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시장에 가면 들러는 생선 가게가 있다. 통영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가끔 인터뷰하며 나오는 사장님께 장어 1kg씩 두 개해서 하나는 구이용, 하나는 국거리로 손 봐 달라고 얘기했다.
"사장님, 엊그제 텔레비전에 잘 나오셨던데요."
"아입니다. 작년에 찍은 것 같은데 또 나오는가 보네요, 출연료도 안 주더 만은요."
넉살 좋은 주인이 얼음까지 채워 검은 비닐에 넣어 주었다.
어머니는 아들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의 장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시원한 무에다 콩나물 그리고 고춧가루를 뿌려서 자주 밥상에 올려주셨다. 돌이켜보면 아버지 해장용 반에다 아들 영양 보충 반이었을 게다. 숟가락으로 장어 작은 토막을 건져 내어 부드러워진 살점을 쪽쪽 빨아 먹고는 밥그릇 옆에다 가지런히 모아 놓았다 밥 다 먹으면 숟가락으로 밥그릇에 쓸어 담아 놓으면
“우리 아들 장엇국 참 잘 먹네, 니가 그 장엇국 먹어서 공부 잘하는 거다.”
하면서 흐뭇해하셨다. 시험 전날이면 아버지 해장이 필요한 날이 아니더라도 시원하고 영양가 많은 장엇국을 차려 주셨다. 어머니의 애정 표현은 시원하고 육질 좋은 그 장엇국이었나 보다.
“올 때마다 뭐 이리 사 오노, 목소리만 들려줘도 되는데. 다음에는 그냥 오너라.”
말씀하시며 검은 비닐을 받아서 드셨다.
“안 그래도 너그 아버지 장엇국 먹고 싶다고 하시더만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는 어머니 뒷모습을 보니 편치 않아 보이는 허리가 신경 쓰였다. 걷기가 최고라고 새벽마다 걸으러 가시는 어머니께 장엇국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집에 간다고 일어서니
“조금만 있어봐라.”
말씀하시곤 김치 담그셨다고 그걸 싸주셨다. 두고 드시면 될 텐데 늘 뭘 그리 챙겨 주고 싶으신지. 하기야 나도 아이들 볼 때마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인데 어머니도 오죽하실까 싶다.
“조금만 주세요.”
말씀드려도 당신 성이 차셔야 멈추시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수험생 아들 해준다고 장엇국을 끓여놓고 아내는 고추장에 이것저것 알 수 없는 비법 가루를 섞어 맛있는 향이 나는 장어구이용 특제 소스를 만들고 난 후 장어를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했다.
“서울댁, 장어 잘 굽네요!”
옆에서 짐짓 놀리는 말로 거들어도 나보고 저리 가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연기에 눈이 매운 건지 대답 없이 손사랫짓만 했다. 생선 손질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서울댁 아내는 세월의 마법 때문인지 이제는 생선찜에다 장어구이도 통달한 서울말 쓰는 남도의 아낙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코치해준 레시피와 비법의 맛을 이어 받은 서울댁의 솜씨는 어머니의 그것과 똑같아 비몽사몽간에 후루룩 먹으면 아련한 향이 느껴지지만, 오늘같이 흐린 날은 왠지 서울댁의 장어구이에 어울리는 어머니의 오리지널 장엇국을 맛보고 싶다.
서울댁의 장어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