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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대니보이
Feb 28. 2022
일몰 그리고 노인보호구역
수학학원
하는 후배에게 아들을 맡겨 놓고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에 서니 시린 공기가 콧방울에 맺혔다.
시베리아 기단 타고 넘어온 동장군이 며칠째 기승을 부린 덕분에 온기가 조금은 있어야 할
남도 어디쯤도 주머니 속에 두 손을 넣고 있어야 할 날씨,
그러나 그 냉기 덕분에 이런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다니 그것도 고마울 일이다.
두어 시간 있으면 파란 하늘도 저물 시간이라 가까운 곳으로 차를 몰았다.
지난번 먹었던 도토리 전과 메밀전, 따로도 팔았지만 두 개를 붙여 한 장으로 만들어 한입에 베어먹으면
쫄깃한 도토리묵의 식감과 메밀 향을 같이 맛볼 수 있어 좋았던 그 집 생각이 났다.
한여름이면 몽돌 해수욕장으로 가는 차들로 미어터지는 구불구불 산길을 호젓이 운전하면
시린 하늘과 조금 있으면 이파리 푸르를 헐벗은 나무 그늘 사이 보이는 구천댐이 만들어낸 짙은 물색이
파란 하늘색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지난번에 눈치채지 못하였던 반듯한 도롯가엔 커다란 수달 한 마리가 손짓하고 있었고
그 뒤를 가방을 둘러멘 어린이 몇이 서 있었다.
물론 수달이고 아이들은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조형물이었지만, 젊은이들이 드문 시골 마을을
그치 들이 채워 적적함을 달래주는 느낌이었다.
해 저물기 전에 가야 해서 제한속도 30km 구간을 천천히 지나 십여 분을 달려 묵 집에 도착하여
따뜻한 전 몇 장을 포장하였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복잡한 수식과 씨름하느라 지쳐있을 아들이 먹을 생각을 하며
아내와 같이 웃는 마음이 즐거웠다.
제한속도 30km 표지판이 보였고, 그 아래 도로 위로 ’노인보호구역’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어라, ’어린이보호구역’은 익숙한데 ‘노인보호구역’ 이란 것이 있었나?
집에서 맛있는 전을 몇 번 베어먹고 궁금한 마음에 검색 사이트에 찾아보았다.
2007년 5월에 처음 시행규칙이 생긴 이후 개정되어 오고 있었다.
연도별로 기사를 찾아보았더니 ‘이름뿐인 노인보호구역(2008)’, ‘노인 보호 못하는 노인보호구역(2014)’,
‘노인도 모르는 노인보호구역(2021)’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
제정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지자체에서 예산 부담을 해야 하므로 개수로는 ‘어린이 보호구역’의
십 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노인이라고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만 65세가 지나야 하기에
나는 아직 십 년이 넘게 청년으로 살 수 있겠지만-UN에서는 18세부터 65세까지를 청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십수 년 정도야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금방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노인도 모르는 노인보호구역?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아니더라도 나의 부모님만 해도 건널목 건너는 일이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눈치 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이미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총인구의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6년이면 그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노인이 되더라도 보호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겠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생각해야만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좋은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 모르겠으나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가수 최백호 님의 노래 ‘일몰’ 의 가사를 적어보며 오늘 일을 곰곰이 되짚어 보며 노트를 덮었다.
서러운 것은 아쉬움 불타던 젊음의
시간은 어둠에 묻히어 가고
서러운 것은 세월 너무도 서러운
그것은 어둠에 묻히어가고
서러운 것은 허무 오늘은 한점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 버리고
무심으로 흘러만 가고
뽐내지 마라 젊음을 순식간에 가버린다
낙관하지 마라 세월을 기다리지 않는다
서러운 것은 일몰 일몰
비웃지 마라 백발을 누구나 노인이 된다
돌아보지 마라 옛일을 다시 오지 않는다
서러운 것은 허무 오늘은 한점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버리고
서러운 것은 일몰 일몰
- 일몰, 최백호
https://www.youtube.com/watch?v=Yl_a6IZG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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