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지 삼십 년, 돌고 돌아서 고향 근처 도시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일요일 오전 근무를 서둘러 마치고 길을 나섰다.
야트막한 산에 오를 예정이라 편안한 신발로 갈아 신고 가까운 통영으로 향했다.
이십 여분이라는 간격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고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 칠순의 어머니를 자주 뵙지 못하는 마음에 이십 분은 늘 멀기만 하다.
자주 가는 한산섬 식당에서 말랑말랑한 어묵볶음, 맛있는 젓갈 양념에 버무린 붉은 깍두기,
그리고 신선한 통영의 굴로 담근 젓갈에 절로 나는 침 몇 방울을 삼키고,
발그스레 익은 볼락 몇 마리가 누워 있는 시원 매콤한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채워 넣고 미륵산 정상으로 차를 몰았다.
고등학생 때는 오래된 절 아래 광장에서 시작하여 헉헉대며 한 시간 남짓 땀방울을 쏟아 내어야 했으나,
이제는 파란 지폐 한 장으로 다도해 풍경을 앉아서 보며 십 분 정도 오르는 케이블카 덕분에,
지쳐 내뱉는 한숨을 아끼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라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떠난 빈자리들로 금방 차례가 와서
두엇 그리고 서넛이 무리 지어 타는 가운데 혼자 앉았다.
정상에 섰다.
누군가가 흩뿌려 툭툭 던져 놓은 듯한 작은 섬들을
파아란 마음으로 품고 있는 코발트블루의 그 빛깔만으로도 감동이 된다.
옅은 안개 너머 춤추듯 다가오는 올망졸망 작은 섬들,
원고지 칸칸이 또는 하얀 캔버스에 예술가들의 영감으로 채워진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울렁거려 얼른 걸음을 산 아래로 옮겼다.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친구와 작은 얘기를 나누다 바삐 걸음을 옮기라는
새 울음소리에 떼밀려 산 밑 광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앉아
서둘러 노모가 차려주시는 저녁을 먹으러 북신동 본가로 달려갔다.
빵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유명한 오미사꿀빵 한 꾸러미와 아버지 드시라고 산
맛있어 보이는 무화과 한 상자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하러 돈을 쓰냐며 타박하시지만 맛있겠다 하는 그 목소리에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밥을 먹고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다 갑자기 구두를 사러 가자고 하며 벌떡 일어나셨다..
당신 아들이 언제나 오래된 것 같은 납작한 구두만 신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아
좋은 구두 하나 사주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이 두 분을 모시고 시내로 나갔다.
어머니는 ’’ 구두는 금강이 좋은데 불편하다 ‘‘ 고 랜드로버를 사러 가자고 하셔서
시내에 있는 랜드로버 가게에 들어갔다, 입구에는 금강제화 간판도 작게 붙어 있어 생각해 보니
둘 다 같은 계열의 신발 회사였다.
’ 신사화 이층'이라는 화살표를 따라 위층으로 가서 아들한테 어울린다며 랜드로버라고 생각하고 고르신
금강제화 상표 붙은 ’ 리갈‘구두를 들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계산대에서 약간은 구부정한 자세로 더듬더듬 신용카드를 꺼내 결제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신발만 챙겨서 얼른 가게를 뛰쳐나왔다.
작은 반찬통에 김치를 한가득 담아 주시며 라면하고 같이 먹으라는 말씀에,
꼭 쥐고 있던 어머니의 따뜻한 작은 두 손을 살며시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치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신발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가득 꽉 찬 검은색 리갈 구두.
당신 아들이 돈이 없어 새 구두를 사지 않는 거란 걸 아실 텐데,
주름진 이마, 나뭇가지 같은 그 손으로 권하는 아버지의 바람을 차마 뿌리칠 순 없었다.
내가 이 구두를 신을 수 있을까.
당신들은 다 살았으니 아범 건강한 게 최고다, 돈은 돌고 돌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항상 건강 챙겨라
말씀하시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
신발장의 리갈 구두는 오늘도 가만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사 주신 구두 한 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