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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Feb 04. 2022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 관람기

설을 앞둔 대목이지만 한산한 길가를 따라 서늘한 바람만이 귓불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길 끝, 월대를 보수한다고 칸막이가 되어 있는 덕수궁 입구를 지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박수근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나목裸木을 주제로 한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십여 년 전 신문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그의 그림 ‘빨래터’가 45억에 낙찰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 외엔 

딱히 접할 일이 없다가 딸아이를 만나기 위해 서울 온 김에 별다른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기억 속의 박수근은 신문 한 면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림 정도였기에 

비싼 그림이 어떤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밀레를 사랑하는 소년‘ 박수근으로부터 그림 여행을 떠났다.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마칠 수 없었고 그림 또한 혼자서 길을 찾아야 했던 그의 이력, 

어쩌면 그 곤난하고도 쓰렸던 일상이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평가받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는 내용을 경력에도 기록할 만큼 자부심이 충만했던 화가의 걸음을 따라나선 

한 시간 남짓한 공간, 

예전 신문에서 보았던 흐릿한 배경들과 굵은 선의 터치, 사각형으로 정형화된 인물들 하나하나가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투박한 한지에다 진흙이 묻은 것 같은 질감 위에 하얀 한복의 여인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그 여인은 고단한 일상을 부엌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장터에서 처진 어깨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여인의 등뒤엔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고단했던 삶이 곳곳에 투영된 그림들 사이에는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꼿꼿이 서 있었고 

그 나목을 이정표 삼아 각자 삶의 쉼터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아생전 번듯한 전시회 한 번 갖지 못한 그의 삶 또한 나목이었나 보다. 

초겨울의 나목이었던 그의 삶은 삼십 년이 지나서 활짝 피어났고 

그 열매도 너무나 탐스럽게 익어 그 향이 없는 곳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무와 두여인 , 1962


육이오 전쟁 이후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서 모은 돈으로 창신동 집을 마련하였고 

그 집에서 대표작들을 그렸다는 기록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 

미쯔꼬시 백화점을 거쳐 미군 PX로 사용되다가 지난 연말에 화려한 크리스마스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명동 신세계 백화점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이곳에서 화가 박수근은 그림을 그렸다. 

탄탄한 그 석조건축물 위로 나목 한 그루가 서 있었다.

1953~1954년 미군 PX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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