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플레 하나, 사과 한 개로 빈속을 달랜 후 창녕으로 달렸다.
언젠가 가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오늘은 야간 근무만 있어 백 삼십여 킬로미터가
약간은 부담스럽긴 하였지만 가야 시대의 고분군을 보고 싶어 창녕으로 질주하였다.
여러 史家들이 삼국시대 대신 사국시대로 하자고 이야기할 정도로 강력한 철기시대를 구가하고
거대한 고분들을 남기고 미스터리처럼 사라지며 병합된 제4의 제국,
호기심과 기대감에 들어선 창녕박물관.
고분과 관련된 유적들을 체계적으로 전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박물관을 나와 커다란 고분들 사이를 걸었다.
인적 없는 커다란 무덤들 사이로 걷다 보니 천육백 년 전 고대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무덤가의 작고 예쁜 들꽃들만이 고개를 빼곡 내밀며 흘러간 천년 세월을 찾고 있는 듯 하였다.
고대 가야의 무덤들
주인 모를 무덤들을 뒤로하고 ‘박진전쟁기념관’으로 차를 돌렸다.
창녕 박물관 안에 있던 ‘박진전쟁기념관’ 팸플릿을 보고서 육이오 전쟁의 승전 장군 기념관이겠거니
생각하며 온 김에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다시 이십여 킬로미터를 달려
낙동강 변 근처의 전쟁기념관에 도착하였다.
박진은 사람이름이 아니라 전쟁 초기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가 있었던 그곳의 지명이었다.
낙동강 전투현장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영화 ‘포화속으로’ 의 배경도 낙동강 전투였고 숱한 학도병들이
맨손이나 다름없이 싸우다 죽어 갔던 곳이 이 근처 이리라.
불현듯 부산 UN기념묘지에서 보았던 열일곱의 나이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고 싸우다
먼 이국의 땅에 묻힌 호주의 도슨트 이병의 이름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촉촉해진 눈시울을 슬며시 닦아내고 기념관을 돌아보았다.
유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때의 흔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고맙고도 아픈 마음에 혼자 고개 숙여 묵념을 하고 다음 칸을 돌아보다
심리전 전단을 보고는 웃을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 니가 전선에서 피똥 싸며 싸우는 동안 부자들은 플로리다에서 재밌게 놀고 있다.’ 고 말하는 전단을 보며
과연 스무 살 근처 타국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웠을 그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열일곱 근처의 학도병이며 스무 살의 우리 젊은이, 선배들은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내어 주었는데.
매일같이 언론에 나오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을 생각하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CORONA로 인하여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지만
그래도 “ The show must go on !! “ 외치며 일상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