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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Jun 25. 2022

청라언덕, 국채보상운동
그리고 이상화 시인

   대로변을 헤매다가 동산의료원으로 들어섰다. 왼쪽에 차를 세우고 작은 이정표를 찾아 나섰다. 5월인데도 대구는 이미 대프리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모자를 눌러쓰고 바람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어떤 내일이 있을지 아니면 내일 나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제3세계같은 구한말에 발 디딘 선교사들이 살았던 붉은 벽돌 건물을 지나 노래비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년 전 부산의 선생님께 배웠던 '동무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 위에 서 있는 그 노래비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금에야 빽빽한 건물에다 병원 안에 있으니 언덕 같지 않은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그때에는 아랫동네가 굽어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이었을 것이다. 노래의 작곡가는 언덕 뒤편에 있는 신명학교 여학생과의 로맨스를 노래에 담았는데 그 스토리가 현실에서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불타오르는 열정은 노래에 담겨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으니 본 책보다는 부록이 대박친 그런 경운가 싶다. 노래 몇 소절 흥얼거려보고 기념사진 찍고 돌아섰다. 


   공복감에 거친 내적 갈등이 심하게 일어 서둘러 검색했다. 가까운 주차장에 이천 원을 건네고 식당에 들어섰다. 선지가 듬뿍 담긴 따로국밥은 참 맛있었다. 후일담이 궁금해졌다. 식당 앞 이정표에 있는 '국채보상로'가 기억 난 것이다. 


  '김광제ㆍ서상돈은 1907년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국채 1천 3백만 원은 바로 우리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되는 것으로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인데, 국고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므로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국고를 갚아 국가의 위기를 구하자”고 발기 취지를 밝혔다. 국채보상운동 [國債報償運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채보상운동 대한매일신보 기사


  전 국민이 3개월 동안 담배를 끊어서 모은 돈으로 나라의 빚을 갚아 국권을 되찾자는 취지였다. 모금 운동 다음에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마침 적당한 신문 기사가 있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한 수치들을 보면 1907년 3,300억, 1910년경 1조 원 정도의 부채가 있었고 국채보상운동으로 모인 기금은 40억에서 48억 정도로 1907년 기준으로 해도 나랏빚의 1.5%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이 기금도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총독부에 모두 압수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기금이 모이고 압수되기 전 2년 동안 7억에서 많게는 15억으로 추정되는 돈이 사라져 버렸다. 기사의 끝에는 100년전 일이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고 좋은 일에 사용되었기를 바란다고 마무리 지었다.


   오래된 성당 옆 골목 입구 담벼락에서 시 한 편을 만났다.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그 빼앗긴 봄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 봄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모든 것을 바쳐 무엇인가를 쌓아 올렸고 어떤 이는 또 다른 무엇을 위해 그것을 허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봄이 왔다.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뜨거운 대프리카 곁을 봄이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봄을 돌아보다 나는 청라 언덕 옆에 잠들어 있는 선교사의 표석이 떠올라 잠시 고개 숙여 기도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2/03/05/IXT4C5SDEVFIDCNDXXWY6LNV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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