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당직근무를 마치고 노곤한 낮잠 끝에 화들짝 일어났다. 오후 다섯 시 이십 분 야간 골프 약속이 잡혀 있어 낮잠도 설레었나 보다. 오 년간 손 놓았던 골프. 한때는 골프에 미쳐 일주에 세 번씩 나가기도 하고, 추석엔 식구들만 본가에 보내놓고 골프 여행을 떠났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역시 운동은 장비빨이야’ 한 마디에 Yahoo Auction 통해 구해놓은 것들 중 처분하고 남은 포르쉐디자인에서 만든 드라이버며 Steel Shaft를 장착한 3번 Wood를 보니 오버를 많이 했구나 싶었다. 하여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손 놓고 있다 거제 내려와서 다시 시작해 보았는데, 역시나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었다.
지난 오월 거제시의사회 골프대회 이후 최근에 생긴 퍼블릭 골프장에 한 번 나갔고 연습 한 번 안 한 몸으로 세 번째가 오늘이었다. 오후까지 내린 비로 페어웨이며 그린까지 질퍽하였으나 그저 잔디를 밟고 선선한 바람 쐬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냥 즐겼다.
목욕하고 나서니 밤 열시 근처. 동반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거제 와서 만난 전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그분께 동양철학을 배우고 있고 오금희란 양생술 제자가 되어 짬짬이 수련도 하며 덤으로 茶 수업까지 하고 있으니 나에겐 참으로 귀한 스승님이시다. 선생님의 이십 년 내공에서 묻어 나오는 차 얘기와 차의 향기, 그리고 인생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새벽 두 시.
삼십 년 묵힌 보이차, 수십 년 된 약차에서 묻어 나오는 깊고 진한 향기를 마시며 나는 어떤 향기를 보여주며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차를 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