길을 지나다 보니 근처에는 '외승을 할 수 있는 마로'가 있었다.
'우와 이건 뭐야. 말을 야외에서 타는 거야? 이런 데서 승마하면 정말 재밌겠다...'
나는 말을 타고 제주 곳곳을 다니면 재밌을 거란 상상을 하고 그곳을 나왔다.
큰 도로로 나와 집으로 달리고 있는데 멋진 말들이 들판에서 놀다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파란 하늘과 주변의 오름, 만개한 벚꽃과 초록의 들판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주변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좋은 사진이 나온 것 같았다. 다시 차를 타고 달리는 길에 목장에 고개를 쏙쏙 내민 새끼 노루들이 보였다.
"노루 같은데? 잘 못 봤나?"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목장으로 뛰어갔다.
멀리 풀을 뜯고 있다가 '잠시 멈춤'이 된 새끼 노루들이 보였다.
"귀엽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