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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Nov 19. 2021

내일은 없다

내일은 없다 - 윤동주의 육필 원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삶.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 질 녘이면 그의 시비(詩碑) 앞에 서서 늘 무엇이 되었든 작은 고해성사로 면죄부를 받곤 하였다.

바람이 부는 삶의 짧은 한 순간, 또는 퍼~런 하늘 한번 쳐다보다 왠지 모를 눈가의 물기를 느낄 때

그의 시 한 구절은 무거움이 되어 초점 없는 시선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의 한 조각,

광복절에 맞춰 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가 ‘괴로웠던 사나이’가 되어 허락된 십자가를 지고 스러져 갔던 후쿠오카의 형무소를 스케치하는 순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인의 마음으로 또는 뜨거운 가슴에서 샘솟은 젊음의 열정으로 부딪히고 부딪히다

이국의 땅, 철조망 쳐진 어스름한 곳에서 허락되지 않았던 이데아를 향해 가다

십자가를 진 채 박제된 스물몇 해의 삶.

내 이십 대에 마주친 그의 흔적들은 세대가 지난 오늘도 내 마음 한 자락에 자리 잡고

페이드아웃-페이드인을 반복하고 있다.


멈춰버린 그의 생애보다 두 배 남짓한 고해(苦海)를 지나오고 있다.

대학 일 학년 교양영어 시간의 첫 번째 수업. 그의 시비와 더불어 지금까지 각인되어 있는 그 한 마디.

‘The show must go on.’

돋보기 속의 삶은 어쩌면 모두가 비극이라는 숱한 문인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신산(辛酸)함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그 고단함의 절정이 십사 세기 유럽을 덮쳐 인구의 사분의 일이 희생된 페스트처럼 다가올 줄이야,

그저 지나가는 가벼운 유행성 독감이라 생각하였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은,

안타까운 이의 목숨 하나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가족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자본이라는 기둥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안타까운 죽음은 흑사병에 희생되었던 이천 오백만 명의 십 분의 일이지만,

지금 그 여파는 어느 누구 하나 비껴갈 수 없는 지경이다.

나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파탄의 쓰나미 그 자체.

순식간에 매출이 70%나 감소하여 은행의 도움으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 하였으나 유급휴직, 무급휴직이 반복되니

직원들의 책상엔 사직서만 하나둘씩 남겨졌다.


험난한 파도 위에 서서 중심을 잡으려 하여도 어렵고 어려워 어지럼증만 느껴진다. 

끝이 있겠지만, 또 그 끝이 어디쯤 인지 모르니 더욱 답답할 즈음

기억이 희미한 어느 공간에서 시 한 편을 만났다.

오늘이 사라지면 내일이 온다고들 하여 눈을 뜨고 떠봐도

끝이 없는 오늘만 반복되고 있는 절망의 현실을 나타낸 詩는 아니었다.


일천구백삼십사 년 나이 열일곱의 시인이 느꼈을 오늘과 내일은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 무렵 북간도에는 백구십한개의 민족학교에서

팔천 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어린 동주는 오늘을 좌절하면서 웅크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 삭풍 한파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식민지 시대의 청년이었지만

어둠을 떨쳐내고 빛을 찾아서 한 걸음씩 내 디뎠을 시인 윤동주.

그는 매일매일 맞이하는 오늘들을 쌓고 쌓아서 내일로 넘어간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비록 그 걸음이 스물일곱의 나이에 어두운 적국의 철조망 안에서 꺾여 버렸으나,

시대의 공간에 표상처럼 남은 그의 숱한 시어(詩語)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불타버린 남부의 목장을 떠나며 여주인공이 남긴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에서 연상되는 붉은 태양이

윤동주의 오늘에 있음을 느끼며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내일은 없다.  

오로지 오늘만이,

내가 숨을 쉬고 뛰어가고 있는 오늘만이 그곳에 닿게 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내일은 없다 -어린 마음이 물은

               윤동주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1934

윤동주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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