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갈까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기준일까
어른이 되기는 하는 걸까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고민했었다. 일을 하고 경제력이 생길 때, 세상의 모순을 이해할 때, 자신의 이상이 벽에 가로막혀 현실과 타협할 때, 사랑을 경험할 때, 책임질 무언가 생길 때 등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데 기여한 것은 '고통'이다. 다양한 사건의 집합체로 구성되는 삶에 나를 더 어른스럽게 만들어 준 것은 행복이나 열정, 기쁨보다는 고통이었다.
2011년 가을, 10개월에 걸친 첫 연애가 끝나고 3달 뒤 겨울에 부모님이 이혼했다. 이 무렵부터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에서 활동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시작해서 인지 그곳에서는 현실에서 결핍되었던 소속감, 유대감과 같은 정서적인 의존을 크게 했다. 가끔은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고, 들어주기도 했다. 그만큼 회원들 간의 정이 두터웠기 때문에 지친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익하고 재밌었다. 요리, 청소, 패션, 치킨, 가전 등 생활 정보에서부터 정치, 역사, 종교, 과학, 영화 등 다루는 주제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중 고전에서 현대까지 인문 전반에 걸친 추천도서 목록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읽으며 사유로 무지의 껍질에 조금씩 균열을 냈다.
비록 화면 너머로 존재하는 세상이었지만 그곳은 나의 친구이자 가족, 선생님이 되었다. 나 또한 미흡하지만 잘 알고 있는 분야에 관해 게시물을 올리곤 했다. 매번 큰 조회수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다 메르스로 시작해 여성 혐오 범죄로 깊어진 젠더갈등은 카페를 여성 카페로의 전향을 가져왔고 2017년 1월, 남자 회원에 대한 강퇴가 시행되며 나의 카페 활동도 막을 내렸다. 운영회칙에 근거하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대다수 회원들의 돌아선 마음에 납득하고 받아들였다. 아끼고 의지하던 집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상실감이 한동안 나를 집어삼켰지만 내가 강퇴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졸업'한 것이다.
카페는 처음엔 그저 가족의 해체와 이별 극복을 위한 마음의 의탁지였다. 그리고 긴 고통의 시간 속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이 도움될 거란 걸 직감으로 알았다. 가족에 종속되지 않으며, 타인의 부수적인 사람으로 해석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소울드레서는 그에 대한 해답을 간접적으로 제시해줬다. 훌륭한 책과 문장들, 회원들의 결이 다른 삶의 고뇌와 극복 방법은 좋은 참고서가 되었다. 해답을 찾는 과정은 산과 같아서, 결코 한 가지 정답만이 정상처럼 홀로 솟아있을 수는 없었다. 봉우리는 받드는 산맥이 함께 있듯, 해답을 탐구할수록 내면의 깊이와 성숙함도 함께 융기했다. 고통에서 파생된 삶에 대한 고민은 시각을 다각화시키고 생각을 구체화시켰다.
흔들리던 대로 살던 무지랭이가 세상을 알아가고 자신을 탐구하며 자립심을 키웠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올바른 자립심 위에 비로소 쌓여갔다. 카페를 '졸업'한 후에도 책과 삶을 통한 고민하는 힘으로 나만의 지혜를 축적했고, 작게나마 스스로를 등불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찾는 과정을 통해 얻은 고통의 자산이다. 몇 번의 물리적, 정신적 고통이 더 있었지만 농담으로 넘기고 인내로 이겨내며 조금씩 더 온전한 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30대가 되었고 지역 어른들 표현으로 시건이 든 놈, 표준어로는 철 든 놈이 되어있었다. 힘들었던 고통도 견뎌내면 긍정의 양분이 되기도 한다. 내게 어른이란 고통을 이기고 아픔을 중화시켜 그걸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다.
그러니
어른이 되는 순간은 없다.
삶을 탐구하는 과정 속에 어른스러운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어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완성을 거듭하는 단계인 것이다.
항암 방사선 치료엔 암세포 주변 정상세포들까지 함께 죽는다고 한다. 전체의 건강한 유지를 위한 희생처럼, 세상은 완전하지 못해서 가끔씩 불가피한 일도 있는 것이다. 강퇴는 분명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 고통은 독립심의 화분이 되어 내 안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