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를 보다
중력의 끈질긴 아귀를 벗어나기가 쉬운 일인가?
힘 하나 보탠다고 쉬 떠오르는 게 아닌데 매번 용쓰다가 귀만 멍해지기 일쑤다. 쫓아오는 녀석들이 있는 것 같아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없고 작아진 녹색 지붕들만 비행기 아래로 깔렸다.
작은 약속이 있어 동네서 차를 몰고 한 시간 남짓 공항으로 달려 하늘에 닿았다. 구름 아래 있을 때도 좋지만 구름을 아래 두고 그 너머 푸르름을 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도 참 좋다. 국내선 비행기에 허락된 나만의 이 시간은 아주 짧아 위에서 더 오래 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번씩 해 본다.
서울을 덮고 있는 뿌연 막을 헤집고 막 도착한 김포 하늘 위, 책을 보느라 펼쳐 놓았던 좌석 앞 테이블과 종이책 대신 가방의 주인이 된 전자책 뷰어에다 요즘은 신체의 부분처럼 붙어 다니는 다초점 안경을 가방에 넣고서 안전벨트를 더듬었다. 속도를 줄이고 고도를 낮추다가 가장 적합한 각도라고 믿고 싶은 방향으로 비행기는 착륙했다. 나이스 랜딩! 마음속으로 작은 환호성을 울리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다.
공항에서 두 정거장 이긴 하지만 16분 걸리는 홍대입구 2번 출구 앞, 별다방에 자리 잡고 오늘의 커피를 한잔 들이켰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에서 물 한 방울 구경 못한 게 이 년째라, 막 비행기에서 내려 마시는 이 커피는 비행기 안이나 다름없다. 신맛 쓴맛이 한가득 점막에 맴돌다 비행 여독이라고까진 할 순 없어도 짧은 노곤함을 씻어 내렸다. 삼십 분 뒤 약속한 친구가 정시에 도착하여 같은 일을 돌아보고 지하철 근처 라멘집 들러 맛있는 라멘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공간 이동을 시켜 버렸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네 시간 남짓한 서울 체류, 더 머무를 여유도, 더 있을 내용도 없는 하루였지만 아쉬움에 뒤돌아보았더니 어느새 김해공항 위, 이번에도 사뿐히 내려앉길 기도하였다. ‘쿵’ 견딜 만큼 느껴지는 중력의 저항. 시속 2백 킬로미터로 내려앉아 겁나게 달리는 비행기 옆으로 거뭇거뭇한 게 달아나고 있었다. ‘맞다, 저 녀석들이었어.’ 아침에 서울 올 때 쫓아온 녀석. 왜 오늘 따라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저 녀석이 떠올랐을까?
착륙할 때 활주로를 찍어 누르다 생긴 시커먼 흔적들이었다. 비행기의 두터운 고무바퀴는 착륙의 순간마다 활주로에 상처를 남기고 나서야 멈추어 설 수 있다. 물리 법칙에 따라 설계되고 가동되는 장치들이겠지만 오늘 나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타인을 멈춰 세우는 활주로, 활주로에 흔적을 남겨야만 멈추어 설 수 있는 커다란 바퀴. 내 삶의 궤적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바퀴로 살아왔나, 아니면 활주로처럼 받아내며 살고 있나? 칼로 자른 듯 규정할 수 없겠지만 어린 시절 장남이란 이유로 형제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왔고 학교에서는 성적이 조금 잘 나왔기도 하고 작은 직책을 맡았었기에 걸러지지 않은 행동과 언사로 친구들에게 상처도 남겼을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나서도 ‘남자의 숙명이야.’ 한마디 하며 부양의 의무를 앞세워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아픔을 주었을 것이다. 고무바퀴가 얇아지고 터져서 못쓰게 되기 전에 교체해야만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듯이 여러 흔적을 남기고 살아온 나도 무엇으로 치환되고 싶다.
시커먼 흔적들에 마음 울적한 나는 갱년기 중년인가 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I6h7Ltyk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