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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Jun 07. 2022

목욕탕에서 눈이 시렸다.

   

어머니의 통영 나물밥


   새벽 다섯 시 조금 지나 눈이 뜨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섯 시였는데 쉬 피곤해지고 졸리기도 하다가 이제는 눈꺼풀도 일찍 들어 올리기 까지 하는 코로나 감염 뒤에 나타난 작은 증상하나. 동료에게 코로나쯤이야 심한 독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가 그렇게 말한 내가 호흡곤란에다 기타 등등등의 잡스러운 증상까지 와서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디 가서 “코로나 때문에…” 란 말은 꺼내 놓지도 못하고 있다.   

  

   이 년 동안 서랍 구석에 작은 먼지 껴안고 있던 출입 카드를 들고 나섰다. 코로나가 시작되자 문을 닫았던 아파트 일 층의 목욕탕에서 오늘부터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던 문구를 무의식이 불러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뜨인 눈을 다시 감을 수 없어 목욕 바구니를 챙겨서 나섰다.

      

   세상일이란게 표나게 하는 것도 표 안 나게 하기도 쉽진 않은데, 입주민 중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화끈하게 손 봤다는 것을 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다가섰더니 스르르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코 높은 사람들은 조심하라는 건지 투명한 유리엔 ‘유리조심’까지 붙어 있었다. 나처럼 무의식에 이끌려 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새벽잠이 없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잖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새 샤워기에서 나오는 깨끗한 물로 몸을 닦아내고 따뜻한 온탕에 앉아서 눈을 감고 느껴보았다. 따뜻하기보단 약간 뜨겁게 다가오는 흔들림에 피부 끝에 달려 있던 작은 터럭들이 먼저 반응 하고 그놈들을 매달고 있는 각질 같은 살갗이 호흡하여 그 열기를 다리, 몸통, 가슴을 거쳐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 뒤 정수리 끝에 머물다 빠져나간다. 몇 번의 반복에 온몸이 노곤해졌다. 얼마 만인가? 물론 예전 모임 몇 번에 작은 사우나에 앉았던 적은 있었겠지만, 일상의 가운데 호젓하다곤 할 수 없어도 새벽의 여유로움에 평화로움 가득 한 이 순간이. 따뜻한 열기를 떨쳐 내고 발에 찬물을 조금 끼얹었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왼쪽 귀퉁이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네 벽에 붙은 반짝이는 편백들을 단련시키고 있었다.      


   눈이 시려오더니 눈물이 났다.

   지난 주말 뵙고 온 아버지 생각이 났다. 새집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이 눈에도 들어갔나 보다 했지만, 기어코 눈물이 맺혔다.

      

   국민학교 삼사 학년 무렵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학교 근처 두룡탕에 같이 갔었다. 대부분 가정집이 그러했듯이 우리 집에도 소위, 푸세식 화장실에 샤워 시설은 따로 없었기에 한 번 목욕하러 가면 눈물을 쏙 뺄 만큼 때수건으로 등을 세게 밀어주셨다. 그때의 풍경들은 잘 그려지진 않지만 어린 아들 등을 빨개질 정도로 밀어주시던 젊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오래된 소화불량으로 불편해하시다가 두 해 전 만성담낭염으로 쓸개를 떼어낸 이후로 하루 한 끼만 들고 계시는 아버지는 유난히도 작아 보였다. 매주 집에 가면서 마른 생선이며 좋아하시는 복국을 사다 드리곤 한다. 지난주엔 참외, 사과를 담아서 드렸다. 다 큰 자식이 나이 드신 부모님 좋아하시는 거 사다 드리는 게 무어라고, 연신 "아범은 참 효자다." 말씀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셨다. 젊은 시절 아들 둘, 서울로 공부 보내시고 학비며 갖은 뒷바라지하느라 애쓰신 아버지의 마른 손을 잡아 보았다.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새벽 공기에 코끝에 매달려 있던 매운 냄새가 날아갔다. 주말엔 서호시장 들러 맛있는 복국 두어 그릇 포장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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