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Jun 02. 2022

최진영의 첫사랑을 읽고*


   짧은 사랑의 마침표를 보는 순간, 좌우 시야를 가린 경주마 같던 ‘질풍노도’의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올랐다.  


   H는 천사였다.

갸름한 얼굴에 주먹만 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

짧은 머리칼은 슬로우 모션처럼 흩날리며 아우라를 분수처럼 흩날렸다.

옆자리며 뒷자리에 앉은 녀석들은 뭐에라도 홀린 듯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특히 제일 뒤편의 덩치 큰 P는 커다란 프로스펙스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

두어 걸음 앞자리의 H에 성큼성큼 가서는 미묘하게 떨리는 거친 손으로

그 달콤한 초콜릿을 건네주며

“너만 먹어”

한마디 뱉으며 옆자리 녀석들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기 자리로 가곤 했다.

H가 자리비우면 H의 책상이며 의자에 각 맞춰 접은 편지들이 몇 개씩이나 놓였고

돌아온 H는 웃으면서 그 편지들을 가방에 넣었다.

     

   인생의 고뇌를 다 짊어진 듯 한  K도 핑크빛 길로 이끄는

호르몬의 마수를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짐짓 심각한 얼굴로 H에

“ 어려운 문제 있으면 가져와 봐, 내가 봐줄게”

하며 편지 대신 수학책을 들이밀곤 하였다.    

  

   H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가방에 있던 편지를 하나 꺼내 읽으며 말했었다.

“나는 수학 별로 안 좋아해”

머쓱해진 K는 수학책을 소리나게 덮은 후 꽉 쥐고 한 줄 옆자리로 돌아가선

H를 째려보았지만, 어쨌든 H는 매력적이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면서 잊고 있다가 친구 녀석이

H가 남도 어디 소도시에서 여자 옷을 파는 의상실을 하고 있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러면 그렇지 …”

친구의 얘기에 남자만 더글더글 하였던 중학교 이, 삼학년 시절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하나를 집요하게 쳐다보다 공중에 떠다니는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다 만난 J의 환한 웃음에 hook 해버린 ‘나’,

건들거리든 Y가 건네준 노래 시디의 “Ibelieve I can fly, I believe I can touch the sky” 가사에서 J의 미소와 사랑을 떠올린 ‘나‘.

Y와의 처음 키스했던 날에도 일기장에 J만을 쓴 ’나‘.

졸업식 날도 습적으로 J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J의 뒷모습을 쫓아 학교 뒷산을 오르다

흰 블라우스와 잿빛 치마엔 흙만 묻혔던 ’나‘.

졸업앨범엔 ’나‘의 사진은 없고 하얀 블라우스와 잿빛 치마를 입고 환하게 웃는 J를 발견한 ’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던 J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희미한 그림자와 그 신기루 같은 그림자를 품고 있는 그림 속의 풍경들을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며

열아홉의 혼돈과 기대로 돌아가는 ‘나’.


   ‘나’가 좇은 것이 첫사랑이었는지 짝사랑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소용돌이치듯 솟구치던 바람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아득히 떠올랐다.

가슴 뛰는 소설 중, 첫사랑

* 소설동아리 모임, 초치기로 쓴 느낌이지만, 초고의 기록으로 남겨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 앞, 1987년 이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