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녀석이 태어나던 날 깜짝, 너무나 깜짝 놀랐다.
분만실에서 울음소리와 같이 올라온 얼굴, 양수에 젖었다고 하더라도
선명한 두 눈썹이 시커멓게 일자로 붙어 있었다.
산전검사에서 다운증후군 수치가 높아서 걱정 하였는데
혹시나 그런 비슷한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양수를 닦아내고 다시 보았더니 엄마 닮은 짙은 눈썹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부질없던 걱정 떨쳐 내고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 주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저학년까지는 보듬고 뒹굴고 하면서 뽀뽀 한번 하자면 볼도 내어주곤 하였다.
대학생 돼도 아빠하고 뽀뽀하기로 한 아들이 전기면도기를 얘기하길래
묵혀 두고 있던 면도기를 소독하고 알코올로 깨끗이 닦아 주었더니
보일 듯 말 듯 한 웃음으로 잘 쓰겠단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 갔다 오면 제 엄마에게 큰 웃음 지으며 엄마~하고 안아주면서
아빠도~하면 몸을 돌려 피하는 아이를 보면 귀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였지만 어쩌랴,
나 또한 아들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니까.
아내는 자기도 덥석 안거나 그러지 않는다고 지금 나이는 다 그런 거라고 달래는 말을 풀어놓아도
돌아서 제 방으로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에 눈썹 짙은 어린 얼굴이 떠올라 아쉽기만 하였다.
그래도 요즘은 학교 가면서 손가락 두어 개 툭 건드린 후 학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니,
그동안 어떤 표현으로 자식에게 다가가나 고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철봉을 주문해서 제 방 문틀에 달아놓고 낑낑대는 아이 옆에 서 있다가
매달려 서너 개라도 힘쓰는 모양을 보여 주곤 했는데
나이 든 아빠가 아들 앞에서 힘쓰는 모양새에서 작은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보았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들이 품 안의 자식을 벗어나기 전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운 자리에서 희미하게 돌아오는 대답 한번 더 듣고 싶어
“아들아, 사랑한다.” 불러보고 잠이 든다.
아들의 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