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이를 데리러 용인까지 편도 삼백 오십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가는 날이다.
이월초, 남부 지방은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경상북도 어디쯤 넘어 서니
싸락눈으로 눈이 뿌리기 시작하였다.
몇 년 만에 눈이 내리는 도로를 달리다 보니 십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
브레이크를 나눠서 밟아도 아무 소용없었다.
빙그르르 도는 차는 방향을 잃고 좌우로 흔들리다 중앙분리대 바로 코앞에서 멈춰 섰다.
후, 한숨에 손바닥 한가득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 뉴스를 가볍게 듣는 것이 아니었는데.
십 년 만에 남부 지방에 큰 눈이 온다고 저녁부터 경고했었는데 아침에 눈이 그친 상태라,
게다가 월급쟁이 사정에 눈도 오지 않는데 그냥 쉴 수가 없지 않았겠나.
세계적인 금융 공황을 일으킨 리먼 사태의 영향으로 나의 계획도 어긋나 버려
편도 오십 킬로미터 거리의 직장을 한참이나 출퇴근을 해야 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기도 하겠지만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여러 가닥으로 어려운 날 중 하나였다.
브레이크가 작동을 하지 않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아이들이며 아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여기서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갈 즈음 차가 멈춰 섰다.
머리에 흐른 땀 두어 방울 닦아내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한 걸음씩 걸어가는 속도로 핸들을 꽉 쥐고 가속 페달을 살살 밟으며 나가다 보니
중앙분리대를 박고 찌그러진 차에 오른쪽 가드레일에 부딪혀서 멈춰 선 차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차피 레커차도 올 수 없는 상황이니 사람들은 차를 버려두고 걸어서 가고 있었다.
다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하여 핸들에 힘을 더 주고 앞으로 나갔다.
겨우 회사에 도착하니 열두 시가 넘어버렸다.
한 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네 시간 걸려 닿은 것이다.
그러나 아까 걸어오던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어쨌든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들을 마무리한 후 다음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직장까지 십 분이면 되고 걸어서 가더라도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늘 사고가 있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그때 큰 부상이나 사고 없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머지 날들도 그리되었으면 좋겠다.
아이 만날 즐거운 생각에 앞을 보니 작은 싸락눈들이 색종이처럼 하늘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잠시 멈춘 소백산 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