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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Mar 13. 2016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내가 존중 받으려면 상대를 먼저 존중하자.

존중(尊重)
: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존중,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왔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1분 정도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 자기가 느끼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직무를 행해야 하는 노동을 일컫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직접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다.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 종사자라고 하는데 은행원, 승무원, 그리고 전화상담원이 대표적이다.


나는 오늘도 린나이서비스센터에서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다. 나는 이곳에서 2015년 추석부터 6달째 근무하고 있다.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겠다..' '스트레스 쩔겠다...' '왜 굳이....'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한다. 솔직히 근무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 높은 시급에 식대도 제공해주고 게다가 집에서 자전거 타고 10분 거리라는 메리트가 아니었다면 나도 내 인생의 첫 아르바이트를 여기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는 플로랜스라는 뷔페식당에서 서빙을 하려고 했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더 짧은 근무시간에 비해 월급이 압도적으로 많은 콜센터를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린나이 콜센터에서 하는 일은 보일러, 온수기 A/S 상담이다.(가끔은 가스레인지도 한다.) 보일러나 온수기가 고장 나서 따뜻한 물이 안 나오면 계절에 관계없이 고객들은 짜증이 난다. 게다가 겨울철에 난방까지 안된다면 고객들의 분노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내가 고객의 입장이라도 충분히 짜증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상담원에 대한 고객들의 폭언, 비아냥, 무시 등은 정도가 지나칠 때가 많다. 상담원 그리고 출장기사들까지도 고객들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철저히 을(乙)로 인식하고 막 대하는 고객들이 상당히 많다. 보일러, 온수기라는 특성상 대체로 30대 이상의 어른들, 특히 50대 이상의 어른들이 전화를 하는데 전화받는 상담원이 나처럼 어린 경우에는 대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A/S 절차는 다음과 같다. 내가 일하는 콜센터에 전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상담원이 그 전화를 받고 전화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하고 안되면 전산으로 접수처리를 한다. 그러면 각 지역 담당 기사들이 PDA로 확인하고 고객에게 전화해 약속시간을 잡고 방문을 한다. 증상 진단 및 수리 진행을 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주로 상담원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애초에 언짢은 상태로 전화해 상담원에게 그 화를 푸는 고객들이 있다. 애초에 상담 자체가 잘 진행이 안된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서는 제품 모델명을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고객들은 확인해서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상담이 어렵다고 안내를 해도 애초에 상담원 말을 들을 생각이 없으니 그냥 기사나 보내라고 말한다. 제품 무상기간이 끝나면 출장시 출장비가 발생한다는 것을 안내하면(메뉴얼에 따라 상담원이 반드시 안내해야 한다.) 고객들은 또 항의한다. 와서 보지도 않고 돈 얘기부터 하냐, 출장비고 뭐고 일단 와서 봐라, 뭐 이렇게 비싸냐 등.... 출장비뿐 아니라 전체적인 상담과정에서 감정에 치우쳐서 상담원이 어떤 말을 하든 앞뒤 안 가리고 꼬투리 잡고 물어뜯는 것을 보면 '어른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둘째, 접수는 했는데 앞에 스케줄로 인해 기사 방문이 지연될 때 그 화를 상담원에게 쏟아낸다. 서비스가 원래 이따위냐, 접수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연락하나 없냐, 린나이 믿고 구입했는데 다시는 안 쓰겠다 등...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할까? 싶은 말들을 한다. 특히 앞에 먼저 접수한 고객들이 있는데 자기네 먼저 방문해주면 안 되겠냐고 우기는 고객들이 있다. 당연히 환자, 신생아, 업소 등 긴급한 상황이라면 접수 시 메모를 남겨 놓고 기사님들께서도 우선적으로 방문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알고 있다. 다만 지금 샤워해야 하는데.. 등 단순히 불편해서 먼저 방문해달라고 하는 경우엔 당황스럽기만 한다. 질서를 잘 지키는 것, 순서대로 하는 것은 우리가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 것들인데 말이다. 순서대로 처리하고 최대한 빨리 방문드리겠다고 좋게 말하면 대부분 알겠다고 하나, 그래서 언제 올 거냐 다른 데 갔다가 올 거 아니냐 등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고객이 있으면 조금 강하게 대응한다. 다른 분들도 똑같이 급하고 저희도 순차적으로 방문드리는 게 원칙인데 단순히 고객님께서 불편하시다고 먼저 방문 드릴 수는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한다. 그러면 그냥 끊어버리거나 욕을 하고 끊기도 한다.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썰을 풀기는 조금 부담되는 사항이라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서로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등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고객이 갑, 종사자가 을이 되는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린 나름의 결론이 있었다. 사실 나는 서비스 제공자가 오히려 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서비스 제공자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보일러 상담의 예를 들어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내가 고객보다 보일러 수리, 유지 등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고객이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나는 기꺼이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고객이 물어보지 않았지만 유용한 팁들에 대해서도 알려드릴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상담원을 일개 접수꾼으로 생각하여(한 고객이 반말로 '너는 전화맨아니야?'라고 한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막말을 서슴지 않고 노예 부리듯 대하는 고객에겐 어떠한 서비스도 제공할 마음이 사라진다. 상세한 안내를 하려 해 봤자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화만 낼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바로 기사 방문 신청을 해버린다. 조금 상담하다 보면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더라도 그 상담까지 끌고 갈 이유를 못 느껴 출장비 지불하고 기사에게 A/S 받게끔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러한 고객이 걸렸을 때 최대한 빨리 전화를 끊는 게 목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고객은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을 수 없다. 솔직히 정보가 없으니 내가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했는지 대충 넘어갔는지에 대해 알 도리가 없다. 정보의 비대칭을 고려하면 고객이 충분히 불리하고 오히려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할 경우 고객은 자연스럽게 을(乙)이 된다.


모든 고객이 이러한 것은 아니다. 주말에도 수고 많으시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친절하게 해주시네요, 안되면 또 연락할게요 수고하세요 등의 말 한마디로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고객들도 많다. 진상 고객들로 하루 종일 고생하고 있을 때 한 고객이 마지막에 '복 받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때 다시 에너지를 얻고 열심히 상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위에서 말했듯, 이런 고객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우리 속담은 콜센터에서 일하는 나에게 '인생의 진리'라 생각될 정도로 뼈저리게 실감하는 말이다.


내가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을 똑같이 존중해줘야 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이다. 부모 자식이 아닌 이상,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기부하고 착취까지 당하는 '기부 앤 테이큰'이 돼서는 안된다. 심지어 아주 친한 친구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기브 앤 테이크는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남이나 다름없는 고객과 상담원의 관계에서는 오죽할까. 인간관계에서 이기적인 발상을 하는 것은 곧 관계 잠식의 지름길을 걷는 것과 같다. 단순히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라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존중해야 내가 존중받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만큼 나한테 돌아온다.



2016.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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