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싸대기*
쉽게 끝나겠다고 생각했던 코로나 감염은 더 기세등등해졌고 일주일에 네다섯 번 있던 모임은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렸다. 명함에 박힌 타이틀은 어느 서랍에 파묻혀 버렸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줌 미팅하는 링크들만 날아오고 그것도 한 시간이면 빠이빠이 였다.
여행 가서 풍경을 스케치할 수 있으면 어떨까?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재미있었다. 아침에 마신 커피를, 저녁에 먹었던 생선구이를 그리며 숨어 있던 재능을 발견하였다, 나의 재능은 아크릴 물감을 사게 했고 유화 물감도 클릭하게 하였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정착액을 뿌렸다. 액자를 해서 방에 걸어 놓았다. 어떤 마음인지 그림을 보니 그림에 어울리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번져 나갔다.
조금씩 메모해 놓고 여기저기 적어 놓았던 글을 보며 글 쓰는 법을 배워 보고 싶었다. 작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 나섰다. 싸이버대학교 란게 있었다. 몇 해 전 방송통신대학 무슨 과였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등록했다 잘려 버렸다. 중간고사를 오프라인, 학교에서 봐야 하는데 중요한 회사 일로 도무지 갈 수 없었다. 싸이버대학은 모든 게 on-line으로 해결되었다. 등록금도 깎아 주었다. 그런데 수강 신청에서 걸렸다.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전공과목 다섯 개, 교양 한 개, 이 손가락으로 질러버렸다.
'음 하하하, 나도 이제 글쓰기 전문가가 되는 건가!'. 일요일 밤이면 가슴 두근대는 날들이 지속되었고 '고갱님, 당황하셨어요?' 흘러간 코미디의 대사가 맴돌았다. 이 손꾸락 때문에, 좀 살살 할 걸 그랬다. 3학년 편입이니 빨리 메꿔야 하겠다는 전투적인 의지로 선택한 전공 다섯 개, 너무 벅찼다. 그래도 현대시감상 과목, 시 한 편 선정하여 감상문내는 숙제에 우수과제로 뽑힌 것을 캡처해서 방학 내내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C+ 하나 받은 것 때문에 속 쓰려, 이 학기에는 어떤 전략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다, 전공 두 과목 내 맘대로 과목 넷을 선택했다. 이 손꾸락으로 말이다. 열심히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재밌었다.
학기 말 성적표를 받았다. 전부 A+, 4.5 만점에 4.5. 코피 나게 공부하던 대학 시절에도 받지 못하였던 성적표. 환호했다. 손뼉 쳤다. 가라앉았다. 내가 싸이버대학에 온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어디 가서 글쟁이라는 얘기 듣고 싶어 온 거 아니었나. 그래서 학과 사무실에 전화했다.
"전부 A+인데 성적 장학금 안 주시나요?"
"… 그런 분이 몇 분 계세요.".
드디어 4학년이 되었다. back to the basic, 전공 다섯 과목에 교양 한 과목 신청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4학년이라 그랬는지 글이 잘 쓰지는 느낌-물론 기분 탓이겠지만-이 들었다. 이레 동안 여섯 과목 듣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익숙지 않던 시적, 문학적 용어들이 쌓이고 쌓였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글이 머리서 나오지 않고 손가락 끝에서 실타래 끝이 술술 풀려 보기 좋게 다시 감기는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시, 소설, 에세이, 웹소설, 아동문학, 그림책 콘티짜기, 엊그제 마지막 과제를 업로드하고 1학기가 끝난 지금 돌아보니 어찌 다 들었나 싶다. 아동문학 과제로 원고지 90매 정도 되는 단편 소설을 썼다. 한 토막씩 소리 내 읽어보고 고치고 지우고 완성한 초고를 동문수학하는 좋은 작가님께 보여드렸다. 깜짝 놀랐다. 나보다 더 꼼꼼히 내가 쓴 글을 읽어 보고 교정 교열해서 돌려준 것이다. 너무나 고마웠다. 밤 아홉 시 열 시 넘어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 한 달의 시간 동안 소설을 쓰면서 또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나는 글쟁이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 한 학기 남은 이 시간을 어떤 글로 채워 나가야 할까?
*싸대기 싸이버대학 이야기라고 합니다.
https://brunch.co.kr/@danyboy/17
현대시감상 제출 과제
내 인생의 기념비적인 성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