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Mar 15. 2022

2000을 기억 하시나요?

초등학교 상상화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우주선, 멋진 해저 도시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이천년이 오는 상상을 해 왔었다. 

그러나 이천년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도 그런 조짐은 보이질 않았다. 

사이비 단체를 선두로 온갖 종말론이 등장하였고 피해 본 사람들의 인터뷰가 심심찮게 나올뿐이었다. 

다가오는 밀레니엄 그것보다는 밀레니엄버그가 병원 전체에서 이슈였다. 

컴퓨터는 1999년을 ‘99’ 두 자리로 인식하여 표기하는데 

이것이 2000년으로 넘어가면 ‘00’으로 표시되면서 대혼란이 일어난다는 얘기였다. 

심장 기형을 가진 아이들이 수술하고 나면 중환자실에서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몸에는 인공호흡기며 생명과 연관된 온갖 전자 장치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기에 

밀레니엄버그는 그 충격을 예측할 수 없는 부비트랩이었다. 

컴퓨터가 멈추고 인공호흡기가 오작동하고 심장 박동을 쉼 없이 관찰해야 하는 장비가 안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지, 그래서 심장병 가진 아이들이 안 좋게 되면 어떻게 이동을 시키고 

중환자실을 어떤 방법으로 운영할지, 기출문제라면 어디에선가는 있을 정답을 찾기라도 할 텐데 

조금 있으면 닥칠 이 일은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답을 가늠조차 할 수 없어 

더욱더 답답하였다. 

드디어 1999년 12월 31일, 일상적인 업무를 마쳤지만 아무도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아이들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 모두 숨죽이고 침만 꿀꺽 삼키면서 

텔레비전 뉴스만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기계들이 멈추고 아이들이 안좋아진다면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을 미리 재어 놓았고 

인공호흡이 필요할 때 손으로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암부의 개수를 맞추어 놓았다. 

드디어 카운트다운, ‘10,9,...1,0’ !. 

텔레비전에는 2000이란 글자가 화려하게 수를 놓았고 병원의 전자 장비들은 

아무 말 없이 2000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밀레니엄은 조용히 지나갔다. 

그때보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 아직도 하늘엔 우주선이 보이지 않고 해저 도시도 알 수 없다.

 달력의 숫자가 3000으로 바뀔 때면 내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 엉뚱한 상상 몇 개쯤 보태도 되지 않을까?

        Y2K의 추억

매거진의 이전글 김창열미술관, 물방울 그리고 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