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Mar 19. 2022

그 앞바다,  짧은 답사기


1597년 음력 7월 조선 수군 1만여 명은 고향 집으로 가지 못한채 

역사책에 전사자 숫자 하나를 더하고서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앞바다를 작은 나무 너머로 바라보고 있으면 외로운 혼백으로 떠돌다 

저 작은 섬, 어디쯤 머무르고 있을지 모르는 그 아픔에 한 번씩 저리다. 

스치듯 지나치는 이정표에 보이던 그 지명, 익숙하다고 생각하였더니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그 땅의 이름은 역사책 안에서만 존재를 드러내는 곳인 줄 알았는데 

사백 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그 아픈 이름을 주홍글씨처럼 얹고 있었다니, 

역사를 관통하는 끈은 질기기도 하였다. 

다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난 경상우수사 배설이 있어 

열두척의 판옥선을 보전할 수 있었기에 그이는 1597년 음력 9월 자신의 장계에 


‘自壬辰至于五六年間 賊不敢直突於兩湖者 以舟師之扼其路也, 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 今若全廢舟師 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 此臣之所恐也, 戰船雖寡 微臣不死則不敢侮我矣.’


(임진년부터 5, 6년에 이르는 동안 적이 감히 양호(兩湖:충청과 전라) 지방에 쳐들어오지 못한 것은 주사(舟師:수군)로 그 바닷길을 막아낸 때문 이옵니다. 지금 신에게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으니, 죽을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방책이 있사옵니다. 이제 만일 주사를 모두 폐지하신다면 이는 적이 다행하게 여기는 바일 것이며, 호남 해안으로부터 한강까지 일격에 진격할 것인 즉, 이는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다고 하더라도 미신(微臣:미미한 신)이 죽지 아니한 즉, 적이 감히 우리를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이 옵니다) 


라 기록하고 출전하여 조선 수군 13척대 왜선 133척 싸움에서 적선 31척을 가라앉히고 

왜적의 서해진출을 막은 ‘명량해전’의 영웅이 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 

그 많은 정예병이 몇의 잘못된 리더로 인하여 수장된 피비린내 났던 그 앞바다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생경한 풍경이지만 나는 저 앞바다를 보면 늘 아리다.

조선 수군이 괴멸되었던 그 칠천량 앞바다

매거진의 이전글 2000을 기억 하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