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대학 1학년 때 하드디스크가 달린 286 컴퓨터를 처음 사고 모뎀으로 ‘둠(Doom)’이라는 네트워크 게임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군 제대 후 대학 전산실에 대학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와 PC통신 강의를 할 정도였고, 서른 살 무렵에는 학부 졸업임에도 불구하고 2000학번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인터넷비즈니스 강의를 맡을 정도로, 나는 이미 정보기술(IT)의 물결 속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1998년 LG그룹 계열사를 자진 퇴사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세상의 주인공은 당연히 나의 몫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 나는 국내 최초의 개인 맞춤형 타깃 광고 플랫폼을 창업하고, 곧이어 당시 60만 회원의 '마이카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공동으로 운영하고, 인텔사와 보안 랜카드 개발회사를 운영하는 등 혁신적인 아이템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시대의 맥은 제대로 짚지 못했다. ‘웹 1.0’과 ‘벤처 금융’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산업의 형태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지, 10년 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통찰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보 소버린의 변화형태, 데이터 산업구조의 역학관계의 맥을 짚지 못했었다. 결국 벤처 붐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대신, 그 물결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한 채 벤처를 포기하고 다시 대기업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무지의 대가는 길고도 쓰라렸다. 이후 25년 넘게 사업을 이어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아쉬움과 부채감이 남았다. 특별히 더 똑똑하거나 성실해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 성공한 1세대 벤처 기업가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며 뼈아프게 깨달았다. 성공의 결정적 차이는 지식의 양이나 성실함의 정도가 아니라, 변화의 결을 읽어내는 ‘감각’과 '꾸준함'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당시의 벤처 붐은 단순한 산업적 유행이 아니었다. 정보가 폐쇄적으로 소유되던 구조에서 ‘연결’되는 구조로 바뀌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기였다. 네이버, 다음, 옥션 같은 초유의 인터넷 기업들이 탄생하며 사회의 근간을 바꿀 때, 변화를 방관하거나 두려워했던 이들은 시대의 열차가 떠난 뒤에야 그 거대한 파고를 실감했다. 시대에 뒤떨어졌던 이들은 그냥 혁신가들의 서비스 사용자 중 하나로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 앞에 다시 서 있다 과거 벤처 시대가 통신 네트워크 기술의 확산에서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AI)이라는 인류사적 ‘문명 트리거’가 등장했다. 4천 년 전의 문자가 정보의 ‘기록’을, 2천 년 전의 종이책이 ‘지식 저장’의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AI와 디지털 트윈은 정보가 생성되고 추론되는 방식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AI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일주일 단위로 AI의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업그레이드되는 이 급류 속에서, 나는 25년 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변화가 다 지나간 뒤에야 뒤늦게 무릎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이 변화가 어디로 향하는지 치열하게 예측하고 공부하려 한다. 미래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학생'이 되기를 자처한다.
주말, 주중 가리지 않고 전임교수였다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여러 AI 강의장에 앉아 강의를 듣는다. 매일 AI 영상을 탐독하고 관련 서적을 탐구하며 독서 토론에 참여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닦기 위해 조찬 모임에 나가고, 공감하는 분들이나 직원들과는 매달, 매주 별도의 세미나를 열어 지혜를 나눈다. 나오는 AI 마다 유료로 가입해 활용하고, AI자동화 노코딩에 바이브코딩까지 시도해 본다. 올해 3개월 동안 팔란티어 관련 책을 5권, 인문철학 및 과학책을 4권 읽고 독후감을 썼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주변에 수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 벤처 붐을 놓쳤던 쓰라린 경험은 나에게 가장 확실한 교훈이 되었다. 시대의 흐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공지능이라는 정보 문명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 지금, 나는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있다. 이번만큼은 그 파도의 끝까지 응시하며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할 것이다. 새로이 정의되는 정보 데이터 역학 관계와 정보주체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가장 적합한 10년 후 최고가 될 플랫폼을 설계할 것이다.
벤처 붐을 지나며 배운 쓰라린 교훈은 25년 전,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펫누림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벤처캐피탈리스트/창업액셀러레이터
공) 저서. 더마켓 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 / Web3.0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